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우리 바다 보러 갈래요?

카페 레트랑제

by 지누

1


그건 너무나도 이상한 장면이었다. 사무실 탕비실이라 생각하고 열었던 문에서 개인 카페는 보통 일어나기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욱은 그곳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카페 곳곳에 깔린 커피향 때문인지 아니면 배경에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음악 때문인지. 그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이곳에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야근 중이셨나요?"


안나가 상욱에게 물었다.


"네… 어쩌다 보니 야근을 해버렸네요."

"괜찮으시다면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사장은 상욱을 잠시 살펴보고는 유리병을 향해 손을 건넸다. 유리병을 잡기 전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옆에 있던 안나에게 물었다.


"어떤 원두가 좋을까요?"

"네? 제가 골라요?"


안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백사장은 대답 대신에 웃을 뿐이었다. 안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 앞에는 열 개가 넘는 유리병에 다양한 마법이 깃들어있는 원두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중에서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있는 직장인한테 필요한 원두는 무엇일까.


초록빛이 살짝 도는 원두는 작은 행운을 주는 원두였다. 그 커피는 시험이나 중요한 행사를 앞둔 손님들한테 적합했다. 피로를 전부 지워주는 원두도 있었지만 자정을 넘어가는 지금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한테 ‘이거 먹고 더 열심히 하세요’라고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만 같았다. 안나는 카운터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 손님을 살펴보며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려고 했다. 백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손님한테 정말로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해봤다. 잠시 후 그녀는 '노스텔지어' 라고 적힌 원두를 가리켰다.


백사장은 아무말 없이 원두를 가져가 그라인더에 넣고 갈기 시작했다. 안나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커피 나왔습니다."


상욱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천천히 들어올려 한 모금했다. 바다향이 그의 주위를 천천히 감싸았다.


2


"상욱아!"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상욱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그의 엄마가 서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손에 노란색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진욱을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엄마?"


상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 너무나도 작은 손에는 조개껍질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 순간 상욱은 자신이 어디있는 지를 기억해냈다. 그것은 너무나도 오래 전의 이야기였다. 상욱의 아빠가 병으로 떠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 엄마는 방에만 틀어박혀있던 상욱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비록 당일치기였지만 둘은 기차를 타고 인근 바다를 보러 갔다.


"오늘 하루 어땠어?"


상욱의 엄마가 돌아오는 기차에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욱은 그녀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었다. 잠에 들기 직전이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너무 꿈만 같았어요."


상욱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는 잠들기 직전 엄마의 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걸 본 것 같았다. 그의 볼에 닿은 그 보석들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


"이번에 너무 좋은 제안을 받았어요. 수락하지 않으면 바보가 될 정도로 좋은 제안이었죠. 그런데 그 제안을 듣고도 저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제 머리는 이게 맞다고 하는데 제 마음은 자꾸만 아니라고 하고 있어요... 이럴 때는 어떡하죠?"


상욱이 물었다. 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어렸을 때 반 친구들한테 제가 공책에 적은 이야기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냥 공책이 예뻐서 아무거나 썼던 건데 반 친구들이 너무 재밌다고 또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저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어요. 손님은 무엇을 때문에 지금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거에 대한 답이 손님의 물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 백사장이 무언가를 상욱의 손에 올려뒀다.


"내가 지금 이걸 하고 있는 이유...?"


상욱의 손바닥을 펼치자 조개 모양 초콜릿이 있었다. 상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고마웠어요."

"이제 퇴근하시나요?"

"네.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계셔서..."


상욱이 문을 열고 가게를 나서자 익숙한 현관이 나타났다. 상욱은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카페를 돌아봤다. 등 뒤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얀 머리의 남자와 손을 흔드는 젊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그는 피식 웃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밤의 집은 조용했다. 거실에는 엄마가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TV에는 드라마가 방영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자신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놓여있었다.


"상욱이 왔니? 저녁은 먹었어?"


잠에서 깬 엄마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밥 주세요.”

"손에 그건 뭐야?"


상욱은 조개 초콜릿을 보고는 엄마를 향해 말했다.


"엄마, 우리 바다 보러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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