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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현 Nov 29. 2018

화마가 휩쓸고 간 길을 다시 걷는 사람들

[기타출동] 화재감식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윙윙거리는 와이퍼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에 숨이 조여왔다. 말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아 흘긋 곁눈질만 했다. 잘 달리던 차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 비포장도로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라이트는 산속으로 스며들어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비가 와서 더 겁이 났다. 괜히 주임님 따라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되돌려 보내려는 듯 차는 거세게 흔들렸고, 그럴수록 손에 든 카메라를 더 꽉 쥐었다. 5분 정도 올랐을까, 와이퍼가 멈추고 차 안에 적막이 흘렀다.


“내려. 다 왔다. 카메라 안 젖게 조심하고. 다시 말해두지만 넌 오늘 여기 안 온 거야. 혹시 누가 물어보면 화재조사관이라 말해.”


  기죽은 모습 감추려 또렷이 대답하고 카메라와 휴대용 조명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비가 그쳐 비옷은 벗어도 될 정도였지만, 쌀쌀한 밤바람에 그냥 입고 다니기로 했다. 반쯤 탄 2층짜리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까맣게 타버린 지붕은 누가 한입 베어 문 것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현장엔 경찰차 2대가 먼저 와있었다. 현장 보존을 위해 화재가 발생한 어제저녁부터 줄곧 자리를 지켜 주신 것 같다. 감사 인사를 건네고 노란 폴리스라인을 건너려는 데 경찰 한 분이 물어왔다.


“자살 맞죠? 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이해가 안..”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주임님이 날 불러 세웠다. 현관문을 닫고 티 나게 한숨을 쉬셨다.


“누가 멋대로 대답하래.”

“죄송합니다.”

“누가 보면 네가 목격자인 줄 알겠다. 현장 안 봤는데 잘도 판단하네.”

“죄송합니다.”

“장난이야. 기죽지 말고. 2층 바닥은 위험할 수 있으니까 잘 보고 걸어. 너 다치면 나 잘린다.”



  장마철의 꿉꿉한 공기 탓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목조 계단엔 2층으로부터 온 까만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삐걱삐걱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2층에 도달하니 찬바람이 들이쳤다. 천장에 난 커다란 구멍 사이로 그믐달이 새초롬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 그친 뒤의 밤하늘은 나름의 맑음을 가지고 있다. 뚫리게 된 과정이 좀 그럴 뿐이지, 인테리어적으로는 괜찮은 구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긋 웃는 나를 보고 주임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좋냐. 얼른 끝내고 가자. 저기에 스탠드 놓고.”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 준비해온 조명을 세웠다. 발전기에 연결하니 강한 빛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주임님은 카메라를 건네받고 말없이 연발 사진을 찍었다. 조용히 손으로 가리키면 나는 그곳으로 조명을 옮겨 놓았다. 뭐라도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제자리에 서서 사진을 확인하시던 주임님은 문득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사고 화재일까?”

“예?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아래에선 잘 얘기하더구먼.”


  만족스러운 사진을 못 구한 듯 다시 카메라를 눈에 가져갔다. 셔터를 누르며 질문을 이었다.


“뭐 때문에 불이 난 것 같아?”

“음. 담배꽁초나 전기 합선 이런 거 아닐까요?”

“너무 이론적인 답변 아니야? 네 눈으로 둘러봐. 바닥에 담배꽁초 하나 있나. 전기도 잘 쓰고 있고. 화재 원인 1위를 물은 게 아니라, 네 생각을 물은 거야. 아까처럼 자신 있게 말해봐.”


  고생길이 훤했다. 아까의 섣부른 대답으로 인해, 며칠간 시달릴 것 같았다. 곤란해하는 내 표정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유류 화재야. 너 지금 서있는 바닥 봐봐. 시꺼멓게 얼룩졌지? 까만 부분은 불이 붙었던 곳이야.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마치 물이 튄 것처럼 군데군데 얼룩졌어. 불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띄엄띄엄 불이 날 수 있을까? 얼룩도 일반화재에 비해서 경계가 뚜렷하고.”

“그런데 기름 냄새는 안 나는데요?”

“서울대, 오늘 왜 이래. 아까 그렇게 하늘 쳐다봤으면서. 어제오늘 비도 오고 바람도 워낙 많이 불었잖아. 이런 조건에서 하루 지났는데도 냄새 남아있는 게 이상한 거지. 게다가 어제 보니까 물 억수로 쏴 대더라. 적당히 쏘라니까 에휴.”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나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말했다.


“그냥 내 추측이야. 정확한 건 크로마토그래피로 따져봐야 알지. 그나저나 바닥 뜯어봐야 하니까 좀 나와줄래? 심도 좀 확인해보게. 거기 엄청 약해졌을 거야. 너 그러다 1층으로 떨어진다?”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발을 떼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발화원이 추리되었다. 매일 장난치는 주임님의 보기 드문 진지한 모습이었다.


“할 일 없으면 옆방 가서 미리 시신 사진 좀 찍어놔. 기절 안 하게 조심해라. 장갑도 챙겨. 모포 들출 때 피부 손상 안되게 천천히 들추고. 내가 봤을 땐 이거 자살 아닐 수도 있다.”



