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어깨를 살포시 두드리는 손. 잠에서 깬 나는 무거운 눈을 떴다.
“팀장, 근무교대 15분 전이야.”
(당시 우리 부대의 신병교육대에서는 분대장 훈련생을 팀장이라고 불렀다)
나를 깨우는 전우의 말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체온으로 데워진 침낭을 나와 151번 숫자가 박혀있는 관물대에 손을 뻗었다. 땀 냄새가 짙은 전투복을 꺼내어 입고 탄띠를 둘렀다. 마지막으로 전투화를 신고 베레모를 썼다.
환복을 끝내고 잠시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늦은 새벽. 생활관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누워 자고 있는 훈련병들. 이가는 소리. 코고는 소리. 그들을 비추는 천장의 빨간 조명. 생활관 중앙 복도에 고여있는 물.
“졸졸졸”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던 전우가 수통의 물을 복도에 뿌린다. 건조한 2월이기 때문이다. 저 수통의 물이 생활관 습도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잠깐 잠을 깬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생활관을 나섰다. 근무교대 신고와 함께 근무자 교육을 들으러 행정반 앞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복도에는 나와 같은 훈련병 몇이 걸어가고 있었다. 곧 행정반 앞에 도착하고 몇 분 지나자 조교가 행정반에서 나와 인원 파악을 시작했다.
“근무 전에 화장실 꼭 가고….”
얼마 전, 불침번 근무 중인 훈련병이 조교에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보고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교는 해당 훈련병에게 얼차려를 부여했다. 당연히 그 훈련병은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이에 앙심을 품었던 훈련병은 마음의 편지를 적었고 해당 조교는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탓인지 당직을 서던 조교가 화장실 얘기로 몇 마디를 던졌다. (평소에는 잠든 눈빛으로 인원 파악만 하는 게 다였다)
“들어가”
“어, 고생해”
그렇게 몇 분간의 근무자 교육을 마치고 생활관으로 복귀하여 근무교대를 했다. 전 불침번 근무자는 순식간에 환복한 후 침낭으로 들어갔다. 생활관에는 전우들이 코고는 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복도를 비추는 은은한 빨간 불빛과 각 생활관 문 앞에 서 있는 불침번 근무자들 뿐이었다. 이제부터 1시간 30분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시발’
속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갑자기 왜 욕을 하냐고? 이제 훈련소에 입소한 지 겨우 한 달이다. 앞으로 20개월 동안 내 20대의 젊음을 국가에 바쳐야 하는데 욕이 안 나오겠는가? 그것도 한 달에 고작 15만 원 받으면서 말이다. 속에서 욕이 치밀고 답답함이 나를 옥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부동자세로 근무나 서고 있어야 한다.
‘배고프다.’
그 와중에 더 화가 나는 것은 굶주림이다. 훈련은 하루 종일 시키면서 밥은 쥐꼬리만큼 주는 훈련소. 여기에 있는 모든 훈련병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그중 가장 배고픈 시간대는 불침번 근무 중일 때다. 근무시간 1시간 30분 동안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라고는 오로지 음식밖에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고기 먹고 싶다. 치킨 먹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고작 한 달간의 굶주림 속에서 서서히 변하는 나 자신이 느껴진다. 항상 꿈과 미래를 고민했던 내가 사라졌다. 내 속에 남은 것은 오로지 처먹는 생각과 1차원적 본능뿐이었다.
‘자고 싶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말했던 존 스튜어트 밀. 나의 타고난 기질이 하찮기 때문일까? 위대한 철학자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어졌다.
“당신도 한 달 내내 굶겨놓으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까? 배가 부르고 싶은 돼지가 될까?”
역사에 길이 남은 철학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배가 부르고 싶은 돼지가 됐다고 말 할 수 있었다. 나를 직시하니 내 주제가 느껴졌거든. 더욱이 나는 내가 대단한 놈인 줄 알았으나 그건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는 사람. 북괴 놈들이 나를 잡아다가 고문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정도의 강단이 있는 사람. 나는 내가 그렇게 강인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 내내 굶어보니 내 머리에는 처먹고 자고 싸는 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내가 북괴 놈들에게 잡히면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고작 한 달간의 굶주림에도 본능에 충실해지는 내 몸뚱이는 그럴 주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까까머리 훈련병이었던 2015년의 나는 스스로를 직시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작은 놈이었다는 초라함을 느꼈다. 나의 깊은 내면에는 굶주림 속에서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가 없었다. 그저 본능에 충실한 돼지밖에 없었다.
그 탓일까? 과대망상 급의 이상주의자였던 내게 현실주의가 살짝 스며들기 시작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자마자 “난 하고 싶은 것만 한다. 죽을 때까지 덤비면 되긋지”라는 말과 함께 글로 벌어먹겠다고 날뛰었을 터. 일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박혀 글만 끄적거리거나 누린내를 풍기며 피렌체의 예술 거지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배고픔 속에서 소크라테스 빙의가 가능한 사람은 피렌체의 예술 거지 코스프레를 하더라도 목표를 이룰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배부른 돼지가 되어야 철학을 논할 수 있는 놈이다. 이런 내가 피렌체의 거지 코스프레를 하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이상주의가 순한 맛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나대기는 했어도 시작부터 글로만 벌어먹는 삶을 목표로 하지 않게 됐다. 외국을 가든 어디를 가든 항상 일자리는 먼저 구해놓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니 글은 돈이 안 되잖아? 굶어 죽기 싫으면 당연히 일해야지. 왜 당연한 말을 장황하게 하고 자빠졌냐?’ 라고 물으면 조금 뻘쭘하긴 한데... 과대망상 급의 이상주의자였던 내게는 꽤나 큰 변화였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글쓰기보다 일을 먼저 한다. 월급을 받고 배부르게 밥을 사 먹는다. 그리고 취미로 글을 쓴다. 그렇다고 내면의 이상이 전부 현실에 흡수당한 것은 아니다.
깊은 내면에는 언젠가는 나도 대단한 글을 쓰는 대단한 작가가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목표가 각인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이상은 절대 안 변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