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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 배로 커질 수 있나요 ?

커다란 땅에 첫 발을 디디며

by euuna








3년 전, 한국을 떠나기 위해 무작정 돈을 모았다. 얼마가 필요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거란 마음으로 돈을 모았다. 아침에는 영어 학원에서 보조 선생님으로 일을 했고, 저녁에는 스터디 카페에 가, 회원 등록을 도와주고 복도와 스낵룸 등을 청소했다. 한 주에 3일 정도는 아침 일찍 미술 학원으로 가서 교구 만들기를 했으며, 마지막 평일, 금요일에는 초등학생들을 앉혀두고 독서 논술 과외를 했다. 주변 친구들은 물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

"얼른 나가서 쉬려고!"


한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게 어떻게 쉬는 거냐며 웃는 이들을 뒤로하고 나도 이렇게나 터무니없는 대답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쁘게 지내는 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 끝이 있다는 사실에 재미있었다. 사실, 호주에 가겠다는 결심은 거창한 이유 없이 시작됐다. 딱히 한국이 싫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한국은 정말 사랑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국보다 높은 시급을 기대하며 돈을 잔뜩 모으겠단 마음으로 가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진 시간을 다른 곳에서 보내보고 싶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면, 경험이다. 경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재미있는 단어인지 모른다. 잘 되더라도 잘 되지 못하더라도 ‘경험!’이라는 단어 하나만 붙여둬도 그냥 ‘한 것’이 되어버린다니. 얼마나 사용 대비 만족도 높은 단어인가. 첫 해외 경험이 될 호주는 고작 나라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했다.


내가 해외라니! 장장 10시간 비행에, 지지리도 못하는 영어 실력으로 해외살이한다고? 고립이 될지, 고난이 될지. 하지만 분명 고락일 테다. 얼마나, 어떻게 굴려질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렴 어때. 제대로 굴려져야지. 그런 어린 허영과 막연한 기대에 가득 찼다.


떠나기 전 함께 호주에 가기로 한 친구, 서진과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호주에 가서 얻고 싶은 건 뭐야?" 서진이 물었다.

“…”


도무지 거창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좀 번지르르하게 말하고 싶은데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잔뜩 이유를 만들어서 가겠다고 다짐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유는 도착해서 차차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딱히 없어. 이런저런 경험이나 많이 했으면 좋겠다. 정도?”

그리고 "좀 막살아보자?"



- 캐리어 두 개는 처음 끌어봤던 날




이 글은 우물 안 개구리가 새로운 우물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도대체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언제 되는 거냐며 방 안에 드러누워 한심한 질문을 던지던 애가 짐을 싸곤 현관을 나서자마자 방황하는 이야기이다. 실수하기 일쑤에, 서툴기만 했던 첫 해외살이.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만 가득하지 않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지금부터는 한반도의 35배라는 호주에 도착해 쿵쿵거리던 긴장감을 꼭 쥐고 서서 조금 더 커보겠노라 다짐한 순간을 전하려 한다.



- Sydney Hyd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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