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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현 Oct 18. 2018

하늘 높이 뜬 딸아, 엄마 최선을 다했어

[구조출동] 익수사고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소방서 뒤뜰에 심어 놓은 팬지와 제라늄은 떡잎이 떨어지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졌다. 자비 없는 태양은 팔뚝에 여름을 선명히 새기고 수그러들고 있었다. 열기가 채 가시지 못한 9월 중순, 가을의 문턱에서 그 신고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생 여자아이. 물에 빠짐. 두 명’. 익수 신고는 소방서에서 상당히 중(重)한 사건으로 꼽힌다. 사망률이 높고, 생존하더라도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구명환과 구명조끼를 챙겨 구급차에 올라탔다. 차 안의 뜨거운 공기 탓에 호흡은 더 빨라졌다. 사이렌을 울리고, 상황 파악을 위해 최초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보다 더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트 경기장’.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지난번 수상안전교육을 기억해보면 구급차는 경기장의 주차장을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주말의 주차장은 안전바에 의해 막혀 있어 열쇠가 꼭 필요했다. 사무실에 가서 미리 열쇠를 받아와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당황한 아이는 말이 없었다. 콧대 높은 가을 하늘은 몇 안 되는 기회조차 빼앗아 가고 있었다.


  7분. 심정지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4분보다 약간 더 걸렸다. 현장에 도착한 순간, 사무실에서 어르신이 달려와 안전바를 올려 주셨다. 환자의 위치를 묻자 손가락으로 선착장 쪽을 가리키셨다. 모퉁이를 돌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고자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있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일제히 좌우로 갈라섰고, 그 사이에 진회색의 서핑 슈트를 입은 갈색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어깨. 심정지(arrest) 환자가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요트의 하얀 깃발은 바닷바람에 맞아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펄럭이고 있었다.



  브레이크도 올리지 못한 채, 제세동기(AED)를 챙겨 신속히 달려갔다. 다행히 두 여아 모두 물에서 건져졌고, 현장에 다른 위험요소는 없었다. 가슴압박을 하던 여성은 부모라고 보기엔 상당히 젊었다. 남자 친구로 보이는 남성은 그녀의 젖은 머리를 묶어 주고 있었다. 동료 대원이 패드를 붙이는 동안, 다른 환아를 살펴보러 갔다. 벽에 기대어 앉은 아이는 의식과 산소포화도(SpO2) 모두 괜찮았다. 외상 확인을 위해 머리와 사지를 눌렀을 때 아이가 떨고 있음(chilling)을 느꼈다. 저 뜨거운 태양도 아이의 놀란 가슴을 녹이지 못했다. 아이의 멍한 눈은 내가 아닌 내 어깨너머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다행히 저체온증을 제외한 별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추가 구급대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담요를 부탁하고 나는 아이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돌아갔다.


  한 주기를 마친 대원을 뒤이어 가슴압박을 했다. 대원은 현장에서 얻은 정보를 전해 주었다. ‘물가에서 놀다가 익수. 남자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근처에서 서핑보드를 타던 여인이 건짐. 의식과 호흡 모두 없어 직접 가슴압박 실시.’ 일반인 수준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응급처치였다. 녹초가 된 그녀는 슈트 지퍼를 내린 채 주저앉아 있었다. 아까 살펴봤던 아이의 눈보다 더 탁한 표정이었다. 제세동기가 분석을 마치고 눈치 없이 맑은 목소리를 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기충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땅을 두어 번 내리쳤다. 사실 동료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패드를 부착한 직후에 보인 곧은 직선. 무수축(asystole). 그 어떠한 세동도 없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우리를 응원했다. 들이치는 파도가 우리의 무력함을 약 올렸다. 저 넓은 바다는 혼자서도 규칙적으로 잘 움직이는데, 이 작은 심장조차 뛰게 하지 못한다니. 튀는 바닷물에 바짓단이 젖어갔지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들 것에 여아를 올리고 구급차가 달리는 동안에도, 가슴압박과 산소공급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 땅을 내리치던 그녀의 탄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슴압박 깊이나 위치를 보아 전문 의료인은 아닌 것 같았고, 구급차 동승을 거부한 것을 보니 보호자도 아니었다. 그토록 안타까워하던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응급실(ER) 이송과 인계를 마무리하고, 보호자를 만났다. 입술이 파랗던 소녀보다 손을 더 떨고 있었다. 진정시키고 격려하는 일은 구급차를 타며 수도 없이 해왔다. 장비를 정리하고 구급차의 뒷문을 닫고 돌아서자 갈색머리의 그녀가 서 있었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었으나, 엉겨 붙은 머리와 얼굴의 소금기로 보아 급히 차를 몰고 찾아온 것 같다. 감사의 말을 전하려는 순간, 쓴 미소를 내비치며 그녀가 물었다.


“별일 없었죠?”


  그녀는 별일이 있었기를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날 역시, 극히 평범한 어느 가을날에 불과했다. 바람은 여전히 서늘하고, 하늘은 여전히 높은 그런 가을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갈색머리의 그녀와 병원 벤치에 앉아 가을의 바람을 맞았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2년 전에 자신도 딸을 잃었다고. 바닷가에서. 아무것도 못했던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고. 그 이후로 꾸준히 연습했다고. 오늘 비록 별일은 없었지만, 이젠 하늘 높이 뜬 딸에게 말할 수 있다고.


“딸. 엄마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다음번엔 네가 꼭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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