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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Jul 19. 2023

<하녀>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쥐약이 들었을까?

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하녀> 네이버 포토, 스틸 컷
하녀[Hanyo](1960)


<하녀>를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이렇다.


"너 이걸 자세히 봐, 다람쥐는 넓은 산천을 제멋대로 뛰어댕기는 짐승이야. 그걸 사람이 잡아서 이렇게 못 뛰게 만들었어. 그러나 다람쥐는 이렇게 좁은 곳에서 운동을 안 하면 다리가 굳어져서 도망 못 가리라 생각을 했어. 그래서 틈 있는데로 굴레바퀴속으로 들어가 뛰는 연습을 했어"  - 동식(김진규, 아버지)


"아버지 나도 이렇게 연습하란 말이죠?"  - 경희(엄앵란, 딸)


창살과도 같은 투명한 유리창이 동식의 가족들을 비추자면 철장, 혹은 다람쥐를 가둔 조그만 케이지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실뜨기(유희)에 정신 팔린 새끼 다람쥐 경희와 창순과는 다르게 신문을 보며 케이지 밖 너머의 것들을 볼 줄 아는 '어른 동식'은 알고 있다. 욕망만을 맹목적으로 좇아들어간 인간의 최후가 어떠한지 말이다. 아버지 동식은 딸 경희에게 다람쥐를 선물하면서 그 사실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하지만 경희와 창순은 아무것도 모르는 한낱 아이들일 뿐이다.


오랫동안 머무르는 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이 실뜨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을 보여주는 컷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있자면 또다시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실용성 없고 바보같아 보이는 반복되는 실뜨기가 방직공장의 굴레바퀴를 굴려 나오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관한 모순 같다. 자본주의라는 장치는 인간의 욕망으로 굴러가는 제도이니까 말이다. 케이지 밖을 나가고 싶은(욕망 실현) 사람,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더욱더 굴레바퀴(노동)를 굴리면 된다. 안타깝지만 굴레바퀴만 맹목적으로 돌리는 다람쥐는 케이지 밖을 나갈 궁리도, 제 발로 나갈 시간도 없을 텐데 말이다.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은 시간을 내어 음악을 공부한다. 지루한 노동과는 상반되는 취미활동이자 유희행위인 것 같은 피아노. 하지만 피아노는 비슷한 유희행위인 것 같은 담배와는 또 다르다. 피아노는 지적인 행동이다. 누군가에겐 지적 허영심일 수도, 그저 유희일 수도 있는 피아노는 수준급의 실력자가 되려면 수 많은 시간의 인내, 노력이 필요하다. 불 한 번 붙여 빨아들이면 니코틴의 쾌락을 흡수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흡연자들이 그저 흡연욕을 갖고 사는 것 처럼 영화 속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가지는 욕망들을 더러 가진다. 성욕, 수면욕 그리고 식욕. 우리는 그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볼 때면 너무나 불안하다. 독약이 타져있을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 이는 영화 기저에 아주 좋은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하녀'의 손가락에서 부딪히는 불쾌한 불협화음이 들려주듯. '하녀'는 노동을 하는 행위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피아노 따위에는 관심없다. 그녀는 욕망을 쫓는 인간이다. 이름 한 번 나오지 않는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다른 사람들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다), 동식의 집에 오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들추며 음식을 줏어먹는 모습이 마치 제멋대로 사는 들쥐처럼 보인다. 


욕망을 쫓았던 사람은 전부 죽었다. '하녀'에 의해 결국 욕망의 덫에 붙잡힌 '동식'은 그녀와 같이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심부름을 하는 와중에도 식욕을 참지 못해 손가락으로 음식을 찍어 맛을 보는 아들 창순은 쥐약을 먹고 가장 먼저 죽었다. 딸 경희 또한 죽었다. 그러나 남의 손(하녀의 손)에 의해서다. 아버지의 훈계를 알아들었으면서도 다리를 다쳐 자기의지를 실현시킬 수 없는 경희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람쥐의 굴레바퀴마냥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던 엄마는 살았다. 그러나 소중한 가족들 모두가 비참하게 죽어가도 아무것도 모른채 굴레바퀴를 굴리며 목숨을 부지했던 그녀(엄마)가 했던 행동이 과연 현명한 것이었을까? 


음식을 먹는다고 무조건 죽는 것이 아니다. 욕망을 쫓으며 산다고 무조건 파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음식에 쥐약이 들었을 수도, 안들었을 수도. 투박한 사운드와 날카롭게 부딪히는 컷들의 불편한 매력. 그것은 훈계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따끔한 잔혹동화, 고전영화 <하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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