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 돈 안 냈다

카페 레트랑제

by 지누

1


안나가 문을 열자 나타난 건 아담한 분위기의 작은 카페였다. 천장 조명에서 나오는 노란빛이 가게 전체를 부드럽게 덮고 있었고, 입구 옆에 놓인 턴테이블에서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외국의 여러 명소들이 그려진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전부 안나가 처음 보는 곳들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벽에 걸린 메뉴판이었다. 넓은 메뉴판에는 하얀 글씨로 '마스터스 블렌드' 하나만 적혀있었다.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체 커피에 얼마나 자신이 있다는 거지...?'


삼색 고양이는 안나의 다리를 지나쳐 카운터 위로 올라갔다. 카운터 뒤에는 사장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한 명 서있었다. 남자는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가졌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는 수고했다는 듯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남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 짧은 순간동안 안나는 그가 자신을 꿰뚫어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에 압도되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카운터에 살짝 튀어나온 자리로 안나를 안내했다. 그 자리는 마치 그녀를 위해 미리 준비된 자리 같았다.


남자는 카운터에 놓인 유리병 중에 어떤 것을 고를지 잠시 고민하다 가장 왼쪽에 놓인 병을 집어 들었다. 남자는 병에 담긴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카페 안에 울려 퍼졌다. 원두 가루가 준비되자 남자는 드리퍼에 갈아진 가루를 넣고 목이 기다란 주전자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그 안으로 천천히 물을 부었다. 뜨거운 물이 닿자 가루가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버터와 캐러멜을 섞은 듯한 고소한 향을 풍겼다.


"맛있게 드세요."


남자가 커피가 담긴 잔을 안나에게 건넸다.


안나는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카페 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2


안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영화관에 홀로 앉아있었다. 방금 전까지 눈 앞에 서있던 남자도, 자신을 안내했던 삼색 고양이도 없었다. 영사기에서는 그녀가 처음 보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인지 장면들이 낯설지가 않았다. 배우들의 대사부터 앞으로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안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


"내 쓴 이야기잖아?"


하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동일했지만 이야기는 점점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안나가 공모전에 냈던 이야기보다 전개는 훨씬 빨랐고 등장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더욱 긴박했다. 덕분에 긴장감은 계속해서 고조됐고 결말에 도달한 순간 카타르시스의 빅뱅이 터짐과 동시에 영화가 끝이 났다.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물의 기립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카페로 돌아와있었다.


카페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은 순간 안나는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화장실이 마려운 사람처럼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단 1초의 시간도 허비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 안에 터져 나오고 있는 이 영감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한강물이 자신의 집을 덮쳐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오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안나는 가방을 침대에 집어던지고 곧바로 켬퓨터를 켰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글을 썼다. 안나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창밖에는 해가 뜨고 있었고 그녀의 몸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있었다. 손가락의 모든 마디가 끊어질 것만 같았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녀의 앞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었다.


안나는 침대를 향해 몸을 내던지고 두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몸에 남은 힘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은 내리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잠들기 직전, 한 가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돈 안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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