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비

#소설 #완

by gamyong

토독- 토도독-

후두두둑-

쏴아아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정말 파악- 쏟아졌다. 휘몰아치듯, 정말 뜬금없는 소나기였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서로 확인하고 처음으로 함께 하교하는 날이었다.

나는 너의 새끼손가락 끝을 살짝 잡고, 부끄럽게도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려고 땅을 보고 걸었다. 나를 보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웠다.


토독-


너의 작지만 각진 어깨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졌다.

하교하던 많은 친구들이 소리치며 뛰어갔다. 너나할 것 없이 뛰어다니니 정신이 없었다.


어떤 애들은 가방을 머리 위에 들고 정류장으로 빠르게 뛰어갔고, 어떤 애들은 편의점에 들려 우산을 샀다. 그런 비가 짜증나 불만을 토로하는 애도 있었고, 예고 없는 비에 신이 난 애도 있었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상가 입구에 서서 비를 피했다. 좁은 상가 입구에 나란히 섰다.

쏴아아-

비는 시원하게 내렸다. 얇고 빠르게 내렸다. 너무 거세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게, 적당한 속도로, 적당한 소리로 내렸다.


여름비 특유의 습함 때문이었을까, 내 팔꿈치에 계속 부딪히는 네 팔꿈치 때문이었을까,


내 심장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세상은 고요해졌고, 네 심장 소리인지, 내 심장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우리를 채웠다.


나의 단정했던 머리와 너의 부스스했던 머리는 비에 이미 젖어 물을 머금고 있었다.

내 볼은 이미 상기되었고, 신경은 온통 너의 팔꿈치에 가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너밖에 보이지 않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보다 두 뼘 큰 키. 작지만 각진 어깨, 흰 와이셔츠 단추를 두 개 풀은 모습. 비에 젖은 너의 머리, 너의 눈.

서로가 말하지 않았을 뿐 계속되는 떨림. 그 떨림이 적막을 채웠다.


나는 순간 땅만 보고 있던 얼굴을 들어 너의 얼굴을 쳐다봤다.


원래 부끄러워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쳐다보고 싶었다.


단번에 너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맹렬한 반짝거림을 담은 눈동자였다.


쏴아-

비가 장대비같이 쏟아졌다.하지만, 소리가 없었다.

가만가만 들어 치는 작은 빗방울들도 비눗방울같이 떠다녔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너의 눈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떤 원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너와 나의 에너지 궤도의 속도가 같아졌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반짝이는 눈이었다.


하마터면 내 입술을 그 작은 눈에 포갤 뻔 했다. 너도 나의 입술을 봤다.


순간 이 바람과 비는 우릴 휘감고 있는 어떤 장벽이라 생각되고, 그 속에 아이들의 수다소리는 파묻혀 버렸다.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앞에 네가 존재했다.


너는 손을 뻗어 내 팔을 당겼다. 그렇게 세진 않았다. 나를 안으려 했다. 자연스레 내가 그 작은 품에 안겼다. 나의 귀로 너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약간 젖은 와이셔츠는 분위기를 더했다.


갑자기 이것이 현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1분이 60초로 이루어져 있듯. 우리의 시간도 사실 그의 심장소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내 귀와 얼굴 면을 맞대는 순간 바로 알았다. 몇 분이 흘렀는지,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너는 그냥 내 손을 잡았고, 웃었다.


나는 또 턱 선을 넘어 입 꼬리와 눈 꼬리를 주시하며, 얼굴을 붉혔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잦아들고 있었다. 그 전야 같은 비가 어디 갔는지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버려져있는 가게 전단지를 주워 다 몸이 다 가려지지 않았지만, 한쪽 모퉁이는 네가, 한쪽은 내가 들고 그대로 내 달렸다. 남아있는 손을 꼭 잡고.


나는 그때 턱 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너의 눈 속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거친 피부, 오똑한 코, 작은 미소. 모든 게 반짝 거렸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좋아했던, 그렇게 어렸던 그 시절의 너와 나는 비를 맞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래가자는 말, 우리에겐 안 어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