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아직도 글 써?

카페 레트랑제

by 지누

1


귀하께서 응모해주신 작품은 아쉽게도 이번 심사에서 선정되지 않았음을 안내드립니다.
작품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창작 활동에 많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온 메일을 읽은 순간 안나의 세상은 무너졌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야기가 공모전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창문을 열고 동네 떠나가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X됐다."


3년. 그게 안나한테 주어진 시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대신 글을 쓰겠다는 걸 밤낮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쟁취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도 이제는 겨우 1년 남짓을 남겨두고 있었다. 안나는 캘린더앱에 들어가 다음 공모전까지 남은 일정을 확인했다. 다음 달에 대형 출판사가 개최하는 공모전이 하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쓴 이야기는 그냥 너무 재미가 없었다. 이건 단순히 글을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뿌리부터 바로 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걸 1년 안에 할 수 있을까? 발밑에서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냐... 이대로 있으면 안돼."


안나는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가방에 노트북, 충전기, 공책, 펜, 그리고 제본을 뜬 원고를 다급하게 쑤셔넣고 지퍼도 제대로 잠그지 않은 채 현관문을 향했다. 그녀는 오늘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문이 닫을 때까지 글을 쓸 계획이다. 배수의 진. 그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 자신의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살려내지 못하면 안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강으로 향할 것이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고 집을 나가려던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안나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대학교 동기인 '진아'였다.


"너 어디야?"

"카페 가려고. 왜?"

"왜가 뭐야. 오늘 애들 보기로 한 거 잊었어?"

"애들?"


안나는 그제야 오늘이 과동기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오늘이었어?"

"네가 정신을 단단히 놨구나. 지금 누구 때문에 오늘 보기로 한 건데?"

"내가 지금 심신미약이야.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해 줘."

"오늘 지각한 사람들이 2차 쏘기로 한 건 기억하지? 돈 깨져봐야 진짜 심신미약이지. 손가락 빨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뛰는 게 좋을 걸?"


전화를 끊은 후 안나는 지도앱에 들어가 지하철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지하철은 5분 후 도착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집을 뛰쳐나와 미친 사람처럼 내리막길을 뛰어갔다.


2


마음 같아서는 안나는 저녁만 먹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도저히 먼저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가방으로 손을 향할 때마다 옆자리에 앉은 진아가 어림없다는 듯 손날로 장작패기를 했다. 안나는 직장 생활이 착하던 친구의 성격을 버려버렸다고 한탄하며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켰다.


고깃집에서 시작된 모임은 어느덧 3차를 달리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진아는 출판업계를 다니며 그녀가 느낀 서러움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그녀는 동기들을 한 명씩 가리키며 올해 책을 몇 권씩이나 읽었는지를 캐물었다.


"나? 난 사기는 하는데 잘 읽지 않아서..."

"당신은 출판계의 빛과 소금입니다!"

"내가?"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안나는 겉으로는 대화에 참여하는 척을 하고 머릿속으로 원고를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를 생각 중이었다. 그때 사회자 역할을 맡고 있던 남자 동기가 안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안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

"그러게. 안나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친구들의 관심이 갑자기 자신한테 쏠리자 부담스러워진 안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의 근황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포장해서 말하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던 중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린 진아가 끼어들었다.


"야! 우리 작가님 괴롭히지 마라! 작가님께서 요즘 글 쓰면서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안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걸 입술을 깨물어 간신히 참았다.


"너 아직도 글 써? 진짜 대단하다... 책도 내는 거야?"

"무슨 내용이야? 줄거리 좀 알려주라."

"공모전도 나가는 거야?"


친구들의 물음에 안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의자 아래에 놔둔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는 진아도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3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 낯익은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안나의 집은 이 오르막길의 끝에 있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안나는 동네를 되돌아봤다. 사람보다 배달 오토바이가 더 많이 돌아다니고, 허공을 향해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 하지만 그래서 월세가 가장 싼 동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안나는 졸업하기 전까지 책을 완성하고 이 동네를 뜨는 걸 자신의 목표로 삼았지만 지금은 자신도 뒷배경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오늘 글 안 쓰면 한강 가기로 했는데..."


안나는 휴대폰에 들어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한강물 온도를 확인하던 동안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고양이는 안나의 다리에 딱 달아붙어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비비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나는 쭈구려앉아 고양이를 등을 북북 쓰다듬었다.


"너 너무 귀엽다! 그런데 어떡하지? 나한테 지금 츄르가 없는데..."


삼색 고양이는 안나를 향해 울음소리를 내고는 옆에 난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녀석은 골목 앞에 멈춰 서서 안나를 바라봤다.


"나보고 따라오라고?"

"먀 - 아!"


안나가 머뭇거리자 고양이는 다시 안나를 향해 재촉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고양이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안나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고소한 냄새가 안나의 코에 닿았다.


'커피 냄새...?'


골목길의 끝에 다다르자 불이 켜진 가게 하나가 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판도 없는 수상한 가게였다. 고양이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듯이 발톱으로 문을 긁기 시작했다.


"너 정말 바라는 게 많은 고양이구나?"


문고리로 손을 향하며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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