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 이미 제 미래를 알아요

카페 레트랑제

by 지누

1


지영이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전시관의 입구에 홀로 서있었다. 입구 옆에는 화살표와 함께 '제1전시관'이라 적혀있었다. 전시관 안에는 시간대별로 그려진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그림은 모두 공통적으로 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영은 그 소녀가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림에는 지영이 살아생전 경험했던 순간들이 담겨있었다. 미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상을 탔던 날. 같은 학원을 다니는 남자아이한테 고백을 받았던 순간. 입시를 준비하며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던 이른 새벽. 그림들은 모두 노랑, 빨강, 오렌지, 갈색 등과 같은 밝고 따뜻한 계열의 색들을 사용됐다.


'제2전시관'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자신의 실력을 깨닫고 울면서 잠에 들었던 늦은 밤, 미술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어느 오후, 일반 회사에 사무직으로 입사해 살아가던 날들. 이 전시관의 그림들은 회색, 남색, 보라, 검정 등의 어둡고 암울한 색들로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이제 '제3전시관' 입구를 눈 앞에 앞에 두고 있었다. 이 앞에서부터는 자신의 미래를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앞으로 자신한테 어떤 일들을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에 대한 답이 눈앞에 있었다. 전시관을 들어서려던 순간 입구 옆에 놓인 꽃병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저 소품으로 놔둔 꽃병 안에는 해바라기 한 송이가 들어있었다.


"작년 겨울에 고흐 전시전을 간 적이 있어요. 벽에 걸린 그림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체 죽고 나서 유명해지면 무슨 소용인 거지? 사는 동안은 그렇게나 고통스러웠는데... 그런데 막상 전시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만약에 고흐가 자신의 미래를 알았더라면 과연 그런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을까?"


지영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 다시 타주실 수 있을까요? 향이 제 취향이 아니라서."


2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백사장은 지영한테 줬던 커피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새로운 유리병을 꺼냈다. 이번 유리병에는 '윌오위습'이라 적혀있었다. 백사장 다시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핸들을 돌렸다. 다 갈아진 원두를 드리퍼에 위에 넣고 물을 붓자 가루가 빵처럼 부풀어올랐다가 숨을 내뱉듯 다시 가라앉았다.


"커피 나왔습니다."


백사장이 커피와 함께 작은 에끌레르를 옆에 놔뒀다. 지영은 잔을 가져가 향을 음미했다. 참나무 향이 났다. 지영은 그 향이 화실에서 맡던 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자 따스한 기운이 그녀의 몸 안에 퍼져갔다.


"맛있네요."


지영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안나는 지영의 옆에 작은 불씨가 나타나는 걸 발견했다. 불씨는 이내 강아지의 형상을 하고는 삼색이 앞에 나타나 반갑다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요. 곧 출국 시간이라. 커피 고마웠어요."


지영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작은 불꽃 강아지는 헥헥거리며 그녀의 뒤를 서둘러 쫓아갔다.


"저 강아지는 뭐예요?"

"'윌오위습'이라 불리는 정령이에요.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어둡지 않게 옆에서 불을 밝혀주죠. 그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어 소문이 이상하게 나긴 했는데 원래는 착한 녀석들이에요."


안나는 카페를 나서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느끼는 불안함은 여전하겠지만 그 과정에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가고 난 자리를 정리하던 중 안나는 백사장이 처음 타줬던 커피를 쳐다봤다. 백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커피는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커피였다.


"마시고 싶으세요?"

"마셔도 되나요?"

"한 모금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안나도 지영과 마찬가지로 어둠을 걷는 사람이었다. 걱정과 불안함은 그녀의 가장 오래된 벗이었다. 그런 그녀가 궁금했던 건 오직 하나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글쓰기에 사용한 시간들이 전부 유의미했는지. 헛된 노력은 아니었는지.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끝끝내 커피를 마시지 않고 싱크대로 들고 가 안에 부었다.


"괜찮으세요?"

"네. 전 이미 제 미래를 알아요. 전 엄청나게 재밌는 이야기를 쓸 게 분명하거든요."

"먀 - 아!"


삼색이가 동의한다는 듯 그녀의 옆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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