외로움의 크기

by 김문

최근에 여수로 놀러간 김에 삼촌을 봤다. 오랜만에 보는 삼촌의 얼굴에 많은 세월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다 헤지고 색이 바랜 밀리터리 바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깎지 못한 건지 깎지 않은 건지 모를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안 그래도 까만 얼굴은 더 까맣게 태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많이 늙어 보였다. 어렸을 때 나와 자주 놀아주던 삼촌은 어느 새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다. 삼촌을 만나기 전 엄마는 우리에게 ‘할머니께서 삼촌 걱정을 많이 하신다. 수염도 좀 깎고 옷도 좀 예쁜 걸 입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삼촌은 절대 우리 말을 안 듣는다. 너희가 하는 말은 들을 수도 있으니 한 번 얘기해 봐라.’ 는 말을 했다. 하긴,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렇게나 다닌다는 건 그만큼 잘 보일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삼촌의 직업은 정확히 모른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잠수를 한다는 것 밖에는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저 목숨 걸고 하는 직업이라는 것만 안다. 삼촌도 나에 대해서 별로 아는 건 없었다. 내가 학원에서 강의를 한 지가 벌써 몇 년인데, 내가 뭘 가르치는지도 몰랐다. 그저 ‘네가 애들을 가르친다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어쨌든, 삼촌은 우리에게 아주 맛있는 장어구이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잠깐 삼촌이 머물고 있는 방에 가기로 했다. 삼촌의 직업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는 직업인 만큼 전국 팔도에 거처가 있는데, 여수에도 거처가 있었다. 아주 조그마한 단칸방에 혼자 누워있기 딱 좋은 방이었다. 외로움의 크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그마한 방. 그 조그마한 방에 다같이 둘러 앉아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삼촌에게 담배를 끊을 거 아니면 수염이라도 밀라고 이야기했다. 아저씨 나이인 건 알지만 더 아저씨 같으니까 수염 좀 깎으라고. 삼촌은 ‘신체발부 수지부모’ 라면서 뭐 하나는 남겨놔야 하지 않겠냐며 안 깎겠다고 하였다.


식당이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삼촌 방 구경하러 가기 전, 식당 사장님과 마주쳤다. 식당 사장님과 삼촌은 아주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였다. 맞다. 삼촌은 드세 보여도 정 많고 여린 사람이었다. 삼촌은 드세 보이지만, 정 많고 여린 사람이었다. 상처를 남기고 간 사람은 이제 없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생채기만 나도 그저 아파하던 사람. 하지만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티 내지 못하고 그저 괜찮다 하며 억센 말로 웃기려고 하는, 그런 사람.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기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없는 대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전화를 거는 사람. 전화로 시덥잖은 이야기 잠깐 하면서 우리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 아마도, 많이 외로운 사람.


삼촌이 사주는 장어구이를 먹었다. 삼촌이 말한 대로 꽤 맛있었다. 삼촌은 혼자서 소주를 마셨다. 우리에게도 술 한 잔 하겠냐고 했으나,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원체 술을 싫어하고, 아빠는 운전을 해야 했다. 동생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그 전날에 술을 마셨다. 그래서 삼촌은 혼자 술을 먹었다. 장어구이는 물론, 같이 나오는 장어탕과 갈치구이도 맛있었다. 삼촌이 자주 오는 집이라고 했다. 삼촌은 우리 가족이 밥을 먹는 내내 반찬과 밥을 리필해 왔다. 나에게도 밥을 더 먹으라고 했다. 갈치만 먹으면 짜다고 했다. 나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배불러서 그냥 갈치만 먹는 거라고 했더니, 그거 다 뻥이라고 하면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삼촌과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각자 사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삼촌의 큰아버님이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가시게 되면 현충원에 모셔지게 될 거라느니, 호국원에 모셔지게 될 거라느니, 이제 큰삼촌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질 거라느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삼촌도 나이가 들다 보니 아픈 곳이 늘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자주 안 아파서 괜찮다고 약을 안 먹는다고 했다. 안경테가 부러졌는데 본드로 붙이고 다녀서 괜찮다고 했다. 뭐든지 삼촌은 괜찮다고 했다. 좀 안 괜찮았으면 좋겠다.


도착하면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서, 커피를 마시고 얼른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와 밀린 빨래를 하던 와중,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가 가고 나서 삼촌이 수염을 깎았댄다. 너희들이 말하니까 듣는다며 좋아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냥 삼촌이랑 같이 소주 한 잔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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