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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24. 2020

생일상도 진화한다

마음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

 (달그락달그락 소곤소곤...)

까치발 걸음처럼 조심스러운 소란에 잠을 깼다. 알람도 울리지 않은 시각. 도대체 몇 시야?

새벽 5시 20분... 누구냐, 넌?

어라? 옆자리에 있어야 할 내 편, 남편이 없다.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닌데, 간식을 싸가려나?

“누구 일어났어?”

(후다닥...)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안돼, 안돼, 잠깐... 10분만... 지금은 아니되옵니다”

따님의 목소리가 아니신가? 이 새벽에 뭐하는 시추에이션인고?

“뭐야? 무슨 일이야? 뭐 먹으려고?”

문 열어줄 때까지 꼼짝 말고 있으라 어명 인양 엄포를 놓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궁금하긴 하나 애써 나갈 힘이 없다. 잠이 들깼어...

잠시 후, 문이 확 열리며,

“짜잔~ 생신 축하드려요~”

“생일 축하해요”

“와~우”

감탄과 환호가 절로 나오는 내 생일상이다. 남편과 딸의 환상의 콜라보 밥상. 상다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판이다.

현실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독도 새우, 랍스터, 전복, LA갈비가 뒷줄에 포진해 있고 앞줄에 현실세계 음식인, 3분 카레, 3분 미역국, 노른자 터진 계란 프라이, 봉지 뜯은 맛김이 자리하고 있다.

분명 딸의 아이디어였으리라. 접시에 플레이팅 된 현금은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왔을 터이고...

 서프라이즈도 잠시, 6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 남편과 서둘러 생일밥을 먹었다. 선물 증정식과 본격적인 파티는 저녁에 하는 걸로 계획을 했다나 어쨌대나...

입은 까슬까슬한데도 밥맛은 꿀맛이다.




  우리 집 이벤트는 이렇게 나날이 진화한다.

나는 사실 이런 번거로운 이벤트는 싫어했던 사람이다. 굳이 요란 떨고 싶지 않아서다. 나 좋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 싫어서였다.

그러나,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고

표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모른다는 남편의 말이 맞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옛날 아버지 세대가 그랬다.

먹고살기 힘들어서도 그랬지만 표현하는데 지극히 인색했다.

친정 엄마의 긍정 에너지로도 역부족이었던 건 아버지가 차지하는 위치였고 집안 분위기를 잠식하는 보수와 가부장적 태도였다.

아버지는 대개 두 가지 모드의 화법을
구사하셨는데 하나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버럭이었다.


그 덕분에 나 역시 버럭에는 일가견이 있다.

하여튼, 알게 모르게 식구들은 침묵에 익숙해졌고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했다.

그러다 보니 그 속내를 가늠하지 못했고 짐작해보려 애쓰지 않았다. 뒤늦게라도 눈치를 챘을 때는 표현할 대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관심을 두었다면, 어색하더라도 해보았다면 해졌을 일을 그리도 안 하고 살았나 싶다.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하는 게 좋다.
해서 안 좋은 것보다는
안 해서 후회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표현하고 살다 보니 감정의 확인은 참으로 많은 말들을 내포하고 있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가고 들어올 때 수고해 수고했어 안아주는 것.

 감사와 축하를 전할 때 간단히 손편지 쓰는 것.

 일어나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뭐 먹었어, 힘내, 수고했어... 등은 꼭 그때그때 말로 하기.

맛있는 음식 가족들에게 먼저 챙겨주기

 이런 것들을 대략 챙기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사춘기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하도 사랑해~고마워~ 해대니 무념무상, 체념하며 잘해주고 있다.

머리로는 기억 못 해도 몸이 기억한다고, 아마 커서도 습관적으로 좋은 말들을 하고 살 것이다.

아빠 엄마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있다면, 학교 갔다 오거나 외출 후 돌아왔을 때 꼭!

“다녀왔어? 수고했어!”하며 안아주라고 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왔구나 땀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애틋함과 애정이 뭉클 느껴진다는 좋은 얘기인데

 반대로 외출 후 들어왔을 때는

‘이 눔의 자슥이 술 담배 등 좋지 않은 것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단다. 학부모 연수 때 어느 강사분이 한 말이었는데 아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아, 참, 그리고 문득 생각해보니 생일 밥상에 아들이 없네?

전날 자면서 그 시각에는 절대 못 일어나니 깨우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 눔이 잠을 선택하고 엄마를 포기했겠다. 내가 뒤끝이 살짝 있거든. 버럭에도 일가견이 있고. 후환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게 해 주마. 딱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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