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
“한 가지 톤으로만 계속 말을 하면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을 겁니다. 음악도 글도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높낮이도 있고 강약도 있고 여운도 있어야 하지요. 지금 이 순간이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좀 멋있게, 있어 보이게 수상 소감을 얘기하는 것이 나을까?
“어느 날 갑자기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첨벙 하고 제 마음속에 떨어졌던 것 같아요. 무엇에 끌리듯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조금 들뜬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을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이제 시작한 것뿐인데 이런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응원과 채찍으로 알고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혀 인상적이지 않지만 무난하고 고전적인 방법을 쓸까?
수상 소감을 준비하며 행복한 며칠이 지났다.
사실, 수상소감 보다는 올 한 해 브런치에 올렸던 내 글을 차례로 하나하나 다 읽어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쩜, 하나 같이 예쁜 자식들 같을꼬...’
애정하며 나만의 세계에 빠져 마냥 행복했다. 다정도 병인냥 하여 잠못 들어 했다. 말 그대로 ‘가지가지 했다’.
두구두구두구......
드디어, 2020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 전야제.우리 집 연말 시상식이 열렸다.
TV에서도 각종 시상식이 진행 중인 것과 시기를 맞추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각자의 소망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23일을 시상식 날로 정했다. 모임이 제한된 상황이라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다 보니 재밋거리를 찾고 만들어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가족의 올해 핫이슈도 뽑고, 각자의 자랑거리도 순위를 매겨보았다. 큰 이슈가 없으려니 했었는데 꼽아보니 감사할 일 천지고 잘한 일이 많다.
올 한 해도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살았다. 서로 칭찬하며 내년에도 더 열심히 살자, 으쌰으쌰 했다. 상장도 트로피도 상금도 없는 시상식이었지만 의미 있는 시상식이다.
특히 내 브런치 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나는 졸지에 도마 위에 오른 생선 꼴이 되어 희번덕 눈알만 굴리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었다.
시상식 결과는 이러하였다.
詩詩한상(시시한 상) : 시다운 시에게 주는 상
1위: 쨉 말고 훅(진격의 18세 딸의 조언)
https://brunch.co.kr/@@8usO/61
2위: 시간이 지나는 길(계절이 지나가는 길에서)
https://brunch.co.kr/@rlawofudd/85
3위: 비질을 하다(깨끗한 안부를 묻다)
https://brunch.co.kr/@rlawofudd/112
明文상(명문상) : 멋진 문장에게 주는 상
1위: 손톱 발톱으로부터의 해방
https://brunch.co.kr/@rlawofudd/100
... 이제부터는 '배가 불러서 발톱이 안 보인다고, 자기가 깎아주면 안 돼?'라는 앙탈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지 20년이다. 신혼이 아니란 말이다.
콩깍지는 진작에 벗겨졌고 도끼눈만 남았다....
<부연설명 : 이 문장을 읽은 남편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정말 도끼눈만 남았냐?'라고 또 앙탈을 부렸다. 웃겨 죽을 만큼 엄청난 문장이라 했다. 그래?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
2위: 닭발 유지비
https://brunch.co.kr/@rlawofudd/81
... 어느 날, "닭발 유지비가 꽤 많이 드네"한다.
차량 유지비도 아니고 체면 유지비도 아니고 닭발 유지비라니? 엥겔 지수도 아니고 슈바베 지수도 아니고 닭발 유지비라고? 생뚱맞다.
<부연설명: 딸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글로, 카카오톡 서비스로 발송되기도 해서 조회수가 많았다. 딸은 그걸 빌미로 여러 차례 뒷돈을 요구했고 부당하다 여겼지만 결국 아이디어비를 제공했다>
3위: 아버지의 이름으로, 시험을 본다고?
https://brunch.co.kr/@@8usO/15
... 그날 내리던 눈송이 하나하나가 그리움이 되어 얼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부연설명: 갬성폭발 중2 아들이 이 글을 읽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아버지께 잘하리라 마음먹었댔는데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보이지 않아~ (노래)>
비주얼상 : 대표 사진이 침샘 자극한 상
1위: 김장은 걱정, 굴보쌈은 설렘
https://brunch.co.kr/@rlawofudd/105
2위: 배추도사 무도사는 옳다
https://brunch.co.kr/@rlawofudd/91
3위: 엄마는 대표 메뉴가 없어!
https://brunch.co.kr/@@8usO/26
술상: 재미있는 술 이야기
1위: 머루주에 속아 넘어갔다
https://brunch.co.kr/@rlawofudd/56
2위: 쏘맥 양은 나쁘다
https://brunch.co.kr/@rlawofudd/62
3위: 하이볼, 한 잔 하자
https://brunch.co.kr/@rlawofudd/76
최고의 작품상
1위: 밥 잘해주는 예쁜 아줌마
<부연 설명: 브런치 작가로 이름을 올리게 된 첫 작품으로 '시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10개월 만에 일은 그만두었으나 실업급여까지 받으며 계획했던 1년에 1천만 원 모으기에 성공했던 이야기>
2위: 하늘빛 물빛을 따라 밴프로 찾아들다
https://brunch.co.kr/@@8usO/39
<부연 설명: 딸의 강력한 말빨로 2위에 등극한 작품.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캐나다 여행 중 밴프가 가장 좋았다며 울먹이는 바람에 선정되었다. 추억으로 가는 여행 글>
3위: 1987년, 슬픈 막걸리
https://brunch.co.kr/@@8usO/68
<부연 설명: 내가 선정하고 나에게 수여하는, 부끄러운 젊은 날의 초상과 같은 이야기>
특별상: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한 글
https://brunch.co.kr/@@8usO/17
가치상: 함께여서 더욱 가치있는 상
https://brunch.co.kr/@rlawofudd/84
<부연 설명: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라는 공동 프로젝트에 참전하여 쓴 글로 다른 작가들과 '책'이라는 주제로 서로 글을 쓰며 추억을 만들었기에 더욱 가치있게 느껴지는 글이 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분야로 나누어 길고도 오랜 평가가 이어졌고 결론은 ‘좀 잘 쓸 수 없나?’였다.
아쉽다, 2% 모자란다, 기획이 필요하다, 트렌디하지 못하다, 색깔(개성)이 없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얘기다. 시간 관계상 서둘러 시상식을 접었다. 나는 너덜너덜 그로키 상태가 되었다. 아...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여라!!!
그러나 내년에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