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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pr 08. 2021

싸가지 없는강사

체스판의 '폰'은 왜 가장 먼저 희생될까.

안산 공단을 지날 때면 그날이 생각난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몹시도 쌀쌀한 날씨였고 나는 안산 공단에 있는 회사로 출강을 했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되었던 때, A 컨설팅업체에서 연결해 준 강의였다.

당시엔 상품을 홍보하는 업체에서 강의비를 지원하고 강사들을 섭외해서 데려가곤 했다. 

난 생계형 강사인 데다 이제 막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시기라 가리지 않고 일을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소위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뚜벅이였던 터라 안산 터미널 근처에서 업체 직원들을 만나 함께 공단 내에 위치한 회사로 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단 모습은 마치 체스판 같았다. 

구역이 정확히 나뉘어 있었지만 그 길이 그 길 같아 보이는 길을 보면서 혼자 왔으면 한참을 헤맸겠다고 생각했다.


안내받은 강의 장소에서 노트북을 세팅하고 직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 시간이 이미 지났건만 강의장엔 아무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십분 남짓 지났을 때 담당자가 와서 직원들에게 전달이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며 오늘 강의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헉...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그럼 내 강의료는?

아 어떻게 하지.....

머릿속은 이내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엉켜버렸다.

당황스러움을 행여 들킬까 나는 미소 짓고 있는 표정을 유지하느라 근육이 떨릴 지경이었다.

강사들에게 미소는 그냥 생활이다. 직업병 같은....

강의 전에 취소하거나 미루는 경우는 있었어도 당일 도착한 강의장에서 취소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그 순간에도 미소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아무리 직업병이라 해도 지극히 '을'스러운 짓이었다.


함께 온 홍보 업체 직원한테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뭘 어떻게 해요. 그냥 가야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아니 왜 나한테 짜증 내. 난 뭐 좋아서 웃고 있는 줄 아나?'

"저희 갈 테니 강사님도 챙겨서 가세요"

업체 직원들은 자신들의 홍보가 망쳐진 것에 화가 났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그곳에 남겨두고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강의가 취소된 것도 모자라 안산의 공단 어디쯤 덩그러니 버려졌다.

지나가는 택시도 버스정류장도 보이지 않는 곳. (당시엔 카카오 택시 서비스 같은 것이 없던 때다)

체스판처럼 공장과 길이 사방으로 엮여 그 길이 그 길 같은 곳.

나는 체스판 한가운데 곧 죽을 때를 기다리는 '폰'(보통 가장 먼저 희생되는 말)처럼 냉랭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고 바람 소리와 그 바람에 갈 곳을 잃어 헤매는 낙엽들만 뭐가 좋은지 춤을 추었다.


그때 A 컨설팅 회사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고 거기까지 갔는데 강의 못 해서 어쩐대요.

미안해요. 그런데 강의 진행이 안돼서 아무래도 강의료 지급이 안될 것 같네요. 고생했어요."

아 놔......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린지..

공단 바닥을 30분 넘게 헤매고 다닌 터라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던 참인 데다 강사를 보호해야 할 컨설팅업체 대표란 자가 그따위 말을 하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논리 정연하게 똑똑하게 처리해야 한다.'

생각은 논리 정연했지만 의지와 상관없다는 듯 속절없는 눈물은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바람 때문이야 바람.

나는 최대한 목소리에 눈물을 섞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보통 일주일 전에 취소해도 강의료의 50%는 지불한다.

당일 취소는 특히나 업체의 사정으로 취소된 경우는 100% 지불하는 것이 일종의 룰인 거 아시지 않느냐.

이 강의를 위해 준비한 시간과 오늘 강의 일정과 겹쳤던 다른 강의를 잡을 수 없었음도 강조했다.

고로 취소와 상관없이 강의료는 지급해 주셔야 한다. 

목소리는 낮았고 정중했다고 자부한다.

안산공단까지 오는데 뚜벅이가 얼마나 수고로웠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비참한데 내 얼굴에 똥칠하는 격이 될까 봐.


"강사님 안 그렇게 봤는데 까다롭네."

한참을 내 얘기를 듣던 대표는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난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아 희생된 '폰'임을 절감했다.

그 자리에서 얼마 동안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잘했어. 당당히 얘기하는 게 맞는 거야. 더군다나 울지도 않았잖아. 잘했어.'

나를 달래고, 달래고, 또 달랬다.

간신히 멀리 보이는 택시를 온 힘을 다해 손을 흔들어 불러 타고 안산터미널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강사는 '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론 '병'도 된다.

컨설팅업체에도 기업 담당자들에게도 늘 조심스럽다. 

조금만 삐걱거려도 다음 강의는 없다.

그래서 조금 손해 보더라도 대부분은 그냥 참아 넘기는 일이 다반사다.

아마도 A 컨설팅 대표도 내가 당연히 받아들였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컨설팅 업체들은 강사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이 나서서 웬만한 일들은 처리해준다. 

그들이 강사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A 사 대표는 오히려 내게 손해를 떠안으라고 하면서도 눈곱만큼의 미안함도 갖지 않았다.


얼마 후 A대표는 강의료의 50%를 보내왔다.

눈치챘겠지만 내게 두 번 다시 강의를 주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강사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A대표는 강사들에게 내 얘기를 하며 '싸가지 없는 강사'라고 했다고 한다. 좁은 업계인데 그런 소문에 시달리니 어쩌냐며 좀 참지 그랬냐고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렇게 난 졸지에 '싸가지 없는 강사'가 됐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운 '을'은 작은 발악이라도 해야 했다. 

열정 페이를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고 정당한 대가를 말하는 사람을 돈밖에 모르는 속물 취급하는 행태를 

마냥 묵과할 수만은 없다. 그래야 내가 아니더라도 다음 사람이 조금은 편해진다.

'또 '을'이 되었구나' 자신을 한탄하기보다 '그래도 한마디 해줬다'는 자부심이 차라리 낫다.


소문은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일파만파 퍼지기도 하지만 이내 사라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나는 지금도 강의를 하고 있고, A사는 업계에서 오래전 사라졌다.

통쾌했냐고?

한때는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사건은 십수 년간 거쳐 온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어느 세계에나 '갑'과 '을'이 존재하고 '갑'은 갑질을 한다. 

내가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방법은 갑질조차 할 수 없도록 실력을 키우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다행히 나를 '싸가지 없는 강사'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기억할 사람은 이미 버티지 못하고 이 세계를 떠났거나 소문의 그 강사가 나인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안산공단을 지날 때면 이미 업계에서 사라져 버린 A사 대표와 '싸가지 없는 강사'라는 말이 괘종 시계추처럼 머릿속을 넘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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