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by 지누

1


정인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은 방바닥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이마는 쓰렸고, 어깨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뻐근했다. 방금 전까지 정인은 괴물들한테 쫓기는 꿈을 꾸고 있었다. 정인은 쉬지 않고 도망쳤고 어느 낭떠러지 앞에 도착했다. 낭떠러지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옆에 놓인 돌멩이를 던져봤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등 뒤로 괴물들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고 정인은 하늘을 향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정인의 등에 하얀 날개 한 쌍이 돋아났다. 정인은 긴 고민 끝에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고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인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욕실로 들어가 불을 켜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잠들기 전에 입었던 셔츠는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정인은 자신의 날개를 확인했다. 깃털이 몇 군데 엉켜있었지만 딱히 이상한 건 없어 보였다.

'잠깐... 날개?'


2


뿔테 안경을 쓴 남자 의사는 모니터에 띄어진 엑스레이 사진을 살피며 흠 소리를 냈다. 그는 키보드를 두들기며 무언가를 열심히 화면에 입력한 다음, 다시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눈살 찌푸리기를 서너 번 정도 반복했다. 정인은 그 모습을 옆에서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인고의 시간 끝나고 의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날개가 맞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요? 저도 그 정도는 그냥 봐도 알아요."

정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사람 등에 갑자기 날개가 생겼어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상은 아니죠. 하지만 엑스레이상으로 봤을 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아니, 문제가 없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세요?"

"골절이나 염증이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정인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냥 이대로 놔두라고요?"

"수술로 제거를 하고 싶으신 걸까요?"

"제거할 수 있나요?"

"이렇게 설명해 드릴게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병원을 찾아와 자신의 멀쩡한 두 팔을 수술로 제거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걸 해주는 의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럼 저는 어떡해요?"

"거동하는 게 당장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등 쪽이 뻐근하다고 했으니까 원하시면 물리치료라도 끊어드릴까요?"

"필요 없습니다!"

정인은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옆에 벗어둔 롱패딩을 집어 들었다. 롱패딩을 입기에는 조금 더운 날씨였지만 날개를 감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놀라지도 않으세요?"

"아... 병원에 있으면 가끔 더한 것도 봐서요."

정인은 그 더한 것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냥 말을 아끼기로 했다. 더 말을 했다가는 화병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날개를 억지로 구겨 넣은 채로 롱패딩의 지퍼를 잠그는데 성공했지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어디선가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정인은 자신이 지금 폭탄 조끼를 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최대한 느릿하고 신중하게 병원을 빠져나왔다. 저 멀리서 빈 택시 한 대가 다가오는 게 눈에 보이자 정인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롱패딩이 펑하고 터지며 오리털이 12월의 눈처럼 하늘에 쏟아졌다.


3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정인은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롱패딩에서 빠져나온 오리털 때문에 공용 복도는 난장판이었지만 그런 걸 걱정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의사는 정인의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지만 날개를 달고 일상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혹시 몰라 유튜브에 들어가니 날개를 펄럭이며 전력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올라와 있었다.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해당 영상이 AI 치고는 많이 조잡하다는 댓글이었다. 그때 키패드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문을 열고 자취방 안으로 들어왔다.

"야, 정인아. 이거 영상 뜬 거 봤어? 너랑 되게 많이… 닮았네."

범석은 자취방 바닥에 앉아있는 정인을 보고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러니까 하늘을 나는 꿈을 꿨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날개가 나있었다고?"

"응."

범석이 조심스럽게 날개를 만졌다. 깃털은 부드러웠다.

"날 수도 있어?"

"그건 아직 확인 안 해봤어. 해볼 생각도 없고."

범석은 다소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좀 더 큰 병원에 가봐야지."

"떼려고?"

순간 정인의 날개가 움츠러들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쳐다볼 텐데..."

범석은 유튜브에 다시 재생했다. 30초 남짓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벌써 조회수가 300만 가까이 됐다. 그 영상 말고도 정인의 모습을 찍은 다른 영상들도 여러 개 보였다. 대부분 같은 내용이 있었지만 조회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야, 우리 유튜브 하는 건 어때?"

범석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너 제정신이야?"

정인이 짜증을 냈다.

