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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25. 2021

더럽고 치사한 일이 되지 않으려면

 돈 버는 일이니 더럽고 치사하다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노동을 해서 버는 정당한 대가일 뿐인데 더러운 건 둘째치고 치사할 이유는 뭔가.

치사하다’ 

행동이나 말 따위가 쩨쩨하고 남부끄럽다 

국어사전의 의미는 더 당혹스럽다. 어느새 남부끄러운 일도 불사하는 우리네 노동자들이 서러운 건 끊임없이 신세계를 보여주는 ‘갑’의 횡포 때문은 아닐는지.     


 강사가 되기 전 나는 참으로 많은 직업을 넘나들었다. 그때는 다른 공채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라 선택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서비스업종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홈쇼핑 업체 콜센터 정회원 관리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운영하던 작은 사업을 제대로 말아먹고 생활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던 내게 어느 곳이건 뽑아만 주면 열심히 할 것이라며 면접을 보던 때다. 감사하게 나를 불러준 곳이 바로 콜센터였다. 

 콜센터의 근무환경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회사매출과 직결되니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어디서나 그렇듯 상사와의 관계였다. 다른 팀의 S 팀장은 자신의 팀원도 아닌 내게 시도 때도 없이 갑질을 해대는 통에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고객의 불만을 너무 잘 들어주느라(시간이 오래 걸린 건 사실이다.) 내게 할당된 콜을 채우지 못한 것이 발단이었다. S 팀장은 나 때문에 자신들의 업무가 늘어났다며 하루가 멀다고 내게 험한 말을 쏟아내곤 했다.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야만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때였다.

 

 어느 날 불만 고객의 사연(?)을 들어주고 있던 내게서 S 팀장은 기어코 전화기를 뺏었고 다른 부서로 돌려 버렸다. 

“아우 씨 이따위로 일할 거면 그만두던가 꼬면 네가 팀장 하든가” 

‘책상은 이렇게 쳐야 부서지는 거야’를 몸소 보여주듯, 온 힘을 다해 책상을 치며 소리를 치는 S 팀장 앞에서 난 그저 눈물만 흘렸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잘못한 일에 대해 지적하면 됐었다. 엄밀히 따지면 S 팀장의 행동은 ‘갑’이라는 위치를 이용한 폭언이고 폭력이었다. 그 순간 느꼈던 모멸감이 20년이 넘도록 가슴에 주홍글씨로 남았다.     

 

 그때의 일은 살아오면서 당했던 수많은 갑질 중에 가장 수위가 낮은 편에 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첫 경험은 무엇이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듯 난생처음으로 당했던 갑질이라 한참을 허우적댔던 것 같다. 자꾸 그 일을 끄집어내 스스로 더 서럽게 만들었던 건 모멸감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못했으니 응당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던 그 시절의 못난 ‘나’였다. 누구 하나 S 팀장의 행위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료들이 내게 준 건 어쭙잖은 위로와 참으라는 말뿐이었다. 그리곤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이 일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는 너무도 쉽게 타인이 당하는 ‘갑질의 횡포’에 눈감아 버린다. 언젠가 자기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애써 접으면서 말이다. 갑질의 대상자는 대부분 착하고 친절하다. 친절한 사람은 쉽게 공격 대상이 된다. 마치 ‘갑질’의 원인 제공자라도 되는 것처럼 오히려 바보 취급하는 사람을 더는 참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물론 착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그 ‘더럽고 치사한 일’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화살을 맞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     

 

 고작 땅콩 봉지 하나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켜 세간의 뭇매를 맞았던 재벌, 아무렇지도 않게 직원들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전국 방송으로 송출되며 악명을 떨친 회장, 1호 갑질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모기업.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자신의 외제 차를 보호하겠다고 주차구역의 두 자리를 뻔뻔하게 차지하는 사람도 있고 아파트 경비원을 하인 부리듯 하고 급기야 폭행까지 해서 구속된 사례도 있다. 받은 대로 돌려주겠다는 못된 심보는 고객의 입장이 되었을 때 또 다른 갑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만 빼고 모두가 ‘갑’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야말로 ‘갑의 세상’이다.      


 GS칼텍스는 2017년 ‘마음 이음 연결음’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상담직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알려주는 멘트를 통화연결음에 넣은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해드릴 예정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상담해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해드릴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광고는 가히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누군가에겐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캠페인을 도입한 후 상담원의 스트레스는 54.2% 감소, 존중받는 느낌은 25% 증가했다고 한다. 고객은 더 친절한 말투를 쓰며 먼저 좋은 말을 해주는 횟수도 증가했다. 고객의 욕설과 성희롱에는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는 ‘엔딩 폴리시 매뉴얼’도 점차 정착되고 있는 듯하다. 직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2017년. 7월 16일부터 시행)’을 통해 법적 처벌을 예고했다. 이처럼 ‘갑’으로부터 ‘을’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늘어나는 추세다.    


 ‘갑질’의 근본적인 문제는 법이나 제도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를 상대방을 뭉개고 업신여기는데 쓰는 것에 주저함 없는 그들의 인식이 문제다. 지위나 경제력이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더 많이 가진 자가 우위에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갑질’은 특권이 아니라 무례함이며 타인의 가슴에 새겨지는 상처다. 더는 돈 버는 일이 더럽고 치사한 일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모두 각자의 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평등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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