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현 Dec 20. 2018

소방차 좀 치워주세요

[화재출동] 기타 화재

  늦은 저녁, 중형 펌프차를 타고 인근 바닷가로 향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지역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밤바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역인 만큼, 해양공원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제가 한창인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펌프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길거리 음식 냄새 사이로 바다 내음이 밀려온다. 벤치에 편히 앉아 축제를 즐기고 싶었지만 마냥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 현장 안전관리와 불꽃놀이로 인한 화재예방이 지원출동의 목적이었다. 시에서 급하게 인력을 보충했는지, 자원봉사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많이 보였다. 한 때 봉사활동에 맛 들였던 나로서는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내게 슬럼프가 찾아왔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휴학을 신청하였지만, 정작 할 일이 없으니 삶이 더 피폐해졌다. 악순환을 끊으려 시도한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사범대에 재학하며 교육봉사는 수없이 해왔기에 다른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시설 내부 청소부터 요양원 보조, 거리 홍보, 헌혈까지.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보람을 느껴서라기보다는, 단지 나의 만족을 위한 행동이었다. 한 달간 무려 100시간 봉사라는 기록을 세워 한 때 우수봉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봉사활동이라지만, 사실 내게 더 득이 된 시간이었다. 이리저리 다니며 몸도 건강해졌고, 마음 따뜻한 새 사람들을 만나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었다. 봉사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눈 앞에 떨어지는 득은 없었지만, 그 경험들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축제 현장의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요원들에게 감사인사를 건네려는데 무전기가 급한 목소리를 냈다. 출동 요청이었다. 단말기로 지령서를 전해 받았다. 아파트 205호에서 탄 냄새가 나는데 문이 잠겨 있다고 한다. 안에 시각장애인 한 분이 사는데 대답이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지휘차는 개인안전장구 착용과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무전을 남겼다. 매 화재출동마다 듣는 무전이지만 요구조자가 장애인이라는 점에 더 곤두섰다.


  인파가 적은 쪽에 차를 대어서인지, 펌프차는 재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5호 문 앞에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은커녕 인기척 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복도 쪽에 난 창문 사이로 탐조등을 비추었지만, 방문이 모두 닫혀 거실은 보이지도 않았다. 연기가 옅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10분 거리의 구조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한쪽에서 현관문 개방을 시도하는 동안, 나머지 인력은 뒷 베란다 쪽을 공략하고 있었다. 사다리를 전개해 올라가서, 잠겨 있던 베란다 문을 흔드니 곧바로 진입로가 확보되었다.



  화염은 없었다. 바닥에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누워있었다. 남성을 향해 소리치니 금방 일어나셨다. 쓰러진 게 아니라 주무시고 계셨던 것 같다. 요구조자를 부축하여 현관문으로 향하는 동안, 가스 밸브를 잠갔다. 냄비 안에는 무엇이 끓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음식물이 새까맣게 탄화되어 있었다. 환기를 위해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어르신을 의자형태의 들것에 앉혔다. 상태는 매우 양호해 보였지만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고 권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병원에 갈 것까진 없다고 극구 부인하셨다. 탄 냄새가 아직 빠지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셨다. 아마도 복도에서 수군거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으신 것 같다. 윗집 주민으로 보이는 남성은 이제 두 돌 된 아기가 있는데 탄 냄새가 올라오니 205호 문 좀 닫아 놓으면 안 되냐고 화를 내었다. 경비아저씨가 다가와서 소방차 경고등 좀 꺼 달라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전해주었다. 축제에 가보아야 하니 소방차 좀 빨리 빼 달라며 고함을 지르는 부부도 있었다. 비록 보이진 않더라도, 사람들의 차가운 목소리는 어르신의 귀에도 다 들어온 것이다. 고요했던 마음속에, 폭죽 터지듯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난 현장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어르신을 구급차로 안내했다. 시각장애인 안내 봉사를 하며 배웠듯이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내 팔을 내어드렸다. 집에 들어가겠다던 말씀만 하시던 어르신은 조용히 내 팔꿈치에 손을 올리셨다. 복잡한 복도와 계단을 돌고 돌아 구급차에 앉혀드렸다. 요양보호사는 저녁 7시에 이미 퇴근했다고 한다. 가스에 올려 둔 냄비를 깜빡하신 것 같다. 눈에 불을 켜던 주민들은 어르신을 내리보며 하나 둘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현장에서도 집에 들어와도 좋다는 사인을 보내주었고, 어르신을 집까지 안내해 드렸다. 아직 탄내가 약간 남아있었지만 어르신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혹시 나중에 병원에 가고 싶어 지면 연락해달라는 말을 건네고 소방서로 돌아왔다.


  봉사활동 당시 가장 많이 주고받았던 질문은 '봉사활동 왜 하러 왔냐'였다. 대학 졸업을 위한 학점 이수, 취업을 위한 스펙 준비, 자기만족 등 이유는 다양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진정 봉사가 아니겠냐는 얘기도 있지만, 나는 이기적인 목적의 봉사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입으로만 남을 돕자고 말하는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구급대가 병원 이송을 하지 못했음에도 성난 주민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비수를 꽂는 말만 늘어놓은 그들보다는 보람찬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사다리를 정리하며 직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주민들이 너무 매정한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침착하게 현장을 되짚어보았다. 인성의 차이라기보다는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하며 속을 가라앉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관점이 각자 달랐을 뿐이다. 윗집 주민은 본인의 자식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이고, 경비아저씨는 주민들 다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마음 아픈 사실이 하나 생각났다. 윗집의 아이, 아파트의 주민들과 달리, 아저씨를 지켜주는 사람이 과연 있는지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이전 09화 경련이 온 부모를 지켜봐야만 하는 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