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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현 Dec 13. 2018

경련이 온 부모를 지켜봐야만 하는 심정

[구급출동] 경련

  서울에 올라간 이후로 그 흔한 문자 한번 보내지 않던 여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응급실에 왔다고 한다. 매일 같이 오가던 곳인데도 동생의 입에서 나온 응급실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침착한 톤으로 상황을 물었다. 속눈썹을 마는 뷰러에 눈동자를 데었다고 한다. 주말이라 안과(EY) 전담의사가 없을 것 같아 걱정은 커져만 갔다.


  동생은 언제 다쳤냐는 듯 오늘도 신나게 속눈썹을 말고 있다. 흉터는 이틀 만에 말끔히 사라졌고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지금 와서 보면 웃고 넘길 에피소드이지만 그때의 나는 냉철함을 잃었다. 동생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앞은 보이는지, 데인 부분에서 출혈이 있는지를 캐물었다. 응급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보호자들을 보고 의아해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풀 베드의 응급실에 겨우 이송을 마치고 귀소하려던 저녁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실루엣의 남자가 우릴 향해 다급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구조대에 계시는 반장님이셨다. 무서운 인상에 말수도 적어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반장님이다. 손끝이 가리키는 곳엔 차 한 대가 서있었다.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조수석에 쓰러져 계셨다. 방에서 넘어진 이후로 대답을 안 하고 눈도 못 뜬다고 한다. 아마 넘어지는 과정에서 뇌에 충격이 가해진 것 같았다. 반장님은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라고 말했다.


  사실 119 구급대에서는 병원 간 이송(transfer)을 금하고 있다.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할 때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사설 구급차나 본인의 차로 이송해야 한다. 하지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반장님의 부탁을 그냥 져버릴 수 없었다. 본부의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자체 접보를 요청한 뒤, 반장님과 환자를 구급차에 태웠다.


  대학병원까지는 거리가 상당했다. 긴 이송 동안 환자가 의식을 잃지 않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도착을 10여 분 남긴 시점에 잠잠하던 환자가 갑자기 발작(seizure)을 일으켰다. 경기라고도 불리는 데, 쉽게 말하자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정신적인 충격, 고열, 항상성 손실 등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발작은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지만 대부분 뇌전증(epilepsy)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뇌전증은 속된 말로 지랄병, 간질이라고도 불렸지만 요즘엔 순화된 단어를 쓰는 추세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우선 환자 머리 주변에 푹신한 모포를 둘러, 추가 피해를 막았다. 옷의 단추와 허리띠를 풀어주고,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고개도 옆으로 돌려주었다. 심박수가 약간 상승한 것만 제외하면 활력징후는 정상범위에 머물렀다. 1분에 걸친 발작이 끝났고, 시각을 정확히 기록했다. 얼마나 뇌가 손상되었을지에 대한 대략적인 판단을 돕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1시간 동안 말이 없던 반장님이 얼굴을 감싸 쥐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곤 감정이 주체되지 않는지 자신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연달아 내리쳤다. 언제나 냉철함을 유지하던 반장님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반장님이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어 댔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는 자신의 부모였다. 손 쓸 방도 없이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자식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환자를 병원에 인계한 후 반장님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괜찮으실 거라고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반장님은 먼 거리 달리느라 고생했다며 우릴 꼭 안아 주셨다. 차에 올라타 키를 꺼내는데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었다. 아까 안아주면서 몰래 넣어 두신 것 같았다. 소방서에 돌아오니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돈을 반장님의 사물함에 놓아두었다. 사무실에서 적어온 쪽지도 옆에 두었다.


‘반장님도 아시다시피 119는 이송 비용 안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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