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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an 24. 2021

한 끗 차이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

  오늘따라 차는 빨간색 신호등에 자꾸 막혔다.

간발의  파란불을 놓친 때문이다. 노란 신호등이 켜졌을  시치미  떼고 냅다 달렸어야 했는데 그만 멈추어 버렸다. 신호등이 바뀔  운전자는 브레이크 대신 오히려 가속을 함으로써 사고가 많다는 기사를  적이 있다. 나는 운전에 관해서는 꽤나 정직한 편이어서 지킬  죄다 지키며 간다. 같이 출발해도 도착은 항상 꼴찌다.


  괜찮다. 조금 늦어도 좋은 습관이다. 그러나 차가 건널목 정지선  앞자리에  멈추어지면 괜히 한숨부터 나온다. 서둘러 가야 하는 초조함 때문이 아니다. 뭔가 살짝 허탈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어 교문 앞에서 슬라이딩을 했는데,

"너부터 지각! 저기 가서 손 들고 서 있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면 공감할 듯한 기분.




   '간발(間髮) 차이',  그대로 머리카락  오라기 차이라는 뜻이다. 같은 말로  '  차이'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간발의 차이라는  보다 '  차이'라는 말을 빌어 쓴다.   차이는 주로 화투 같은 놀음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화투    혹은  장의 수를 더해 10이나 20 채우고 남는 수를 나타내는 말인데, 친정집 명절에는 모여서 노는 내내 화투판을 벌여  돈의 50% 음주가무에 필요한 유흥비로 조달하기  때문에   차이라는 말이 익숙하고 능하게 쓰게  것이다.

화투판 계산법은 종종 놀이에도 응용되었다. 차가  막힌 도로에서 졸음을 쫓기 위한 방편으로 주위의  번호판에서   차이 시합을 했다. 내가 발견한  번호판의 숫자가  끗인지,  땡인지. 의외로 시간도  간다. 두뇌게임이라 여겨 절대   없다,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승부의 '한 끗'

  하루에도  번씩 겪을  있는 작은 에피소드에서 ' '차이는 웃고 넘기게도 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녹록지 않다.   차이로 이기고 지는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 이유도  '  차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차이로 선거에서 지면 당락이 갈린다. 2등은 금방 잊힌다. 반장 부반장 선거일 경우에는 6개월을,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는 각각 4, 5년을 기다려야 한다.  희비가 엇갈리고 때론 생과사를 넘나들기도 한다. 회전식 연발 권총 리볼버로 하는 '러시안룰렛'   차이로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지 않는가?


https://youtu.be/s-AV3c5Ygvs

  

  영화 '여인의 향기' 삽입되어 유명해진 탱고 음악 '뽀르 우나 까베사(Por Una Caveza)'. 성악곡의 가사는 경주마의 머리털 하나 차이로 승부가 엇갈리면서 걸었던  재산과 사랑을 나누려던 그녀와의 사랑도 수포로 돌아가게  것을 슬퍼하는 노래이다.

 '그녀가 날 잊어버린다면 내 삶을 천 번 포기한들 무슨 상관인가? 왜 살아야 하나?... 간발의 차이로 저버렸네. 모두 미친 짓이야...'


글쓰기의 '한 끗'

  글을 쓰다 보면 또한  ' ' 앞에서 항상 망설이게 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치킨인가? 갈비인가?' 영화 <극한직업> 대사처럼,

' 글은 일기인가? 에세이인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은 금방 이야깃거리가 소진되며 일기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안다.쓰게 되는 경우라면 최대한 감동, 교훈, 정보, 재미  어느 하나라도 담으려 노력한다.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서랍  수많은 글은 물음표를 달고 있는 주저흔인 셈이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둔갑술을 익히든지,   차이의 비밀을   있는 열쇠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의 '한 끗'

  원효대사의 해골수에 관한 일화는 <화엄경> 중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근간이 되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뜻이다. 생각(마음)  끗이 달라진 것뿐인데 세상이 다르고 삶의 가치와 본질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작년 여름, 강원도 여행  정동진에 들렀다가  <타임스토리>라는 시계박물관을 가보게 되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갔던 박물관이었는데  전시실  편에서  <그랜드파더 세븐  클락> 시계를 만났다.  시계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사물과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계의  톱니바퀴에 얽매여 살아가는 삶을 표현한 부정적 측면으로 본다면 ‘우울한 시계’라 할 수 있고 시간을 역동적, 생산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긍정적 측면에서 보자면 ‘활기찬 시계’라 할 수 있다.



인생의 '한 끗'

  다이아몬드(Diamond)는 탄소 단일 원소이다. 연필과 샤프심의 재료가 되는 흑연(graphite)도 같은 탄소 동소체이지만 다이아몬드와 결정구조만 다르다. ‘한 끗 차이'로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인생을 달리 산다.


  생각의 전환, 태세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JTBC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에서도 인용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최린(崔麟. 1878 ~ 1958). 1919 조선민족대표의  사람으로 3.1 독립선언에 참여한 민족 지도자였으나 이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거쳐 매일신보사 사장까지 지내는  변절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다. 해방된  1949 1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차례 공판을 받았다. 재판정에서 그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노라' 변론을  이광수에게 '  다물라' 일갈(一喝) 하며 '자신의 사지를 광화문에서 찢어서 네거리에 걸어달라'라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했다. 그해 4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고 1950 한국전쟁  납북되어 1958 12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가 친일행위를 진심으로 참회하였는지, 시인에 그쳤는지 혹은 위기를 모면코자 하는 변명에 불과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마지막 참회가 진심이었다면 그는 생각의 한 끗을 바꿔 인생의 수치를 조금이나마 면죄받지 않았을까.



  

  사거리 빨간불에 차가 멈추는 바람에 '  차이'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대로 '  차이' 근소한 차이지만 때로는 엄청난 결과와 변환이 일어나는 말이었다. 작은  하나라도 소홀히   없는 이유일 것이다.   차이라고 안도해서도 무시해서도 안되는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1, 2분의 시간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기에 허투루 여기지 말아야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신호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노란 신호등은 파란 신호등이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는 때만 켜지더라. 빨간 신호등에서 파란 신호등으로 넘어갈 때는 노란 신호등이 켜지지 않더라.


  노란 신호등 앞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나만 모르고 있었나?



*) 끗

[의존명사]  

1.  접쳐서 파는 피륙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한 끗은 피륙을 한 번 접은 만큼의 길이이다.  
2.  화투나 투전과 같은 노름 따위에서, 셈을 치는 점수를 나타내는 단위.


*) 한끗  

[명사]  

근소한 차이나 간격이 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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