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by 지누

#1


"요즘 AI가 대세인 거 다들 알죠?"

학원장이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걸 본 직원들은 모두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학원도 AI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AI를 활용해서 학생들한테 학습 커리큘럼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인데 앞으로 상담할 때 적극적으로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학원장이 한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선생! 강선생이 가장 젊으니까 사용법 잘 익혀서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알려주세요. 그리고 이따 저녁에 학부모 상담 오면 사용해 보고 후기도 알려주세요."

학원장은 한나에게 사용법이 적힌 안내 책자를 건넸다. 대충 알아서 잘 사용하라는 뜻이다.

'그럼 그렇지.'

한나가 안내 책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서비스는 간단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입력하면 AI가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커리큘럼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였다. 한 가지 특이한 건, 학원 커리큘럼을 따른 맞춤별 학습 방법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느 홍보물이 그렇듯 겉으로는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을 하자 학생 정보를 입력하는 대시보드가 나왔다. 한나는 홍보물과 함께 전달된 사용 설명서를 따라 학생 정보를 하나 고르고 입력하자 로딩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략 5초 정도가 지나자 학생의 성적에 따른 장점과 약점 진단 리포트가 화면에 나타났다.


디자인은 괜찮았지만 진단 리포트 자체는 딱히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수학을 못하는 학생한테는 수학 수업을 추천했고, 영어가 부족한 학생한테는 영어 수업을 추천해 줬다. 굳이 AI를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학원장이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는 건 결국 쇼맨쉽이 때문이라는 걸 한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야 월급만 들어오면 그만이지."



#2


7시가 조금 넘은 저녁 시간. 학원이 아이들로 붐비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데스크를 담당하고 있는 한나는 학원을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때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학원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상담 좀 받으려고 왔는데요?"

한나는 곧바로 서비스용 목소리를 장착하고 안내를 시작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한나는 상담실로 학부모와 아이를 안내해 앉혔다. 그 모습을 본 원장은 한나한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대충 AI 서비스를 써보라는 뜻이었다. 한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저희 학원에서 새로운 AI 상담 서비스를 도입해서요."

한나가 웹사이트가 띄어진 태블릿을 학부모한테 건넸다.

"태블릿에 자녀분의 성적을 입력하시면 AI모델이 자녀분한테 딱 맞는 수업과 학습법이 적힌 전문 리포트를 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학부모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이 동그래졌다.

"세상 정말 좋아졌네요."


태블릿을 건네받은 한나는 낮에 했던 것처럼 '분석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로딩바가 나타나 화면에 5초 정도 돌아가더니 뒤이어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이 나타났다.


"분석이 나온 건가요?"

"잠시만요… 제가 지금 확인해 볼게요."


당황한 한나는 태블릿을 돌려받고 새로고침을 해봤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뒤로 가기도 눌러보고, 앞으로 가기도 눌러봤지만 하얀 화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는 서둘러 뒤에 놔둔 안내 책자를 꺼내 그 안에 적혀있는 것처럼 CS 채널로 메세지를 넣었다.


[안녕하세요. 하버드 어학원입니다. 상담 도중에 빈 화면이 떠서 연락드립니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상담시간이 종료됐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한나는 짜증이 쏟아지는 걸 간신히 참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금 업체랑 연락해 봤는데 지금 잠시 서비스 업데이트를 진행 중이라고 하네요. 우선은 저랑 먼저 이야기를 하고 번호만 남겨주시면 AI 리포트는 제가 따로 알려드릴게요."



#3


답변이 돌아온 건,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한나는 이미 퇴근을 하고 막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지금 담당자를 연락해 원인을 파악하는 중입니다. 문제 해결 이후에 바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긴 시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장 한 번 빠르네."

한나는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놓고 일과 관련된 건 완전히 잊어버리기로 했다.


한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머리를 말렸다. 갑자기 맥주가 당겨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냉장고에 있는 작은 캔맥주를 하나를 꺼냈다. 오늘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그녀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TV로 보면서, 침대와 한 몸이 됐다. 휴대폰이 다시 울린 건, 졸음이 찾아와 슬슬 눈이 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원인 파악 완료했고 에러는 해결했습니다.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몇 시지?"

한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휴대폰에 보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이 사람은 지금도 일하고 있는 건가…"


한나는 문득 채팅창 너머에 있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손으로 하나씩 입력한 것 같은 글자들을 보면 아마도 사람이 답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자신과 같은 상담 전문 직원일까. 아니면 이 서비스를 만든 개발자일까. 이 사람은 지금 집에서 이 메세지를 보내고 있을 걸까. 아니면 회사에 홀로 남아 있는 걸까. 상담 도중에 에러가 나서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이 사람은 아직까지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한나는 답장을 하고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잠이 잘 오는 것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다시 울렸지만 그녀는 이미 잠에 든 상태였다.



