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가 마음 건강에 좋아.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외에는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너무 빨리 찾아온 무릎 통증 때문이었다.
닮을 게 없어 집안 내력인 관절염까지 닮는다는 건 억울하기까지 하다.
뭐 이런 것까지 물려주냐며 아빠한테 따져봐야 이미 AS기간도 끝난 지 오래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운동 마니아 친구 S는 무릎 통증을 없애려면 무릎 주변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되니 걷기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동네를 휘감고 있는 공원을 한 시간 가량 걷는 것을 시작으로 시작한 운동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돼버렸다. 적어도 일주일세 서너 번은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최소 한 시간, 유산소 운동인 스피닝을
또 한 시간 정도를 한다.
처음엔 엄청난 근육통으로 2주간 근육통 약을 복용하게 만들었던 몸 쓸 체력은
이젠 제법 등근육도 생겨 하면 할수록 재미가 쏠쏠하다.
상체는 제법 근육도 잡히고 운동도 수월한데 문제는 하체였다.
이미 관절이 좋지 않아 스쾃도 런지도 무거운 덤벨이나 바벨을 들고 하는 것이 힘들다.
수년간 해온 탓에 그나마 근육 미달은 아니지만 간신히 표준 정도만을 유지하고 있는 하체 근육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안쪽으로 말려있는 무릎 탓에 자세 잡는 것부터가 힘이 들었다.
그래도 무리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는 것이 목표라 맨몸 스쾃이라도 빼놓지 말자 생각하고 그냥 한다.
헬스장을 다니면서 생기게 된 변화는 몸만이 아니었다.
학부모 모임조차 갖지 않았던 내게 소위 동네 친구들(나이는 내가 젤 많다. 친구라니 미안하다 동생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였는데 나 역시 강의가 없는 날은 오전에 운동을 가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점심도 같이 먹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다 친해지게 되었다.
마음도 잘 맞고 어찌나 싹싹하게 잘 챙겨주는지 수십 년 된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
함께 처음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식당 안을 가득 채운 아줌마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동네 아줌마들은 죄다 모아 놓은 듯했다.
한 번도 그 시간에 동네에서 밥을 먹으러 나가 본 적이 없던 나로선 기괴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익숙해지다 못해 나 역시 그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사람의 시야는 익숙한 것에는
참으로 무뎌지나 보다.
함께 운동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일이 없는 날은 되도록 그들의 시간에 맞춰 운동을 했다.
특히나 개인 PT를 여러 번 받은 H는 운동방법도 많이 알고 주로 무게를 치는(무거운 덤벨이나 바벨을 드는 것을 보통 이렇게 표현한다)것을 좋아했다.
워낙에 사람들도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 운동 중에 자세가 잘못되거나 방법이 틀리면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그것이 내게 독이 될 것임을 처음엔 알지 못했다.
무리 중에서도 나와 가장 친한 동생이자 하루에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통화를 했던 우리였다.
독감에 걸려 일주일간 꼼짝도 하지 못했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 위해,
남편도 행여 옮을까 피해 다니는데 기어코 찾아와 성심당에서 공수해 온 빵을 주고 가기도 했다.
H는 세심하게 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처럼
운동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자세를 참지 못한다.
행여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할까 봐 염려해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잘못된 자세로 하는 것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지적 당하는 것을 즐기는 이는 없다.
그것도 여러 번 지적당하면 내 페이스가 무너진다.
나 같은 경우는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이라도 받아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자세에 대한 지적은
오히려 주눅 들게 만든다.
더군다나 헬스장에 있던 할매들이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나를 빙둘러서
한 술 더 뜨는 지적질을 할 때면 민망함을 넘어서 짜증까지 난다.
그날도 안으로 말리는 내 무릎이 문제였다.
역시나 H는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자세를 잡아주는데... 거기까지 했어야 했다.
나의 잘못된 자세를 보여준다며 흉내를 낸 것이다.
역시나 하이에나 같은 할매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언제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시선은 온통 나에게로 향했다.
가르쳐주는 대로 다시 해보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진심 할매들이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될까?"
"언니 잘못하면 다칠까 봐 그래."
"알아. 근데 난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고 싶어. 내가 알아서 할게."
아마도 H는 상처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H를 좋아하지만 내 자존감까지 떨어뜨려가며 그녀의 조언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하이에나 할매들한테 물어 뜯기기는 더더욱 싫었다.
원하지 않는 조언은 이미 오지랖이다.
그 후로 H는 내게 자세나 기구 무게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때론 미안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상처 받을 것을 알고 H의 진심을 알면서도 오지랖으로 만들어 버린 건
나를 위한 최소의 방어였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너의 오지랖이 때론 내겐 상처가 돼.
우리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를 존중하자.
지금도 H는 여전히 나의 절친이고
때론 상담사이고 내가 원해서 묻는 운동방법은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주는 트레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