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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현 Jan 03. 2019

학생은 짓밟힌 꿈을 주워 담고 구급차에 올랐다

[구급출동] 염좌

  우려와 걱정을 한 아름 안겨줬던 평창 올림픽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개막식부터 컬링까지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폐막식과 동시에 올림픽 파견 근무 나갔던 반장님이 돌아오셨다. 많은 인원이 몰리는 국제 행사인만큼 인력지원이 필요해, 전국의 소방관들이 차출되었다. 한때 자원봉사자에 대한 대우가 논란이 되었던 만큼, 반장님의 무사귀환이 반갑기만 했다.


  복귀 첫날 하루 종일 올림픽에 대한 후기를 들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놓친 나로서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반장님은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크로스컨트리는 스키계의 마라톤으로 메달 수가 많고, 가장 긴 올림픽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목이다. 하지만 긴 경기시간과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나 역시 반장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선수가 출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준결승까지 오른 한국 선수는 경기 중 크게 넘어져 팔꿈치에 무리가 갔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반장님은 선수들의 이런 의지덕에 배운 점이 많다고 하셨다. 눈물과 땀은 꼭 나의 것이 아니더라도 깨우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자극을 받은 나는 휴일을 이용해 수영장을 찾았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날이 더웠지만 이왕 운동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는 오기가 생겨,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보았다. 체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과한 게 있다면,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길치였다는 것이다. 길도 물을 겸 더위도 식힐 겸 해서 운동경기장 내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무실은 잠겨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운동경기장 내부로 향했다. 밝은 태양빛에 눈이 부셔 잠시 멈춰 섰다. 아주 잠깐 서있는데도 햇볕은 뜨겁게 내리쬈다. 뜨거운 우레탄 냄새가 올라왔다. 시야가 차츰 회복되자 넓은 트랙이 눈에 들어왔다. 텅 빈 트랙 위에 한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서있기도 힘든 바닥에 어떻게 앉아있을 수 있나 신기했다.


  길을 물으려 학생 곁으로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꼈을 법도 한데 고개 한번 돌려주지 않았다. 매미가 너무 시끄럽게 울어 대서 눈치 못 챈 건가 싶었다. 가까이서 보니 무릎을 감싼 손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앉아있었던 것 같았다. 좀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 말을 붙였다.


  “훈련 중에 죄송한데요, 혹시 수영장 가는 길 아세요?”



  학생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세를 고쳐 잡는데 퉁퉁 부은 발목이 눈에 띄었다. 오래 방치한 것 같이 멍이 들어있었다. 단순한 염좌(sprain)가 아니라 타박상인 것 같기도 했다. 발목도 발목이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하늘에서 때려 붓는 광선에 학생이 걱정되었다.


  “잘 아는 건 아닌데요, 이렇게 앉아있으면 위험해요. 저기 그늘에서 쉬는 게...”


  학생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어색한 눈 맞춤이 몇 초 이어진 뒤 학생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잘못 건드린 기분이 들어 사과를 하고 천천히 빠져나왔다. 출구를 향해 가다가 쓱 한번 뒤돌아봤는데, 학생이 절뚝거리며 트랙을 돌고 있었다. 걱정이 가시지 않아, 가던 길 멈추어 제자리에 섰다. 돌아가 봤자 손도 못 대게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몇 발자국 옆으로 옮겨 그늘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바닥에 앉았다. 아래위로 밀려오는 뜨거움에 속이 갑갑했지만 그냥 앉아있었다. 열심히 달리는 학생을 적당한 거리에서 응원해주고 싶었다. 학생은 역시나 얼마 못 가 넘어졌다. 병원에 가보자고 말을 했더니 이번엔 싫은 티 내지 않고 침묵만을 유지했다.



  임시 보호자 신분으로 구급차에 동승했다. 응급처치를 하고 신원정보를 적기에 바빴던 평소와 달리, 보호자 입장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학생이 대답하는 것을 옆에서 듣기만 했다. 입을 열지 않던 학생은 구급대원에겐 가감 없이 술술 털어놓았다. 대회 준비에 한창이던 지난달 학교 선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학생의 동의를 구한 구급대는 경찰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병원을 나왔다.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한 선수의 마음.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헤아리기 힘든 부분이라 생각했다. 아픈 발목을 이끌고서라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올림픽에서 부상당한 선수 못지않게 슬펐을 것 같다. 그런 아픔을 불러온 학교폭력에, 원망하는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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