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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Jul 19. 2023

<1986 그 여름,그리고 고등어통조림>추억의 유통기한

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네이버 포토, 스틸 컷


Sabakan, 고등어 통조림

일본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의 원제는 <사바칸Sabakan>이다. 히라가나를 읽어낼 수 있지만 뜻은 잘 모르는 나는 さばかん(사바칸)이 무슨 뜻일까 싶어 찾아보았다. 우선 さば(사바)는 '고등어'이다. 


かん(칸)은 かんづめ(칸즈메缶詰)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칸즈메'는 통조림을 뜻한다. '칸'은 캔(can)을 취음식으로 따와 'kan', 즉 일본에서는 '칸'으로 읽어내는 것 같으며 '缶(장군 부)'는 어떤 것을 감싸 보호하다는 의미도 통용되는 것 같고, 음식이나 액체가 들어가는 용기를 지칭한다.


-づめ(-즈메)'는 정적인 상태가 지속되거나 무언가를 안에 채워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정한 틀 안에 빡빡하게 눌러 끼워 넣는다는 뜻의 단어 つ-める(츠-메루)라는 단어의 변형이기도 하다. 따라서 '칸(かん)'과 '-즈메(-づめ)', 두 단어가 붙게 되어 용기를 틀어막아 채워넣었다는 뜻의 'かんづめ(칸즈메缶詰)'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 이다.


여담으로 '칸즈메'와 발음이 비슷한 <스즈메의 문단속>(2022)의 주인공 '스즈메'라는 이름은 무언가를 진정시키거나 누르는 것을 의미하는 '시즈메(しずめ)'에서 따온 것 이다. 이런 단어들을 보고 있자면 질서있고 야무지게 채워두길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츠메루(つめる) 문화'가 그려진다 


영화<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네이버 포토, 스틸 컷


영화의 제목에 대해서

원제 <사바칸Sabakan>에서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으로, 제목이 참 길어졌다. 연관성 없어보이는 특이한 단어들을 배열해놓은 긴 제목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과 비슷해 보인다. 또 제목을 보자마자 쌉쌀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상상하게 되는데, 일본영화 '명작' 반열에 오른 <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섬세한 연출을 또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생긴다.


한편으로는 영화 고유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지 못했거나 부족한 만듬새를 가진 영화일까 생각도 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명성을 간접적으로 끌어다 쓰는 것 아닐까 하는데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이라는 제목이 감성을 호소하는 조급한 작명일 것이라는 걱정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들은 영화를 감상해야 판단할 수 있는 것 들이지만 말이다.



1986년에는 어떤 일이

영화의 감독은 카나자와 토모키(Tomoki Kanazawa, 金沢知樹). 1974년 1월 1일생이다. 영화의 배경인 1986년 당시 12살, 초등학교 5학년 이었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일본의 경제 대호황시대에도 가난한 집에서 살던 친구 '타케모토' 와의 만남을 그린다.


1986년 5월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었고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에 개봉한 영화로는 톰 크루즈의 <탑건>(1986),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 2>(1986) 그리고 일본에서는 지브리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이 개봉하기도 했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은 노스탤지어 영화로서 추억으로 남은 과거의 순간들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준다. 당해 오리콘 차트 1위를 했던 '사이토 유키'의 노래를 듣는 다던가, 당시 소년점프에서 연재했던 만화 '근육맨(キン肉にくマン)'의 캐릭터를 뽑기로 뽑는 장면, 80년대에 사라진 야시카 필름 카메라를 쓰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 일본 관객들의 향수를 끊임없이 자극하지 않았을까.


영화<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네이버 포토, 스틸 컷


나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모험의 목적지 였던 부메랑 섬, 돌고래는 보지도 못하고 그저 발만 찍고 되돌아오기만 했던 여정이었지만 아쉬울건 없었다. 처음 부터 그곳에는 돌고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타케모토'는 단지 '히사다'와 같이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추억이 있다. 방학 때 친한친구와 제부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던 무모한 도전이 생각 난다. 제부도는 당시 집에서부터 75km거리에 떨어져 있었는데 한나절 내내 자전거를 타고 가서 해질녘 쯤에 도착했었다. 도중에 펑크가 나서 10km 정도를 걷기도 하고, 도착하니 얼굴과 손은 햇볕에 그을려서 다 벗겨지고 엉덩이가 쓸려서 며칠 고생을 했다. 


고생 끝에 도착해보니, 막상 시간을 못 맞춰 제부도로 들어가는 길목이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히사다'와 '타케모토'처럼 수영을 해서 입도를 할 베짱은 그때 나에게 없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후 도저히 다시 돌아갈 힘이 나지 않아 자전거를 버리는 결심을 하고 버스를 냅다 타고 왔던 우스운 순간이 있었다.


영화의 디테일을 보면서 분명히 이건 감독이 실제로 해본 짓거리다 라고 생각하니 그에게 동질감을 느껴졌다. 나도 그들처럼 멋있는 바다가 펼쳐진 제부도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먼길을 떠나는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한 도전이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힘들게 ‘부메랑 섬’에 도착했지만 돌고래는 보지도 못하고 별 수확 없이 집에 돌아오게 되는 ‘히사다’와 ‘타케모토’를 보면 그때의 무모한 열정이 생각이 난다. 


영화<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네이버 포토, 스틸 컷


추억의 유통기한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중경삼림>의 '파인애플 통조림'은 너무 거창한 비유일려나. 어쨌든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이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히사다'와 '타케모토'의 우정과 추억은 고등어통조림안에서 신선하게 보관되고 있다는 환유이다. 


내가 겪은 사건이나 경험들이 남들에게도 '특별한 사건'이 되기는 어렵다. 누구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는 영화의 시퀀스와 플롯들이 '히사다'의 기억을 다루는 설득력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 여름의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해 지금껏 간직해오고 있다. 


메이와쿠 정신이 투철한 '히사다'는 시종일관 죄책감으로 움직인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타케모토'의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웃지 못하고, 결국 거리를 두며 밀어내지만 마지막 순간에 '히사다'를 움직인 것은 '타케모토'에게 받은 고등어통조림과 마음을 돌려 주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내적 개혁으로 단단하게 형성된 것이 아닌 외부에서 '히사다'를 마음을 선하도록 동요시킨 것이 건강한 자극이었을까.


윤가은 감독님의 <아이들>(2016) 처럼 한낱 '어린 애들'도 뒤틀려지고 복잡미묘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찬란하며 아름다웠던 그 때를 되돌아보며 한 번쯤 반대로 생각해볼만 하다. 향수에 취해 뒤틀려진 허상을 보고 있는건 아닌지.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다하지는 않았는지, 정갈하게 포장되어 있는 통조림의 딱딱한 철딱지를 벗기면 뭐가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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