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빠뜨롱 나오라 그래!

카페 레트랑제

by 지누

1


"조심히 잘 다녀와. 파리 도착하면 연락하고!"


친구의 응원 메세지를 보며 지영은 그녀가 같이 보내준 유튜브 링크를 클릭했다. 그건 친구가 지영한테 프랑스 생활 꿀팁이라며 공유해준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머리숱이 별로 없는 남자가 나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절대 여권 주지마!"

"빠뜨롱 나오라 그래!"


친구가 보내준 영상을 보며 지영은 제자리에서 낄낄거렸다. 영상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지영은 출국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출국까지는 앞으로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곧 있으면 자신은 한국을 떠난다. 언제 돌아오게 될지는 자신도 몰랐다. 우선은 석사로 시작하지만 박사까지 하게 된다면 어림잡아 최소 5년이었다. 이상했다. 그토록 지영이 바라던 일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막상 떠날 시간이 다가오니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뒤숭숭해져만 갔다.


"아냐... 지금 겁 먹으면 안 돼."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면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을 찾아 넓은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지영은 실내가 많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새벽 공항이라지만 원래 이렇게 어두웠나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비행기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다들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불이 켜진 작은 카페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2


카페에 들어서자 포근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다. 그곳은 공항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가게 안을 맴도는 고소한 커피향을 맡자 목까지 치고 올라왔던 불안감이 다시 발밑으로 내려가는듯했다. 그녀는 이 아담한 공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출국 게이트 앞에 놔둔 자신의 짐을 전부 들고와 이곳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커피 한 잔 주실 수 있을까요?"


지영이 카운터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말에 백사장은 지영을 잠시 살펴보고는 유리병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가 고른 유리병에는 '로마니'라고 적혀있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백사장이 물었다.


"파리요."

"부럽다..."


안나가 자신도 모르게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공부하러 가는 거라 부러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지영은 문득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떠올렸다. 그녀는 원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입시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미대 입시를 피나는 노력 끝에 당당히 통과하고 그토록 가고 싶던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수업 첫날. 지영은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그래도 지영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열심히 살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도달할 거라는 굳은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그녀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답을 찾는 중이었다.


그 순간 진정시켰던 불안감이 솟구치더니 결국 그녀의 머리까지 흘러들어오고 말았다. 여기저기로 뻗쳐나간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이내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됐다.


"저 잘하고 있는 거 맞겠죠?"


백사장이 커피가 담긴 잔을 지영 앞에 내놓으며 되물었다.


"정답을 알 수 있다면 더 나을까요?"


지영은 어째서인지 남자의 물음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카페의 분위기 때문인지 눈앞에 놓인 커피로부터 지영은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이 커피를 마시기만 하면 그녀가 방금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지영은 천천히 잔을 들어올리고 향을 맡았다. 모닥불 같은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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