"아니, 생각을 해봐. 네가 뛰어다니는 영상 조회수가 벌써 300만이야! 그거 짜집기한 다른 영상들도 거의 10만, 30만, 50만 이런다고. 내가 들었는데 유튜브에서는 조회수 하나에 1원이래. 그럼 이거 올린 사람은 벌써 300만 원을 번 거잖아?"

"유튜브가 그렇게 돈을 많이 주나?"

"얘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르네... 내가 영상 편집이랑 기획이랑 다 할 테니까 넌 출연만 해. 어때?"

정인은 못 들은 척을 했지만 날개는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범석은 정인을 데리고 인근 놀이터로 향했다. 정인은 날개를 감추기 위해 이불을 둘러쓴 상태로 그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놀이터에 도착하자 범석은 주변을 살펴보며 카메라를 놔둘 적당한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 구도가 괜찮다고 생각되자 그는 정인을 놀이터 한가운데에 세웠다.

"이불은 안 벗을 거야?"

"이게 맞는 걸까?"

"야, 어차피 의사가 그거 날개 안 떼준다며."

"그건 작은 병원이라 그렇고...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걸 과연 볼까?"

"정인아 잘 들어. 너는 이 날개를 감출 필요가 없어. 아니, 오히려 드러내야 해! 자, 지금부터 촬영 들어간다! 집중해! 집중!”

범석은 삼각대를 세워둔 자리로 돌아가 정인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정인은 한숨을 나지막이 쉬고는 이불을 걷어냈다. 그러자 그의 두 날개가 카메라에 선명하게 담기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동상이니? 가만히 있지만 말고 모션을 취해봐."

"무슨 모션?"

"한 번 돌아봐."

"돌아보라고?"

정인은 제자리에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자 움츠렸던 날개가 반사적으로 조금씩 펴졌다. 그 모습에 범석은 신이 난듯했다.

"좋아! 아주 좋아! 혹시 날개도 펴볼 수 있어?"

"글쎄..."

"한 번 해봐."

범석의 지시에 정인은 두 눈을 감고 등과 어깨에 신경을 집중했다. 의사의 말이 맞다면 날개도 결국 자신의 팔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인은 팔을 펼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자신은 지금 날개가 아니라 팔을 피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조개껍데기처럼 굳게 닫혀있던 날개가 조금씩 꿈틀거리더니 꽃이 피는 것처럼 활짝 펼쳐졌다. 범석은 순간적으로 촬영하는 걸 까먹고 잠시 넋이 나간 상태로 정인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거 대박칠 거 같아... 느낌이 아주 좋아."

범석이 녹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4


정인의 영상이 업로드되자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피드에 정인의 영상을 추천했줬다. 조회수는 순식간에 200만을 넘겼고, 유튜브 채널은 순식간에 구독자도 5만 명을 넘겼다. 막상 유튜브를 하자고 소리치던 범석도 그 숫자를 보니 얼떨떨했다. 사람들이 많이 봐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범석은 이 기세를 이어 바로 두 번째 영상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과감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둘은 시내로 나가 거리를 활보하는 영상을 찍기로 했다. 정인은 날개를 그대로 드러내고 돌아다니는 게 아직은 무서웠지만 어차피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시내 한복판에서 날개를 감추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날개를 드러내자 지나치던 사람들은 곧바로 정인을 알아봤다. ‘날개다!’라고 소리를 치며 한 여고생 무리가 정인에게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 모습에 몇몇 사람들은 정인에게 다가와 싸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인은 연예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두 번째 영상의 조회수는 첫 영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사람들이 영상을 재생하는 수가 너무 많아 조회수는 한 번씩 업데이트될 때마다 50 만씩 올라갔다. 두 번째 영상의 조회수는 업로드가 되고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300만에 도달했고, 정인과 범석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단번에 50만을 뚫었다. 범석의 메일함에는 실버 버튼을 해주겠다는 본사의 메일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세 번째 촬영을 위해 범석은 정인을 데리고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둘이 종종 방문하던 햄버거집이었다.

"오늘은 먹방을 할 거야."

"먹방?"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응, 별 것 아니야. 그냥 편하게 먹고 리액션 과하게 해 주면 돼."

범석이 카메라를 세팅하며 말했다.

