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레트랑제
1
"진짜 새로 온 팀장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승아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안 끝났는데 또 프로젝트를 들고 오면 어떡해요?"
진욱은 승아의 분노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온 개발팀장은 유명 플랫폼 출신 개발자로 본부장이 직접 스카우트 해온 시니어 개발자였다. 그를 데려오기 위해 많은 노력이 들었다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개발팀장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업무 방식에 있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 보였다. 그는 밤낮에 상관없이 팀원들을 호출해 회의를 했고 팀의 일정에 상관없이 여러 개의 일을 받아오고는 했다.
다시 일에 집중하려고 모니터를 보던 순간 상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도현'이라 적혀 있었다.
"여보세요?"
"상욱 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도현은 작년까지 상욱의 팀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개발자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업무 스타일도 맞아 퇴근 후에도 종종 보던 사이였다.
"지금 혼자신가요? 물어볼 게 좀 있는데..."
"잠시만요."
상욱은 주변을 살피고는 비상 계단으로 향했다.
"네, 말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직한 곳에서 이번에 미들급 개발자를 한 명 뽑기로 했는데 상욱 님이 떠올라서요."
상욱은 도현이 이직한 회사를 알고 있었다. 그곳은 유명한 핀테크 스타트업이었다. 신생이라 규모는 작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은 상태였고 시장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제가 같이 일해봐서 알지만 지금 계신 곳보다 근무조건이나 성장가능성은 여기가 훨씬 좋아요."
"만약에 가게 되면 서울에서 근무하는 건가?"
"네, 여의도에서 일하시게 될 거예요."
상욱은 도현의 제안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장 개발 팀원 아무나 붙잡고 같은 제안을 할 경우 대표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어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떠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욱은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하는 건가요?"
"늦어도 수요일 오전까지는 결정하고 제 번호로 연락 한 번만 주세요. 명심하세요! 경쟁자가 많아요."
"알겠어요. 전화 줘서 고마워요."
상욱은 통화를 끊고 창밖을 내다봤다.
2
퇴근하고 상욱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상욱의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말수가 적은 아들을 보자 걱정이 들었다.
"표정이 어둡네? 회사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진욱은 잠시 망설이다 젓가락을 내려놨다.
"엄마. 나 서울 가면 어떨 거 같아?"
"서울? 갑자기 서울은 왜?"
"아는 사람이 자기 회사로 넘어올 생각 있냐고 물어보길래."
진욱과 엄마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돌았다.
"네가 가고 싶다면 가야지. 여기보다 기회도 더 많을 거 아니야?"
"나 가면 엄마 혼자 지내야 하는데 괜찮겠어?"
"나 자식 발목 잡는 그런 엄마 아니다. 내 걱정은 하지도 마."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하러 싱크대로 갔다.
"나가서 예쁜 아가씨도 좀 만나고! 너도 이제 슬슬 결혼 생각해야지... 손자는 언제 보여줄 거야?"
진욱은 오늘따라 엄마의 뒷모습이 유난히 더 작아보였다. 그는 자신이 괜한 말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
상욱은 시계를 살폈다.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도현의 제안이 떠올라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달력을 살폈다. 도현은 수요일 오전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벌써 화요일 저녁이었고 상욱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개발팀장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상욱 씨, 제가 부탁드렸던 기능은 지금 어떻게 되가고 있어요?"
"지금 UI는 완료됐고 주요 로직은 아키텍쳐를 고민 중이라 다음주 초에 나올 거 같아요."
"아... 그게 내일 아침에 대표님이 간단하게 기능이 동작하는 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API도 아직 나오지 않은 걸로 아는데요?"
"대표님은 어차피 그런 거 모르니까 그냥 더미 데이터로 기능 동작하는 것만 대충 보여줘도 충분해요. 어차피 API까지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리잖아요? 좀 부탁할테니까 끝나면 저한테 슬랙 메세지 좀 넣어줘요. 제가 오늘은 따로 확인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개발 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진짜 저 사람은 안 되겠네."
승아가 옆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아요."
상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엄마한테 연락을 해서 조금 늦어질 것 같으니 먼저 밥을 먹으라는 연락을 남겼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괜찮아요. 어차피 제 일인데... 승아 씨도 어서 들어가 보세요."
승아는 인사를 하고는 뒤이어 사무실을 나갔다.
팀장이 부탁한 일은 상욱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보여주기식으로 만드는 건 금방이었지만 그랬다가는 결국 일을 두 번 하는 꼴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대충하고 작성하고 넘기는 코드가 많아질수록 나중에 커다란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상욱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시간을 확인했을 때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커피 좀 마셔야겠다..."
진욱은 잠을 깰 겸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그때 어디선가 진한 커피 냄새가 나왔다. 진욱은 주변을 살펴봤다. 사무실에 다른 직원은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탕비실 문을 연 순간 따스한 불빛이 상욱을 얼굴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