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현 Nov 08. 2018

차량은 완전히 침수되어 두 줄기의 빛만 새어나왔다

[구조출동] 차량침수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지만, 소방서에 들어오고 나서는 몸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구급, 구조를 불문하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방서 내 체력단련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대원들로 북적인다. 가장 좋아하는 푸시업을 하던 중, 헬스장이 조용해지고 앵커의 목소리만 남았다.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란다. 뿌듯해하는 나와 달리, 대부분의 직원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뉴스 보도와는 다르게, 실제 현장에 나가면 소방관들은 온갖 모욕을 받는다. 이렇게 열심히 체력 관리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식사시간을 막 넘긴 즈음의 저녁. 연말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해가 굉장히 빨리 져 어둑어둑했다. 소방서 인근 부두에 차가 물에 빠졌다는 신고를 받았다. 신고자와 통화한 바,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제발 차만 빠진 것이길 바랐다.


(본 출동과 관련없는 장소입니다)


  현장은 부두라기보다는 공사장에 가까웠다. 배는 거의 없었고, 바닥은 시멘트 가루가 가득했다. 빛 한 줄기 없는 이런 삭막한 곳에 신고자가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구급차에서 내려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둑한 밤바다의 수면 아래로 두 줄기의 빛이 보였다. 이미 자동차는 완전히 침수되어 있었다. 잠수함이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완전 침수는 해경은 물론 구조대도 버거워하는 곤란한 상황이다. 물속에서는 차 문이 잠겨 있지 않더라도 쉽게 열 수 없다. 물의 압력 탓에 문을 당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창문을 부수고 싶어도 물의 저항 때문에 망치를 세게 휘두를 수도 없어, 특수장비가 있어야 한다.


  곧이어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슈트를 갖춰 입고 바로 뛰어들었다. 차량이 빠진 곳까지 헤엄쳐가는 동안, 우리 구급대는 CPR 준비를 했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AED와 기도삽관(Intubation) 준비 등을 모두 마치고 두 손 모아 기다렸다. 먼발치에서 구조대원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수할 때마다 우리의 호흡도 같이 멎었다. 몇 번의 물질 끝에 상황을 전달받았다.


“일단 한 명 보여! 창문 열려 있긴 한데 틈이 좁아서 깨야 해. 락벨트랑 파쇄기 갖고 와!”


  뭍에서는 거리가 있었기에 해경의 선박을 타고 가서 전해주었다. 가까이서 본 상황은 더 섬뜩했다. 물에 의해 합선되었는지, 물속에서 와이퍼가 윙윙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마 차량의 문도 오토락에 의해 잠겨 있을 것이

다. 그새 더 가라앉은 차의 라이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박에서 내려 서로 분담한 역할을 점검하는데, 구조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소방관들이 여럿 달려들어 로프를 당기기 시작했다. 구조대원 품에 안긴 요구조자가 보였다. 초기 신고가 있은 지 28분 만에 뭍으로 나왔다. 완전 침수된 지 대략 21분 되었다 가정하면 심정지는 약 20분 정도. 긴 시간이지만, 익수환자는 일반적인 CPR 환자보다 소생률이 월등히 높다. 게다가 심정지 환자치고 젊은 축에 속하는 40대 남성이었기에 가능성이 보였다.


  상반신의 물기를 닦고 바로 AED 패드를 붙었다. 동료 구급대원이 기도에 관을 삽입하는데 계속 구토물이 나왔다. 흡입(suction)하는 속도보다 토해내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도확보에 난항을 겪는 만큼 가슴압박 시간은 길어졌다. 내 뒤를 이어 다른 구급차의 대원이 압박하고, 그 뒤를 이어 해경이 압박을 도왔다. 기도삽관에 겨우겨우 성공해 공기를 넣어주는데 구토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감염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쓰라는 게 이런 것 때문이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정맥주사가 끝나는 대로 응급실로 이송했다.


(사하구조대 훈련 사진입니다)


  환자 인계를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지금까지 경험한 CPR 중 가장 힘들었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고, 무릎과 팔꿈치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 구급차 내부는 더 가관이었다. 아까 꺼내면서 서로 엉킨 튜브, 쓸 틈 조차 없던 구명조끼, 주렁주렁 걸린 수액, 그리고 이곳저곳 튄 토사물. 출동이 불가하다고 본부에 알리고, 소방서로 돌아와 청소를 시작했다. 기분이 멍했다.


‘소방관이 어째서 존경받는 직업 1위지.’


  더러워진 담요 세탁을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담요가 든 검은 봉투를 들고 응급실로 들어가는데 벤치에 앉은 여인이 불러 세웠다. 안에 든 게 혹시 옷이냐고 물으시는 걸 보니 요구조자의 보호자인 것 같았다.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건의 원인을 예상할 수 있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껌을 씹고 있었다. 부부싸움이 있은 후 남자가 뛰쳐나갔다고 했다. 그녀는 땀범벅이 된 우리를 보고 몇 마디 내던졌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왜 그리 애를 썼대요? 하여간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융통성이 없어, 융통성이.”


  순간 머리가 돌아, 욕이 나올 뻔했다. 눈치챈 선배가 바로 내 어깨를 잡고 막아섰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응급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법에 나와있지 않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고, 상관의 명령에는 무식할 정도로 곧게 복종하는 게 내 모습이었다. 민원이 들어오지 않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익숙했다. 허탈했다. 존경받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라니. 그날은 습관이 된 운동도 거르고 바로 잠자리로 향했다. 그렇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발 뻗고 잘 수가 없는 밤이었다.

이전 03화 그를 생각하며 불어터진 라면을 욱여넣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