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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ug 31. 2021

나는 무심했고 그는 무서웠다.

강아지와 산책하면 발생하는 일

바니와 산책을 나섰다. 

내일부터는 다시 한바탕 비가 몰려온다니 햇빛을 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보통 산책은 30분 정도 하는데 준비시간이나 후처리 시간도 만만치 않다. 바니의 보호자로서 그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함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며 시간을 낸다.

옷을 입히는 순간부터 쉽지 않다. 

옷 입히면서 입질, 하네스 착용하면서 또 입질. 벌써 십 년째 그놈의 입질을 고치지 못했다.

온전히 주인 탓이다. 제대로 교육시키는데 소홀했던 내 탓이니 더는 야단도 못 친다.

누가 봐도 수둥순둥한 놈인데 산책 나가기 전 준비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다.


밖으로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날렵한 발걸음에 덩달아 나까지 텐션 업되는 시간이다. 

산책길로 들어서자마자 늘 그랬듯 바니는 자신만의 은밀한 시간을 갖는다.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뒤처리 후에 배변봉투에 담는다. 이렇게 산책은 시작된다.

오늘도 역시 같은 루트, 같은 텐션으로 같은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제발 중간에 다른 강아지들만 만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길가의 풀냄새를 맡고 산책하고 운동하는 어르신들 사이를 매의 눈으로 살폈다. 바니는 유독 사회성에 없어서 다른 강아지들의 출현을 반기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가 나온 시간은 그들의 휴식시간이었는지 다른 강아지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노즈 워킹을 하며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바니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 외출한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몸이 안 좋아 아무래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예매를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예매하는 걸 잊어버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시 날짜를 잡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 뒤편에서 익숙한 트롯 가요가 들려왔다. 핸드형 MP3를 크게 켜놓고 모자를 눌러 쓴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음악소리가 제법 커서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됐다.

대부분 어르신은 이어폰이 익숙지 않다 보니 그렇게 들으시면서 산책 하곤 하는데 때론 그 음악이 불편할 때도 있다. 더군다나 아저씨는 어르신이라고 하기엔 꽤나 젊은 축에 속했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좋을 텐데...' 생각하며 나는 계속 딸에게 톡을 보내고 서로 다시 약속 잡자는 얘기를 끝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시 걸었다.

그때였다.

바로 옆을 지나고 있던 그 아저씨가 갑자기 무서운 눈으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 개 똥 쌌잖아. 왜 안 치워? 진짜 저러니 욕을 먹지 "

아뿔싸! 내가 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바니가 또 자신만의 은밀한 일처리를 한 줄 몰랐던 것이다. 불과 2분 전에 볼일을 봤기에 설마 다시 또 그 일을 치를 것을 몰랐다.

"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못 봤네요."

다급하게 바니의 그것을 처리했다.

진심 몰랐는데...... 얘기해줘서 고마웠는데.

아저씨는 한참을 나를 노려보더니 자리를 떴다.


그냥 얘기해 줬어도 됐는데 그렇게까지 노려보며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강아지 배변도 처리하지 않은 무식한 여편네라도 되는 양 쳐다보는 눈길에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민망함은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번져갔다. 그렇다고 음악소리에 묻혀 커질 대로 커진 아저씨 목청처럼 나 역시 큰소리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나의 실수이기도 했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노려보는 눈빛과 험악한 말투....잘못하면 한 대 칠듯한 몸짓. 

창피하고 한편으론 무서워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소한 사건이 산책길의 기분을 망쳐놓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잘못은 내게 있으니 원망조차 할 수 없는 완전한 패배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자주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를 만난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짖는다거나 좋아하지도 않는데 남의 개가 애교 떠는 모습을 봐야 한다. 때론 바니처럼 개만 보면 짖어대는 통에 산책길이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죄송합니다를 연거푸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내 책임이니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조금은 상대방 역시 너그러운 눈빛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내가 애견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친구 중엔 동물 알레르기가 있거나 극도로 강아지를 무서워해서 우리 집에 오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 나는 평소와 다르게 산책길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했고 조금 전에 일처리를 했기 때문에 다시 그 일을 할 거란 예상을 하지 못했다. 너무 무심했다. 

내게 화를 냈던 아저씨도 조금만 덜 무례했더라면 어땠을까? 

오히려 더 미안해하며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얘기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멸에 가까운 눈빛과 산책길의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아저씨의 비난은 그냥 "죄송합니다" 정도의 짤막한 답변만을 받아냈다.

서로 안면식도 없는 사람에게서 받은 비난 조차 신경 쓰고 사는 내가 더 피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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