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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13. 2021

지우고 싶은 기억들.

잊어야 한다는 사실 마저 잊고 싶다.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울리면 개가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의 실험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실험은 여기까지다. 계속된 실험에선 종은 울리되 먹이를 주지 않는다. 이제 개는 종소리를 듣고도 침을 흘리지 않게 된다. 


 과거 과학자들은 ‘조건화’가 사라져 개에게는 예전의 종소리와 함께 먹이가 제공된다는 기억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기억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화로 대체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을 울리면 먹이를 준다.’라는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종이 울려도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일부러 끄집어낸 것도 아닌데 과거의 기억이 찾아와 괴롭히는 건 우리의 뇌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기억은 대체로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버스에서 내리다 개구리 자세로 아스팔트와 박치기 했던 부끄러운 일이거나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첫사랑한테 보기 좋게 차이던 날, 시험에서 떨어진 날 합격한 친구에게 듣던 시답잖은 위로의 말이다. 힘들거나 아프거나 상처가 된 일은 유독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우리를 괴롭힌다.     


 대학 동기였던 지희는 참 다정한 아이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도움의 손길을 주려 했고 함께 도서관도 다니면서 같은 과 친구보다 가깝게 지냈다. 그런 지희와 거리를 두게 된 건 소개팅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뜬금없이 자기가 소개받기로 한 사람을 나와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다른 일정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연결만 해주고 빠지겠다고 했다. 소개팅남은 훈남이었다. 소개만 해주고 간다던 지희는 대화를 주도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고 며칠 뒤 소개팅남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소문을 통해 알게 됐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나와 인연이 아닌 것뿐이라고 웃어넘겼다.


 지희는 동기건 친구가 사귀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다 당시 내가 사귀던 남자친구까지 빼앗으려 했던 사실을 알고 난 후, 지희와는 거리를 뒀고 결국 관계를 정리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살았던 지희는 애정 결핍이 심했다고 한다. 자신은 결혼하면 아들만 낳아서 남편과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라고 했다니 심각한 상태였던 것 같다. 이유가 어찌 됐든 지희와 있었던 사건은 야무지게 잘라내 편집하고 싶은 기억이었다.     

 

 원하면 언제든 기억을 싹둑 도려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지우고 싶은 수많은 사건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서랍 가장 안쪽에 감춰둔 일기장처럼 불안한 모습으로 여전히 뇌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숨겨둔 그 날들의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분수처럼 솟구친다. 대부분 시작점도 어떤 이름인지도 모른 채 분출된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잠식당하기 부지기수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리는 이유는 제대로 된 감정표현을 제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가 되기 전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아무것도 아니라며 슬그머니 묻어둔 것이다. 그렇게 해묵은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매번 도망치기 바쁠 것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사라졌을 있을 리 없다. 꼭꼭 숨겨 둔 감정을 꺼내서 처리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한참을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리고 난 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안고 사는 건 상처만 덧나게 할 뿐이다.


 과거를 꺼내 봤자 긁어 부스럼만 만들 거란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깊숙한 서랍 속에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아프더라도 상처는 치료해야 고통이 멈춘다. 고름이 생겼다면 과감하게 터뜨리고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 우물 안에서 보이는 하늘이 전부가 아니며 밖으로 나와야 제대로 된 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예전 지희로 인해 내가 느꼈던 감춰진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매력을 어필하지도 못하는 못난이 같은 모습은 자신감을 잃게 했고 남자친구마저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수치심은 분노가 되어 폭발하기도 했었다. 비슷한 상황만 연출돼도 도망만 치려 했던 나약한 나였음을 인정하는 순간이 쉽진 않았다. 하지만 서랍 밖으로 꺼내 마주한 감정은 오히려 평화로움을 선사했다. 감정을 인정하고 ‘그땐 그랬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놀랍게도 요동치는 파도 같던 감정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지나간 감정이 되어 버렸다.     


 오래전 그때 알아차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감정과 마주하는 일에 시간의 흐름은 중요치 않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그래서 담아둔다고 썩어 없어지지 않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감정일수록 꺼내 놓아야 한다. 깊은 서랍 속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풀어내지 못한 감정은 자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실체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 내 안의 상처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현대 심리치료의 중요한 기법의 하나인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REBT)의 창시자 앨버트 엘리스는 “감정을 잘 다루어야 인생을 잘 다룰 수 있다. 감정 문제가 곧 인생 문제다.”라고 했다. 삶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감정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만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불쾌하고 어두운 감정까지 끄집어내는 작업은 과거에 매몰된 퇴행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점검의 과정이다. 이미 지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흘러간 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을 리도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안 좋은 기억에 담대해지는 방법은 그것이 상처였음을 인정하고 그때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이다.     


 늘 좋은 기억만 갖고 살기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자동차를 타고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는 것처럼 아무 일 없이 무료하게 지나다가도 빛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긴 터널을 만나 당혹스럽고 힘들 때가 있다. 속도를 내서 그저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면 또 다른 터널과 만났을 때 같은 방식으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주변을 살피고 지나온 길의 흔적을 느끼는 것은 내 안의 해묵은 감정을 만나는 작업과도 같다. 

     

 지우고 싶은 수많은 기억은 사라진 듯했다가도 의지와 상관없이 불현듯 찾아와 괴롭히고 때론 너무 부끄러워 자다 말고 이불을 걷어차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편하고 힘들었던 과거의 감정과 끊임없이 만나야 한다. 기억이 사라질 리 없지만, 마음 한편에서 그나마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는 그 일을 잊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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