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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18. 2020

순정만화 주인공 되어보기

공포를 읽는 시대를 잊고 싶은 마음으로

 2016년에 방영됐던 드라마 <W>.

현실 세계의 초짜 여의사 오연주가 우연히 인기 절정 웹툰 'W'에 빨려 들어가, 주인공 강철을 만나 로맨스가 싹트면서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는 로맨틱 서스펜스 멜로드라마였다.

 주인공 역을 맡은 이종석은 정말 로맨스 만화의 주인공처럼 달달했고, 로맨스가이의 사랑을 받는 한효주가 실제로 남자 친구를 빼앗아간냥 나는 질투의 화신이 되었었다.

 내용이 진부하든 현실성이 없든 어차피 픽션인 것을 전제하고 보는 만큼 무슨 상상을 하며 보든 자유였고, 다큐가 아닌 이상 도끼눈을 뜨고 시청할 필요가 없으니 편했다. 드라마의 내용 역시 현실과 만화의 세계를 넘나들었기 때문에 아주 가볍게 시청할 수 있어서 청춘의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즐겼던 드라마였다.

좀 유치하면 어때?

드라마인데, 만화잖아? 이러면서...

 

 <W> 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 해 7월의 내 마음은 매우 음울하고도 슬펐었다. 급작스럽게 찾아와 어리둥절했던 아버지의 죽음이 조금씩 깨우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다가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난감함을 겪기도 했다.


 현실이 부정적이고 암울할수록 우리는 정신적으로 해방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찾고 즐기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런 걸 재미나 눈요기라 하기도 하고 외도라 하기도 하고 힐링이라고도 부르는 것일 테지.


<W> 드라마는 그렇게 나의 위안이 되었었다.

  



 이번 여행은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3월에 계획했던 것이었는데 미루어 오던 것을 방학기간에 맞춰 다시 잡은 것이다. 잠시나마 코로나가 주춤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 중에도 재난문자를 통해 계속 들리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에 머릿속 사고가 멈춤 신호를 감지하고 급정거한다. 학교 알리미, 관공서, 학원 등에서는 연신 주의를 요한다는 문자가 뜨고 개학을 앞둔 시점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동의를 구하는 전화가 왔다.

아들 녀석은 친구가 걱정된다고 한다. 확진자 학생을 가르친 과외선생님의 수업을 친구가 들었단다. 열이 나는 것 같다고 친구는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열이  나고 있는 걸까? 여행에서 돌아가면 학원을 보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광복절 집회 소란이며 띵~ 띵~ 재난문자 메시지는 계속 울려대는데 여행지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어둠이 스멀스멀 찾아오는 저녁 무렵처럼

낮의 황사가 적사(赤沙)의 귀신이 되어 오는 밤처럼

어둠과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허세의 패러디쯤 되는 말로 ‘한 다리 두 다리 혹은 서너 다리만 건너면 대통령과도 아는 사이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학연 지연의 소위 ‘끈과 줄로 통하는 시대’를 비꼬는 말인 이 말이 요즘 시대, 공포를 읽는 시대에도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는 몇 사람만 거치면 코로나 확진자’,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 <W> 드라마에 빠지듯, 어플 ‘순정만화’ 필터 기능에 빠져 그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미소를 짓고, 사진을 보며 웃는다. 내 얼굴이 자꾸 보고 싶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한다.

미워했던 사람도 이렇게 찍고 보면 정이 들게 생겼는데, 하물며 나의 얼굴임이랴... 순수, 그 자체다.


친정 엄마와 언니도 찍어주고... 나 혼자 이렇게 놀기도 한다.

이렇게 땡그란 눈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매끄럽고 뽀얀 얼굴은, 정말 웬일이니? 누구세요?

처음에는 박장대소하며 너무 심하게 만들어놨다고 야유를 보내던 남편도 합세하여 ‘순정만화 놀이’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덕후가 됐다.


 세월을 역행하여 이런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무엇으로도 젊음을 치환할 수는 없지만,

이런 소소한 놀이로 ‘자꾸 바라보고 싶은 나’를 만나게 되는 일은 즐거운 일인 것 같다.

더구나 이런 ‘공포를 읽는 시대’에는 잠깐의 얕은 웃음이 공포를 잊게 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호수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다 감정이 다른 쪽으로 빠져 문득 이 시가 생각이나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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