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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Jul 11. 2021

나는 평생 게임 할 거다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




 창문에서 쏟아지는 환한 햇빛. 창가 선반에 올려진 TV. 양쪽 벽면에 4개씩 나열되어있는 8개의 침대. 침대 사이에 놓여있는 의료기기. 복도 사이를 걸어가는 간호사. 각자 침대에 누워 TV만 보고 있는 노인들.


 내 눈에 들어온 병실에는 각종 의료기기를 몸에 부착한 환자들이 영화처럼 누워있지만, 분위기는 고요했다. 병실을 채우는 소음이라고는 고작해야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삼류 드라마뿐이니까. 혼자서 오디오를 채우느라 고생하는 극 중 인물에게 추가 수당이라도 송금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중환자실. 큰 소음을 만들어 낼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없다. 아니, 그 정도의 활력을 가진 환자가 한 명 있지만, 손뼉이 마주치지 못해 소리가 나지 않을 뿐이다.


 어떻게 아냐고? 그 한 명이 바로 우리 친할머니이다. 같은 병실 환자와 싸우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쌍욕을 퍼붓는 통에, 쫓겨나듯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니까. 하필 중환자실에 온 이유도, 그곳에는 싸울 정도의 기력이 있는 환자가 없다는 이유였다.


 중환자가 아닌 할머니를 중환자실로 옮기자는 의사의 판단이 선견지명이었는지, 우리 할머니도 침대에 조용히 누워 TV만 보고 있었다.





 “어머니~ 잘 있었어?”


 그런 할머니를 발견한 어머니는, 딸처럼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침침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다친 허리에서 통증이 살짝 느껴졌는지, 입에서 “아이고, 아이고” 앓는 소리를 잠깐 뱉었지만. 건강은 꽤 좋아 보인다.


 “왔어?”


 치매기가 있다는 말이 무색하듯이, 우리 어머니를 바로 알아보는 할머니다. 며느리 뒤에 있는 둘째 아들과 손자놈을 보고도 인사를 한다.


 “밥은 먹었어?”

 “...”

 “밥은 먹었어!? 밥!”

 “응.”


 보청기를 껴도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소통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가족의 건강한 모습을 보는 게 중요하지.


 “자꾸 또 움직이면 허리 더 안 좋아지니까. 의사 말 잘 듣고 …”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을 할머니와 보낸 우리는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고 “어여 가.”라는 짧은 말씀을 하신다.


 “저도 갈게요.”


 의료기기를 만지고 있던 간호사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 부모님이 먼저 나가시고, 맨 뒤에서 있던 나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리시고, 다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TV를 바라보신다.





 ‘지루해 보여.’


 그런 할머니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이다. 아니, 병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꼈지만, 부모님의 수다로 잠시 잊고 있었다. 부모님이 병실을 나서는 순간, TV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자 다시 상기되었을 뿐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8명의 노인들은 TV를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생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적막한 공간에서 24시간 침대에 계셔야 하는 우리 할머니. 그리고 각 침대에서 각종 의료기기를 몸에 달고 누워있는 노인들. 그들이 느끼는 하루하루는 어떤 기분일까? ‘지루해 보인다’라는 20대의 감상평은, 인생의 막바지를 걸어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건방진 생각일까?




 그런 할머니를 보게 되니, 2017년 대학교 2학년 시절, 룸메이트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당시 우리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진짜. 나는 평생 게임 할 거다.”

 “나이 팔구십 먹어도?”

 “당연하지. 닌 안 할 거가?”

 “그때 되면 게임도 재미없지 않을까? 나이 들면 세상만사 다 귀찮아 진다매.”

 “놉. 게임은 절대 안 질림.”


 그날 했던 게임이 그렇게 즐거웠을까? 친구는 평생 게임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게임은 절대 질리지 않는다고 장담을 하면서.


 “근데, 나이 들어서 보청기 끼고 같이 게임하면, 오지게 웃기긴 하긋다.”

 “난 진짜 죽기 전까지 게임 한다.”

 “다 같이 실버타운 들어가실?”

 “오, 좋네. 밥만 먹고 게임하고 개꿀인데?”

 “병신. 닌 그때도 못 함.”

 “노. 개잘함.”





 그렇게 평소처럼 건질 것 하나 없는 헛소리만 늘어놨던 우리지만, 병실에서 TV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보니, 평생 게임을 하겠다는 친구의 말이 단순한 헛소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 또한 멍하니 TV만 보는 삶보단, 차라리 게임이라도 하는 삶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리고 친구와 나 같은 사람이 많다면, 미래에는 당연히 병실에서 TV보는 노인보다 컴퓨터 앞에서 게임하는 노인이 많아질 테니까.

 

 더욱이 지금은 모델 할아버지와 할머니 유튜버가 있는 시대가 아닌가?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는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이 더 넓어진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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