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출동] 선박화재
제천 화재 참사는 전국의 소방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본부에서는 관할 내 건축물의 소화 설비에 대한 소방특별조사를 요구하였고, 소방서 별 일제 점검도 추가하였다. 소방서 내에서도 자체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졌다. TV에서 화재 현장이 비칠 때마다 직원들은 뜨거운 토론을 펼쳤다. 최선의 선택이었을까에 대한 의견은 제각기 달랐고 좀처럼 합의되지 않았다. 끝날 줄 모르는 논쟁은 언제나 팀장님에 의해 정리되었다. 팀장님의 중재는 양측의 의견 모두 일리 있다고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번갈아 가며 발언을 청취한 후엔 항상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이론을 맹신하는 사람은 답을 낼 자격이 없다. 작은 재 조차도 어디로 날아갈지 예측 못하는 게 현대 과학인데, 감히 불덩어리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낀 사람만이 답을 안다. 현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잘 판단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판단은 내가 한다. 그로 인한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그게 지휘관인 내 존재의 이유 아니겠는가.’
한적한 부둣가에 화재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다. 선착장의 배에서 불길이 보인다는 신고 내용이었다. 새벽 2시의 어두운 밤이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검은 연기가 매섭게 올라오고 있었다. 차로 최대한 들어간 후에 비탈길을 따라 200m가량 호스를 전개했다. 정작 선착대는 먼발치에서 불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방수압을 아무리 높여도, 방파제에까지 내려가 보아도 선박까지의 거리가 멀어 물이 화점에 닿지 못했다. 선박에 묶어 둔 줄을 다 같이 당겨보았지만 어느 정도 다가오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닻을 여러 개 내린 것 같았다. 진압이 늦어지는 가운데 상황이 악화될 요인이 많았다. 바로 옆에 다른 선박들이 계류되어 있어 불길이 번질 수 있었고,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비화로 인한 화재 확대도 우려되었다.
팀장님은 무전기를 잡고 차분히 지령을 내렸다. 우선 불길이 줄어들 때까지 연소 확대 방지에 주력하는 것을 첫 목표로 잡았다. 이와 동시에 해경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동력 펌프를 들고 해경 배에 올라탔다. 가까이에서 불을 어느 정도 잡으면, 구조정으로 선박을 밀어 방파제에 갖다 붙이는 작전이었다. 그는 결심한 듯 닻줄 하나를 끊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화재 선박은 안전히 거리가 좁혀졌고 소화수가 닿기 시작했다. 선박 중앙부는 유류가 적재되었는지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 팀장님은 무전기를 통해 폼 방사 지령을 내렸고 거짓말처럼 불은 수그러들었다. 마침내 진화되고 선박 내부 진입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당직관의 도착으로 지휘권이 인계되자, 팀장님은 관창을 들고 가장 먼저 선박에 올랐다. 자신이 방수할 테니 해경분들은 연기 나는 부분을 장대로 들쑤셔주면 감사하겠다는 부탁을 하셨다. 진두지휘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귀소해서 다 같이 펌프차에 물을 채울 때에도 몸소 움직이셨다. 지시만 내리고 먼저 돌아가는 지휘관이 아니었다. 호스를 다 정리하니 오전 7시가 되어있었고, 아침은 라면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팀장님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현장활동에 대한 소감을 이어 나갔다. 지위를 이용한 잔소리가 아닌, 지휘와 함께한 피드백이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말하기 전에 상대의 감정에 공감을 표했다. 잘못은 꼬집지 않고 어루만져 주었다. 설거지는 저희가 하겠으니 들어가셔도 된다 했더니, 잠시 뒤 콜라와 사이다를 사 오셨다. 정작 팀장님은 건강 생각해서 탄산음료를 안 드시는데 말이다.
제천 화재 사고 당시 소방관들의 대처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2층에 구조 인원이 있었는데 2층 진입이 왜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느냐가 그 이유였다. 화재 출동을 하면 인명 구조 못지않게 강조되는 것이 연소
확대 방지이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인명 피해를 줄여야 한다. 현장에 도착한 선착대가 LPG 가스통에 연소 확대 방지에 주력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가스통의 안전밸브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걸
었다간, 98년도 부천 LPG 폭발사고와 17년도 경기도 광주 가스탱크 폭발사고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CCTV로 공개된 제천 화재 참사 영상을 꼬집는 사람들도 있었다. 긴박한 상황에 건물 밖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소방관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사람은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는 사람이다. 모두가 현장 속으로 뛰어들 순 없다. 내외의 상황을 지켜보고 분석해 무전으로 지령을 내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의 지휘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도, 국내외 최고의 석학을 모셔와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그들이 지휘봉을 잡은 이유이자 존재의 이유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