식당 밖에는 정인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정인이 손을 흔들자 사람들은 밖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정인은 자신이 무엇이라고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건가 싶었다. 그때 가게를 둘러싼 인파를 비집고 중년 남성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남성은 일용직 현장을 뛰고 왔는지 옷 여기저기에 먼지 자국이 나있었다. 남자는 정인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갑자기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천사님... 제발 저희 아이를 살려주세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정인에게 건넸다. 사진 속에는 머리를 삭발하고 코에 튜브를 꽂은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제발 저희 아이를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남자의 애절한 외침에 정인은 당황했다. 그런 정인을 보며 범석은 괜찮다는 듯 남자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버님... 따님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범석이 녹화 버튼을 누르며 차분하게 물었다.



병원에 날개 달린 남자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입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정인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봤지만 그들의 시선은 길거리에서 느꼈던 것과는 달랐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병원 경비들이 출동했지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실로 향하는 정인과 범석을 막아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별아, 아빠 왔어. 아빠가 누구 데려왔는지 한 번 봐봐."

소녀는 사진에서 보이던 것보다 훨씬 말라있었다. 아무런 의학적 지식이 없는 자신이 보더라도 여아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낯익은 아빠의 목소리에 딸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아빠 옆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날개 달린 남자를 발견했다.

"천사님이신가요?"

소녀가 힘겹게 물었다. 정인은 망설였다. 범석은 그한테 고개를 끄덕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인은 소녀를 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천사님이야."

"천사님, 저를 살려주실 건가요?"

정인은 소녀의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녀의 손은 너무나도 여리고 작았다. 정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정인은 주위를 살폈다. 병실 안에 있는 환자, 간호사, 의사, 경비원 모두가 정인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정인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소녀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기로 했다.

"하느님 아버지, 지금 아파서 힘들어하는 이 아이를 꼭 좀 도와주세요.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대신 거두어 주시고, 무서운 마음 들지 않게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세요. 부디 이 아이가 빨리 나아 예전처럼 아빠 손을 잡고 밝게 웃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


세 번째 영상이 올라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병원에서 소녀의 손을 잡고 같이 기도를 해주는 정인의 모습에 인터넷은 폭발했고, 이 소식은 세계로 퍼져갔다. 방송국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정재계 인사들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사람들은 정인을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종교인들은 그가 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낸 사자라고 확신했다. 댓글창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를 적는 것부터 고해성사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람들은 천사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길 바라며 서로 고액의 후원을 하기 시작했고 적게는 백만 원부터 많게는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오고 갔다. 한 목사는 자신이 천사의 열렬한 지지자라면 자신의 교회를 천사 교회라 칭하기 시작했다. 많은 신도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정인의 존재는 이제 단순한 유명 인사로 그치지 않았다. 이제 세상에서 정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인의 이마에 딱딱한 혹 두 개를 발견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다가 벽에 부딪혔나 싶었지만 그런 것 치고 혹은 생각보다 훨씬 딱딱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화장으로 감출 수 있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선명한 뿔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신호였다.



뿔테 안경을 쓴 의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엑스레이 사진을 바라보며 흠 소리를 냈다. 그는 타자를 열심히 치며 무언가를 열심히 입력하고는 다시 사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를 반복했다. 1분이 1초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건 정인이었다.

"제가 맞춰볼게요. 뿔이죠?"

"네, 아주 예리하시네요. 큰 일은 아닌 거 같으니 걱정 마시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범석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악마잖아요."

의사가 범석을 빤히 보며 되물었다.

"손톱이 길게 자라면 어떡하죠?"

"네? 그야... 깎아야죠."

"이 뿔도 손톱이랑 같습니다. 실제 성분도 그렇고요. 그냥 손톱 좀 자란 거지 환자분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너무 튀어나온다 싶으면 갈아주면 되고요."

"그래도 제거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어디가 아프시거나 불편한 곳이 있나요?"

"아뇨."

"그럼 당장 더 해드릴 건 없는 것 같네요."

"이 의사 좀 이상한 거 같아."

범석이 정인한테 조용히 말했다. 방을 나오자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 한 명이 다가왔다.

"밖에 차 대기시켜 놨습니다. 지금 바로 이동하실까요?"

"준비됐지?"

