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방 DIY의 즐거움
신림동 보증금 300에 월세 42만 원, 관리비 7만 원에 전기, 가스 별도.
신림역 도보 10분 이내.
어린 왕자 책을 읽다가 덮어버린 나에겐, 구구절절 세세한 묘사보다 이 편이 편하다.
경전철 신림선이 아닌, 2호선 신림역에 꽤 가까운데 보증금과 월세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집 컨디션과 크기가 우리 어른이들이라면 쉽게 짐작 갈 터. 살면서 본 가장 작은 화장실과, 가장 작은 방에서 살고 있다(고시원 제외).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신발장이 있는 현관으로 올라서서 하거나, 허리를 비틀어서 요리를 해야 할 만큼(이런 방은 꽤 흔하다)
이 집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좁은 집에 침대가 있는 것이 매우 싫었기에, 침대가 없어야 했다. 그리고 책상은 주로 시간을 보낼 곳이니 넓었으면 했다. 주차가 되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을 만족시키는 신림동 매물은 많지 않았기에, 다른 집은 굳이 둘러보지 않고 그냥 바로 계약했다. 방 안에 가득했던 퀴퀴한 냄새는 창문 닫아놓고 사람이 안 살아서 그랬겠거니 하고.
여기 있는 1년 동안, 방역 탓에 복도에서 배 까뒤집고 죽어있는 바 선생을 몇 번 뵌 적 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바 선생을 뵌 적은 없으니, 나름 만족하며 지내고 있는 곳이다.
적당히 대충 관리된 컨디션이기에, 나도 대충 살다가 가려고 했지만, 이 집의 내구성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주방과 마주 보고 있는 작디작은 화장실 문지방 시트지가 벗겨져버린 것이다. 그냥 테이프로 붙여놓고 대충 살려고 했다. 하지만 화장실이 좁기에 샤워를 하면 반드시 이 문지방 부분에 물이 한가득 쌓인다. 그리고 시트지가 갈라졌기에 그 안으로 물이 들어간다. 청소를 해도 소용없다. 시트지 안쪽까지 청소가 불가능하기에 겉만 청소한다고 해서 청소가 되는 게 아니었다. 시트지를 갈아야 해결되는 부분이었다. 여름이 되자 비위를 상하게 하는 곰팡이 냄새가 심해졌다.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집주인분께 연락을 드렸다. 며칠 후 집 상태를 확인하러 오셨다.
"아니, 난 보내준 사진을 보고 아예 물이 줄줄 새는 상태인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네요.... 그런데 이걸로 업자를 부르면.... 요즘 인건비가 또 비싸잖아요."
집주인이 난색을 표했다.
"그럼 제가 그냥 시트지 사서 작업해도 될까요? 사실 그냥 제가 작업해버리고 싶었는데, 제 집이 아니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연락드린 거예요."
"아니,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그럼 너무 고맙죠. 재료비 얼마 들었는지 알려주면 내가 보내줄게요."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자차를 운용하며 와이퍼 모터 같은 부품을 유튜브를 참고하여 DIY 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 정도는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뜯어진 시트지 조각을 들고 다이소를 갔다. 똑같은 시트지는 구할 수 없었고, 최대한 비슷한 2000원짜리 시트지를 골랐다. 물이 들어차서 곰팡이가 슬지 않게 하기 위해 3000원짜리 마감용 실리콘도 샀다. 집주인분께 시트지 색깔이 괜찮은지, 실리콘 마감해도 좋은지 컨펌을 받았다.
그런데 작업에 필요한 문구용 칼을 사지 않았다. 호기롭게 작업할 수 있다고 집주인분께 말씀드렸지만, 칼이 없다는 핑계로 치일피일 미루었다. 시트지 사이에 낀 물 때와 곰팡이 냄새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칼을 빼 들었다.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핵심은, 0.5cm 정도 살짝 여유롭게 끝부분의 시트지를 남겨두어 마지막에 칼로 깔끔하게 잘라내어 마무리를 하는 것. 나머지는 휴대폰 액정 필름 붙이기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먼저 곰팡이 그득한 시트를 떼어내서 버렸다. 곰팡이 냄새가 고약했다. 하지만 그동안 닦아낼 수 없었던 시트지 안쪽 부분을 알코올 스왑으로 빡빡 닦아내니 속이 너무 시원했다. 시트지 안쪽 재질은 물이 스며드는 재질은 아니어서, 장기간 물에 노출되었음에도 크게 손상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새 시트지를 사이즈에 맞게 땀을 뻘뻘 흘리며 재단을 했다. 휴대폰 필름 붙일 때보다 훨씬 더 긴장감이 들었지만, 작업을 시작했다. 사이에 공기가 차면 열심히 다시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공기를 열심히 밀어주느라 손 끝이 다 갈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과는 대실패!
중간에 턱 지점까지는 나름 깔끔하게 되었으나, 턱을 감싸고부터는 기포 대환장 파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재단 실수로 마지막에는 사이즈가 안 맞기까지! 설상가상으로 마지막 마감 칼질을 잘못해서 처음에 맞았던 부분도 시트가 부족하게 되어 버렸다. 대충 넘어가려야 넘어갈 수 없는 대참사였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첫 번째 시도한 시트지를 다시 떼어내었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난 경력자가 되어버렸다. 턱 부분을 깔끔하게 마감하기 위해선, 턱 부분 위쪽과 턱 부분 아래쪽 2개의 시트로 나눠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는 팁도 생각났다. 턱 아래쪽 부분을 먼저 붙이고, 턱 위쪽 부분이 턱 아래쪽 부분을 감싸 안으며 붙이면, 마감도 깔끔하고 물도 안 들어가겠다.
짧은 시간 노하우를 터득하고 2차 시도를 진행했다. 30분 정도 기포와의 사투 끝에 깔끔하게 성공하였다. 마지막 칼질 마감도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깔끔하게 마무리 한 뒤, 옆 부분에 물이 들어차서 다시 곰팡이가 슬지 않게 실리콘으로 마감을 해 주었다. 기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안 보면 모를 정도로 나름 준수하게 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시트지를 살 때는 색이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시트지를 붙여놓으니, 기존의 시트지와 크게 이질감은 없었다.
실리콘이 마를 때까지 하루를 기다린 뒤, 샤워를 해봤다. 항상 질퍽질퍽했던 문지방인데, 이젠 새 시트지에 물방울이 예쁘게 또로록 맺힌다. 깔끔하게 물방울을 쓸어낼 수 있게 되었다! 곰팡이 냄새로부터도 해방! 내친김에 화장실의 다른 곳도 청소를 했다. 휴지에 희석된 락스를 묻혀 곰팡이 위에 올려 10분간 기다렸다.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가 줄곧 이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걸 보고 자랐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변기와 타일에 있던 곰팡이도 섬멸해 버렸다. 변기와 바닥 사이의 시멘트 마감이 세월이 지나 틈이 생겨 개미가 들어오던 부분도 남은 실리콘으로 마감해 버렸다.
집이 좁아서 그동안 문지방과 화장실에 있는 곰팡이 냄새는 방 안에 쉽게 퍼졌다. 그걸 다 내 손으로 없애버리니 너무나 속이 시원했다. 드나들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졌던 문지방은, 이제 드나들 때마다 기분이 좋다. 괜히 발로 슥슥 문지르며 깔끔한 감촉을 느껴보기도 한다. 업자를 불러 해결했다면, 이 정도로 애착은 생기지 않았을 터. 내 손으로 해결한 문제이기에,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렇게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히는데....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