#4


회의실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지안은 컴퓨터 하단의 시간을 확인했다. 회의가 시작한 지 벌써 두 시간을 훌쩍 넘었지만, 대표와 운영본부장은 아직도 처음 나왔던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이미 육체를 떠난 지 오래였다. 그녀는 반쯤 쓰다 만 회의록을 지난주 회의록과 비교했다. 달라진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럼 이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다음에 더 논의하자고. 다음은 뭐지?"

"어제 몇몇 학원장들이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AI 해설이 너무 뻔한 것 같다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해설에 내용을 좀 더 보완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얼마나 걸릴까요?”

운영본부장의 물음에 지안은 우주를 맴돌고 있던 자신의 정신을 빠르게 불러들였다.

"어떤 식으로 보완을 하면 될까요?"

"지안 님이 레퍼런스 찾아서 한 번 개선해 보세요. 중요하니까 다음 회의까지 알려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지안이 힘없이 말했다.



#5


회사에서 지안은 포지션은 개발자였지만, 그녀의 업무는 개발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회의에서는 기획자여야 했고, 개발을 하면서 디자인도 할 줄 알아야 했다. 무엇보다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면 CS도 대부분 지안이 처리했다. 그녀는 대표와의 1대1 면담에서는 추가 인력을 요청했지만, AI를 활용해 하루 만에 웹서비스를 배포했다는 유튜브 영상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결국 선택한 방법은 옥상에 올라가는 거였다.


옥상의 구석 자리는 지안의 작은 아지트였다.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 구석자리에 앉아 믹스 커피를 마시며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는 게 그녀의 유일한 휴식 방법이었다. 지안의 알고리즘이 그녀의 취향에 맞게 추천해 준 릴스들을 보며 혼자 키득거렸다. 빠르게 릴스들을 넘기던 중 광고 게시글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지안은 올렸던 스크롤을 다시 내렸다.


후지노 쿄모토 감독의 <룩백인앵거> 재개봉!


지안은 대학생 시절에 이 영화를 혼자 보러 갔던 기억이 났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상영관에 들어갔던 그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까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녀는 영화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영화일은 밥벌이로는 어렵겠다 느껴 포기했다.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지안이 선택한 건 당시 뉴스에서 한창 나오던 개발자였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지안은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영화관을 골라 표를 예매했다. 다행히도 자리는 많이 있었다. 문득 걱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지안은 결국 표를 예매했다. 입사 이후로 지금까지 앞만 보며 달려온 그녀였다. 이 정도 여유는 챙겨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지안은 자리로 돌아갔다.



#6


거의 1년 만에 와보는 영화관이었다. 한때는 영화가 너무 좋아 주말마다 오던 곳인데,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지안은 상영관에 들어가 의자에 앉고 몸의 긴장을 풀었다. 팝콘이나 콜라는 사지 않았다.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 그런 건 필요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까지 지안은 자리에 남아 그 여운을 즐겼다. 일과 잠시 멀어져 온전히 무언가를 즐겨본 게 언제였을까. 너무나도 그리운 감정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등에 달리 태엽을 감아준 기분이었다. 지안은 상영관을 나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휴대폰을 켜자 메세지가 하나 떠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버드 어학원입니다. 상담 도중에 빈 화면이 떠서 연락드립니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지안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잠금 해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내 단톡방을 들어갔지만, 'CS 확인하세요'라는 말만 있을 뿐, 아무런 대응도 없었다. 지안은 호흡이 빨라지고, 머리가 아파왔다.


[방금 메세지를 확인했습니다. 지금 바로 원인사항 파악하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늦게 확인해서 죄송합니다.]



#7


에러가 해결된 건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하기 위해 학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워드 파일에 들어있는 값이 서버에 저장된 값과 매칭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


[에러 해결했습니다.]

지안이 사내 단톡방에 메세지를 보냈다.

[CS 대응 마무리하고,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합시다.]

대표의 무덤덤한 답변에 지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영화 한 편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지안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CS 채널로 들어갔다. 클라이언트한테 답장을 보낸 후, 휴대폰을 내려놨다. 얼마 지나지 않아 CS 채널로 다시 메세지가 들어왔다. 지안은 떨리는 마음으로 메세지를 확인했다.


[늦은 밤까지 해결해 주시느라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에 지안은 얼떨떨했다. 사용 도중에 에러가 발생해 많이 당황스러웠을 텐데. 자신들의 답변이 너무 늦어 화가 났을 텐데. 늦은 밤에 메세지를 받아 짜증이 났을 텐데.


"강한나."

지안은 프로필에 적힌 이름을 나지막이 읽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글자에 담기도록 한 글자씩 정성스레 키패드를 눌러 답변을 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덧붙였다.

[보다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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