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Jul 30. 2021

대충 철저히!!

너무 애쓰지 말자

 ‘대충 철저히’

내 생활신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일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 돌아와서도 완벽한 살림을 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보니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주말 내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가 되고 말았다. 가진 에너지를 매 순간 몽땅 쏟아내니 고갈되는 건 당연했다. 결국 번아웃이 왔다.     


 모든 일에 완벽 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빈틈없이 처리하기 위해 자신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괴롭힌다. 자신이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심하게 자책하며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신을 채찍질하고 주변 사람에게도 완벽함을 요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초조감은 극대화되고 점점 그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러니 함께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내 맘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각자의 기준이 다르고 관점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고 옳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남들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완벽주의자들이 바로 이런 착오를 자주 한다. 자신의 이상적인 목표는 타인에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나에게 유토피아라 해도 상대방에게도 그렇진 않다.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고갈시키고 심지어 번아웃되면서까지 왜 그토록 완벽해지려 애쓰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칭찬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왕따나 심한 놀림을 받았던 아이들이 사회 적응력이나 자기 긍정이 부족하면 완벽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자신에게 느끼지 못하는 만족감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마음은 타인의 환심을 사고 인정받기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사소하게는 남들의 비난이나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시작된다. 자신이 민폐가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행여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고 챙겨야 할 일들과 수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을 자처하고 주변 상황까지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완벽은 환상이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은 늘 변하고 목표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끝이 없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 완벽주의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벽해지려 할수록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때론 노력한 결과를 인정받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심지어 서운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원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없으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내가 이만큼 희생했는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따져봤자 그들에게 돌아올 말은 “난 그런 거 요구한 적 없는데.” 일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며 다시 최선을 다해 완벽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늘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은 많고 목표는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한다. 주변의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고 자신을 도우려는 손길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신이, 오직 자신만이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지치고 힘들게 만든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리다 보면 결국엔 결승점이 아닌 ‘번아웃’으로 들어가게 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태워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순교자가 아니다. 신기루를 좇는 방랑자처럼 가고 있는 길이 옳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안에서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어차피 당신이 세운 목표는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모든 이를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주는 만큼 돌려받는 사랑도 희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자괴감에 빠져서도 안 된다. 더 완벽하면 될 거라는 확신은 확신이 아니라 핑계다. 자신을 돌보지 않겠다는 비겁한 마음이다.      


 너무 애쓰지 말자.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환상 속의 목표를 접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동안 해온 일들이 얼마나 멋진 성과였는지. 지금까지 충분히 잘 왔음을 인정해 주자. 설사 조금 부족하다 해도 당신의 노력을 깎아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시 쉬고 다시 달려보려는 생각은 ‘완벽주의’라는 짐을 지고 살겠다는 다짐밖엔 아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두려움만 가득 채워 온 마음이 소진될 때까지 달리기만 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종종 두렵다. 다른 사람은 모두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지 쉬는 시간조차도 안달복달이다. 집안 곳곳에 머리카락이 보이고 설거지는 쌓였다. 읽어야 할 책도 있고 보내야 할 메일도 있다. 스케줄 표에 오늘의 할 일을 꽉꽉 채워 넣어놓고 줄을 그어가며 처리해야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고 미친 듯이 덤벼들 태세다.

그럴 때면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번아웃 되었을 때 다짐했던 말을 떠올린다.

‘대충 철저히’

완벽하지도 완벽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오늘은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돼본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완벽하게 가느냐가 아니라, 도착도 하기 전에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빠르건 느리건 기나긴 인생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제일 예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