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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pr 23. 2021

고기 2인분 소주 한 병

새로운 시도는 늘 어렵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일주일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살던 곳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특별하게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관광이 목적인 떠나옴이 아니니 그저 지낼 곳만 물색하면 됐다.


일에서 가족에게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내 마음에서 멀어져

다시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알람 없이 잠에서 깨고 때 없는 식사를 하고 말없이 바닷가를 걷는다.

처음으로 일어난 일처럼 늘 돌아오는 아침이, 그저 시간이 지나면 지는 해가

혼자라는 이름만으로도 특별해진다.


대학시절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차를 마시는 행위를 마치 대단한 미션에 성공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떠벌였었다.

'난 혼자 영화 보는 여자야'

그것은 내게 미지의 세계를 정복한 것과 다름없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되는 일종의 신고식 같은 것이었다.

사실 '혼자'하는 모든 것은 내겐 려운 과제였다.

영화관의 어두움은 타인의 시선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고 카페의 구석진 자리는 혼자 온들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유독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습관은 혼자 하는 많은 것들을 제약한다.

특히나 밥을 먹는 것은 최고의 난의도였다.

지방으로 강의를 갈 때면 최소한 두 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식당 문이 내겐 왜 그렇게 무거운지 한참을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이내 포기하곤 했다.

결국 햄버거나 김밥을 차에 갖고 올라가 소리 없이 빠르게 먹어 치운다.

집 앞에 생긴 패스트푸드점을 5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난 햄버거를 즐기지 않는데 출장 때면 어김없이 롯데리아의 새우버거를 입에 문다.


천사들이 산다는 김밥집에 바 형태의 일인용 자리가 생겼을 때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른다.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강의하는 사람의 이 말도 안 되는 행위는

결국 혼자 떠나오면서 수많은 냉동식품을 동반하게 했다.

각종 볶음밥과 3분 요리 시리즈 거기에 내려마실 드립 커피, 다방커피에 생강차까지.

내 짐은 온통 먹을 것이었다. 달랑 입을 옷 두 벌만 챙긴 트렁크는 먹을거리로 가득 찼고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슈퍼에 들러 달걀과 두부까지 챙겨갔다.

일주일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딱 바라던 풍경의 산책길, 넓지도 좁지도 않은 원룸, 심지어 옆 호실에는 아무도 투숙하지 않았다.

완벽한 혼자이며 완벽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

며칠간 냉동식품으로 가득 채웠던 위에서 간절히 고기님을 원하신다.

생각지 못했던 나의 고기사랑은 그 완벽함에 돌을 던졌다.


혼밥, 혼술 그 보다 최상위 버전이 '혼고기'라고 했던가.

숯불 앞에 홀로 고기와 소주를 시켜놓고 쌈을 싸서 입으로 욱여넣은 것이 과연 가능할까?

민박집에서 고기를 굽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냉동 볶음밥과 타인의 시선 속 고기.

나의 위가 간절히 고기를 원하고 있음은

아무 생각 없이 옷부터 입고 있는 몸뚱이가 증명하고 있었다.

집 근처에 있는 고깃집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테이블에 손님 두 명이 식사 중이었다.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다른 대안이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다른 식당들은 이미 손님으로 가득했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스르륵 너무나 쉽게 열렸다.


"사장님 여기 고기 2인분 하고 소주 한병이요."

내 앞으로 숯불이 놓이고 각종 반찬들이 시장기를 재촉한다.

왜 고기는 1인분을 안 파는 건지... 속으로만 투덜거리길 잘했다.

나는 쌈까지 야무지게 싸서 고기 2인분을 먹어 치웠다.

고기를 먹는 동안 옆 테이블에 앞 테이블에 손님들이 들어찼지만, 이미 고기를 굽기 시작한 후엔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살다 보면 시작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것은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금전적인 문제 일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시작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는 대부분 나 때문인 것을 안다.

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 내며 결국 그것을 회피하며 살았다.

망설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는 것은 시작하는 시간만 늦출 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 꽃길일지 누가 알겠는가.


앞으로도 타인의 시선을 완벽하게 의식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오늘 고기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보기 좋게 해치우지 않았는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는 사실에 부른 배만큼 행복감도 부풀었다.

서울에 가면 당당하게 가족들한테 자랑할 거다.

"나 혼자 고기 먹는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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