범석이 정인에게 물었다. 정인은 모자를 다시 한번 정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벌써 인파가 결집해 병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설 경호원들을 고용했지만 이대로 가면 교통까지 완전히 마비될 수 있었다. 경호원들의 인간 방패에 둘러싸인 상태로 범석과 정인은 빠르게 이동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서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정인의 날개를 한 번이라도 만지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었고 정인은 결국 인파에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정인이 바닥에서 일어서 순간 누가 음소거를 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정적이 맴돌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요함에 정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살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군중도, 자신을 지키던 경호원들도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정인의 이마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인의 모자를 들고 있던 사람이 침묵을 깨고 소리쳤다.

"악마다!"


6


두 개의 뿔이 선명하게 나있는 정인의 사진이 인터넷에 순식간에 퍼졌고,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정인은 악마였다. 어떤 부연 설명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이후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정인으로 학창 시절에 지속적으로 폭력에 시달렸다는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학창 시절 동안에 정인으로부터 자주 돈을 뜯겼고,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상하게 그 폭로를 시작으로 갑자기 정인에 대한 다른 폭로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후원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부터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등의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정점을 찍은 것은 과거에 식당에서 정인을 찾아왔던 아버지의 근황 인터뷰였다.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정인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정인을 만난 날 이후로 급격히 나빠지더니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며 자신이 딸을 악마한테 건네버렸다는 통곡과 함께 인터뷰는 끝이 났다.

범석이 올린 네 번째 영상은 정인을 둘러싼 폭로와 의혹에 관한 해명 영상이었다. 정인은 영상에 나와 사람들한테 자신이 어떻게 날개를 가지게 됐고, 뿔이 나게 된 경로부터 모든 걸 설명했다. 의사의 진단까지 보여줬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럼 그동안 자신을 천사라고 부르며 사람들을 속인 거냐며 격노했다. 범석은 결국 댓글창을 닫아버렸다. 이 모든 일들은 전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정인아."

범석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정인은 불을 끈 상태로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뭐 좀 먹으려고 하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있지만 말고... 밥은 먹어야지."

정인이 긴 침묵 끝에 말했다.

"범석아, 나 날개 떼려고. 연구용으로 날개를 받는 대신에 무료로 수술을 해주겠다는 의사가 있더라."

"그래. 그렇게 하자... 나가서 먹을 것 좀 사올게."

범석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범석은 집을 나서고 돌아오지 않았다. 정인이 경찰의 연락을 받은 건 두 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가게에서 범석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집단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폭행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20분 동안 이어졌다. 범석은 급하게 응급실로 이송이 됐지만 머리를 심하게 다쳐 혼수상태에 들어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인은 중환자실 침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원무과에 접수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려던 찰나 병원에서 정인을 알아본 사람들이 화를 내며 그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정인은 사람들을 피해 비상계단으로 도망쳤다. 마지막 층에 도달하고 문을 열자 병원 옥상이 나왔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옥상문을 잠그고 정인은 난간을 살펴봤다. 10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은 너무나도 높아 보였다. 등 뒤로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정인은 결국 난간 위로 올라섰고, 자신의 날개를 쳐다봤다. 문득 그동안 자신이 왜 한 번도 날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었다. 정인은 눈을 감고 자신이 나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날개를 앞뒤로 펄럭이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등 뒤로 바람이 불었고 정인의 몸은 점점 앞으로 기울었다. 몸이 허공으로 내디딘 순간 예전에 꿨던 꿈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괴물들한테 쫓기다 낭떠러지에 가로막혔던 꿈. 정인은 그때 자신이 낭떠러지로 추락했는지 아니면 하늘로 비상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제는 그 꿈의 결말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인은 날개를 최대한 활짝 폈고,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7


범석은 병원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한 의사와 뉴스 앵커의 인터뷰를 보고 있다. 그 의사는 정인을 처음 진단한 의사였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정인의 상태가 특이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한테서 딱히 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날개를 팔로 비유하고, 이마의 뿔은 손톱으로 비유를 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던 건가요?"

아나운서가 물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사도 악마도 아니고. 그냥 사람."

"그렇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인터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소식입니다. 천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을 지탄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이단 처단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범석은 이어폰을 뽑고 휴대폰을 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로를 따라 걷던 중 범석의 눈에 차에서 내리는 한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여학생은 이불 같은 것을 둘러싸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범석은 여학생이 서있던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바닥에는 하얀색 깃털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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