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보는 남자

by 지누

1


시현이 처음 그 시계를 보게 된 건 중학교를 올라가기 전 겨울이었다.


당시 시현의 가족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함께 지내는 동안 시현의 방을 사용했다. 엄마는 시현에게 할아버지가 쉬고 계시니 방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시켰지만 그는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가끔씩 방에 몰래 들어가고는 했다.


어느 하루, 시현은 평소처럼 엄마 몰래 방에 들어갔다가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 뻐꾸기시계가 하나 떠있는 것이었다. 그 시계는 허공에서 똑딱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놀란 시현은 다급히 뻐꾸기시계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은 시계의 몸통을 그대로 통과할 뿐이었다. 시현은 의아해하며 다시 한번 손을 뻗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방에서 난 소리를 들은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현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시현에게 어서 나오라며 손짓했다.


"엄마가 할아버지 방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시계가..."


시현은 뻐꾸기시계가 떠있는 곳을 가리켰다. 엄마의 시선은 시현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시계? 할아버지 주무시는데 방해되니까 어서 나와."


시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의 눈에는 할아버지 위에 떠있는 저 수상한 물체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오기 전 시현은 다시 한번 시계를 쳐다봤다. 뻐꾸기시계는 여전히 할아버지 위에 떠있었고 11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


저녁이 되고 시현은 다시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침대에 누워계셨고 시계는 어느덧 11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현은 12시 정각이 되면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근거는 없었다. 그저 그의 감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방을 나오자 시현은 현관 앞에 부모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빠는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정장을 입고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 상태도 안 좋은데 꼭 가야겠어요?"

"의사가 이번 주까지는 괜찮을 거라 했잖아. 너무 늦지 않게 다녀올게."


아빠가 집을 나서려던 순간 시현은 그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가지 마세요!"


그 소리에 아빠는 흠칫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빠를 멈춰 세웠지만 시현은 그 뒤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위에 수상한 시계가 나타났고 그게 12시 정각을 가리키게 되면 할아버지한테 큰일이 날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시현에게 그의 아빠는 천천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 회사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 아빠가 가봐야 해.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때까지 시현이가 할아버지 잘 지켜드려."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방에서 뻐꾸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고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3


그날 이후로 더 많은 시계들이 시현의 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계는 모양도, 흐르는 속도도 전부 제각각이었다. 한 달 동안 5분밖에 흐르지 않은 시계가 있는 반면에 처음부터 자정을 코앞에 둔 시계도 있었다. 시간이 자정에 다다른 사람들은 시현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퇴장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동네 친구는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갔고, 짝사랑했던 여자아이는 학원을 관뒀고, 집 주변에서 밥을 주던 길고양이 가족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는 앞으로 7시간... 아빠는 6시간...'


시현은 부모님의 머리 위에 떠있는 시계를 살펴봤다. 엄마한테는 동그란 빨간색 시계가, 아빠한테는 네모난 검은색 시계가 각각 나타났다. 언젠가 부모님의 시간도 결국 자정에 다다른다. 시계는 시현한테 그 대상과 시현 사이에 남은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은 더 이상 자신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걸 뜻했다.


'그렇다면 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은 계속해서 시현을 괴롭혔다.


"시현아."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옆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


"학교 졸업하면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시현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곧 학교를 졸업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이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요."

"그게 네가 정말로 원하는 거니?"


시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거? 그게 과연 무엇일까.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아빠랑 엄마는 너랑 함께 있으면 좋지만 그게 너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아. 너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는 게 어떻겠니?"


아빠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엄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부모님의 머리 위에 떠있는 시계를 쳐다봤다.


"하지만..."


아빠는 시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현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현은 서울로 올라가 전공을 살려 작은 광고 회사에 취업했다. 집을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적응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일은 많았지만 덕분에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걱정되는 건 여전했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시현은 자신의 삶에 집중했고 그러자 멈춰있던 자신의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그의 아빠가 급하게 수술을 받게 된 건 1년 후의 이야기였다.


"너 결혼하고 손주 낳을 때까지는 팔팔할 때니까 걱정 마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시현은 내심 안심했다.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로하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고 시현은 휴가를 내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리고 집에 들어선 순간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아빠의 시계는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4


늦은 밤. 시현은 아빠의 방문 앞에 서있었다. 시현이 상경한 후로 아빠는 그의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문을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주무세요?"

"아직 안 잔다. 무슨 일이니?"


아빠는 읽고 있던 책을 옆으로 내려놨다. 방 곳곳에서 할아버지 냄새가 느껴졌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시계는 11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시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할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런 시현을 보며 아빠는 피식 웃었다.


"작별인사를 하러 온 거니?"


시현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걸 어떻게..."

"네 머리 위의 시계 2분밖에 남지 않았거든."

"제 머리 위에 시계요?"

"우리 집안 남자들한테 전해지는 능력이야. 실상은 능력보다 저주에 가깝지만..."


시현은 아빠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말은 아빠도 시계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시현은 자신이 처음 시계를 본 날을 떠올렸다.


"그럼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때 회사 상황은 최악이었어. 경기가 좋지 않아 공장은 가동을 멈춘 지 오래였고 직원들 사이에서 정리 해고에 관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지. 회사에서는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그게 전부 거짓말이라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었어. 조금이라도 책이 잡힌 사람들은 전부 해고 대상자가 됐고. 할아버지한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회사를 떠나기에는 아직은 네가 너무 어렸단다."


시계는 11시 59분을 가리켰다. 자정까지는 1분만 남았다.


"저는 어떡하라는 거죠? 아빠가 곧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해야 하나요?"

"시계는 허상이야. 우린 거기에 속으면 안 돼. 시계가 있든 없든 아빠는 그냥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이란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끝날 줄 알았더라면..."


아빠는 시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넌 이미 충분히 좋은 아들이었단다.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어. 명심하렴. 남들 머리 위에 있는 시계만 신경 쓰면 네 시간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걸. 이제 그만 너도 자거라. 너무 늦은 시간이야."


아빠는 이불을 덮었다.


"내일 아침에 보자꾸나."


시현은 방을 나가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시현은 문득 자신이 현관에서 아빠를 멈춰 세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시현은 아빠가 집을 나서는 걸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자신이 아빠 눈밑에 희미하게 나있는 눈물자국을 봤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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