  무서운 얘기를 태연하게 마무리하시고는 장갑을 던져 주셨다. 구급활동을 하며 시신은 수없이 봐왔지만 화재로 인한 시신은 처음이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방 문을 열었다. 파란 천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이 주소를 토대로 추적한 결과, 50대의 남성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바닥엔 천 둘레를 따라 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범죄현장에 온 기분이었다.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아 아까 받은 장갑으로 바꾸어 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천천히 천을 들추었다.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단백질과 지방 특유의 탄 냄새.


  대부분의 관절(joint)이 약간씩 굽어 있었다. 예상한 모습대로였다. 우리의 근육 속엔 단백질이 존재하는데, 열이 가해지면 수축한다. 생리학적으로 관절을 펴는 근육보다, 관절을 굽히는 근육이 많다. 열이 가해지면 펴지기보다는 굽어진다는 뜻이다. 하반신 전체엔 3도 화상(burn)을 입었다. 조금 남은 거뭇한 피부엔 여기저기 물집이 나 있었다. 터져 나온 진물이 굳어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들춰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피하조직도 괴사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반신과 얼굴은 그나마 나아 보였다. 얼굴엔 그 흔한 빨간 발적(redness)이나 종창(swelling) 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타다 만 머리카락을 만져 보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임님이 매섭게 노려보고 계셨다.


“만지려고?”

“아닙니다.”

“호기심 대단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난 무서워서 잘 보지도 못하겠던데.”


  말씀과는 다르게 주임님은 태연한 표정으로 시신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시신의 콧속에 핀셋을 갖다 대었다. 코털을 하나 뽑아 투명한 팩에 넣고는 내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장난거리를 발견한 유치원생 같은 눈빛이었다.


“이게 뭘로 보여?”

“예? 코털 아닙니까?”

“그냥 코털이 아니야. 아주 쌩쌩한 코털이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이 난 듯이 조끼에서 면봉을 꺼내셨다. 일반적인 면봉과는 달리 빨대처럼 길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찼다.


“이거 이거 배운 걸 써먹지 못하네. 화재 현장에서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기체가 뭐야?”

“일산화탄소입니다.”

“그래 맞아. 그런데 왜 위험해 그게?”

“피해자의 호흡에 의해 혈류로 들어가게 되는데, 산소보다 헤모글로빈 결합력이 높아서 산소 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크. 데리고 다닐 맛 나네. 완벽한 답변이야.”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곤 면봉을 환자의 굳은 입 속으로 깊게 집어넣으셨다.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나는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런데 그게 코털이랑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응? 이미 넌 답을 말했는데? 아까 한 답변 다시 말해봐.”

“피해자의 호흡에 의해...”


  말을 잇지 못했다. 놀라웠다. 주임님은 뿌듯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시신의 목 속으로 면봉을 들이밀었다. 화재 현장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심한 기침과 호흡 곤란을 호소한다. 매연의 열에 의해 콧속이 검게 타버린 환자들도 많다.


  하지만 오늘 나는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마주한 화재 환자들의 증상은 호흡을 함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었다. 호흡을 하기 때문에 기관지와 폐에 새까만 매가 부착되고, 호흡기 점막이 타들어 갔던 것이다. 역으로 호흡을 하지 않는다면 기관지는 깔끔할뿐더러 호흡기 점막도 온전해야 한다. 남자는 화재의 기전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망해 있던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는 말을 건네려는 순간, 주임님이 면봉을 꺼냈다. 들어갔을 때와 똑같이 하얬다. 팩에 면봉을 담으며 오랫동안 굽혔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굳이 내가 설명 안 해줘도 되지? 정확한 건 법의학자들이 와서 부검해봐야 알아. 나는 면봉으로 대충 감만 잡은 거야. 혈액 내에 일산화탄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 농도가 낮아야 신뢰도가 높아지는 허술한 방법일 뿐이지.” “진짜 신기하네요. 오늘 많이 배워갑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내려가며 주임님이 말을 이어 나갔다.


“가방끈 짧은 내가 염치 불고하고 하나 더 알려줄까? 사실 면봉 굳이 안 넣어봐도 돼. 내가 오자마자 얼굴부터 봤잖아. 발적이나 종창이 일어났나 확인한 거야. 그것도 사실 손상에 대한 생체반응이거든. 쉽게 말하자면, 음, 피부로 혈액공급이 많아지는 거야. 눈치챘겠지만 이것도 살아있는 사람한테나 일어나는 거야. 이미 죽은 사람한테는 손상을 회복하기 위한 혈액공급이 일어날 리가 없지.”


  양손 가득 조명을 들고 철수 준비를 했다. 문 밖을 지키고 있던 경찰분들께 인사를 건네고 폴리스라인을 넘어 나왔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어 주임님께 말을 건넸다.


“그냥 이렇게 돌아가요? 화재사가 아닌 거잖아요. 이미 죽어 있던 사람이 불을 지를 수는 없으니까, 자살이 아니라 방화예요 방화. 이런 외진 곳까지 찾아와 방화할 정도면 평소에 안면이 있는 사람이 저지른 일일 거예요. 나름 중범죄인데 그냥 사진만 찍고 가버린다고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주임님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뾰로통한 나를 보고 웃으며 답했다.


“또, 또 멋대로 판단하네. 증거 있어? 혼자서도 충분히 시간차 두고 불 피울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방화의 가능성은 충분해. 혹여나 네 추측이 맞다 하더라도, 거기부턴 우리 관할이 아니야. 굳이 범인 잡아서 영웅 되고 싶으면 여기 남아서 경찰 시험 준비해. 얼른 안 타면 출발한다?"


  언제나 제멋대로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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