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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06. 2020

벌 책상에서 공부하기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은 보여!

“엄마, 저... 이거... 일명 ‘벌 책상’이라고 하는 건데 하나 사주시면 안 돼요?”

“뭐라고? 오늘 벌섰다고? 왜?”

“ 푸흡... 이제 귀까지 안들리시네! 벌 선 게 아니라 벌 책상이라고... 스탠팅 책상인데, 하나 사달라고요. 잠이 와서 안 되겠어. 서서 공부하게”

“앉아서도 안 되는 공부가 서서 하면 잘된대?”

내뱉어 넣고는,

‘아차! 어이구... 또... 또 ‘절벽 대화법’ * 시연이로구나...’ 했다. 나는 왜 이 모양인 건지.

어머, 그런 책상도 있니? 친구 중에 누가 그런 책상을 샀대? 벌 책상이라는 건 써봤어? 집중이 정말 잘되니? 어디 한 번 보여줘, 뭐가 벌 책상이야?... 이렇게 말했어야지.

“그냥,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졸리면 교실 뒤에 있는 벌 책상에 가서 수업 듣는데 졸리지도 않고 허리도 펼 수 있고 좋더라고요. 가격도 얼마 안 해. 사주실 거죠?”

 쉿! 다행히 딸은 나의 이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절벽 대화법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벌 책상으로 검색하기보다 스탠딩 책상으로 검색을 하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와~ 스탠딩 책상의 신세계다.

높이와 각도 조절이 되는 것부터 바퀴 달린 이동식 스탠드 책상, 데스크 위에 놓는 원터치 스탠딩 책상까지... 거북목을 예방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은 덤이다. 서서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나 생각하게 되듯이.


“아, 이거... 괜찮겠네. 가장 심플한 제품으로 사면 가격도 저렴하네. 사줘야지, 당장 주문해 드리겠습니다”

“땡큐여요, 어머님”




 사실, 얼마 전에 딸은 ‘1인 독서실 책상’을 사달라고 했었다. 검색을 해봤더니 50만 원선이 최저 가격선이라,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친구 중에는 아예 독서실을 한 달 단위로 끊어놓고 거기서 공부하거나 독서실책상을 산 친구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는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어서인지 아무리 봐도 이 ‘1인 독서실 책상’이라는 것이 아주 고약하게 느껴졌는데, 일제시대 ‘벽관 고문’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벽관 고문이라니... 가도 너무 간다 싶지만 나는 항상 못 먹어도 Go다!

 이 뿐 아니다. 1인 독서실 문을 밖에서 잠가 아이가 일체 밖으로 못 나오게 했다든지, 돌아다니지 못하게  아이를 의자에 묶어놨다든지, 졸지 말라고 아이 머리를 꼿꼿하게 세워놓았다든지 하는 만행을 뉴스에서 보았던 터라 도저히 이 ‘답답한 나무박스’를 사줄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서라도, 가두어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니 코끝이 찡~ 해 왔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딸아...

‘너의 패인은 잠’이라고 그리 고난도의 과학적 이유를 설파하여도 모른 척하더니,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였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을 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디 한 번 잠을 물리쳐 보자꾸나.

급하면 내가 소금이나 팥을 뿌릴 각오도 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며칠 후, 주문한 책상이 보무도 당당히 우리 집에 입성했다. 공부방 한편에 놔두고 책상과 책상을 오가며 공부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어떻게, 벌 책상에서 공부하면 공부는 잘 되나요?”


 잘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엄청 공부 열심히 하는 것처럼은 보인다. 사람은 한꺼번에 여러 개의 작업을 해결할 수 없는 뇌구조를 가졌다는데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강의 듣고 자료 찾고, 벌 책상에서 교과서 읽고 밑줄 치고 다시 스탠딩 화이트보드에서 외운 거 쓰면서 확인하고...

이거 완전히 입체식 공부방법이잖아, 시대가 요구하는 멀티플레이어의 모습 되시겠다.

책상 노트북에서 스탠딩 화이트보드로, 다시 벌 책상으로...

 사주길 ‘참 잘했어요’ 다.

덕분에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각종 가구와 도구, 물건들로 가득 찼다. 거기서는 공부밖에 할 게 없는 삭막한 방이 되어 버렸다.




 ‘서서 하는 일들이 정말 많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서서 먹는다.

서서갈비... 6.25 전쟁 통에 아내와 딸을 잃고 1953년 생계를 위해 드럼통 하나 놓고 장사를 하셨다 들었다. 원조 서서갈비집에서는 아직도 서서 음식을 먹는데 우리 동네 서서갈비집은 왜 앉아서 먹지?

스탠딩 파티... 어릴 적 로망이었던 가든파티, 요즘은 그런 럭셔리 파티 많이 하고들 살던데... 아직도 초대받아 본 적이 없는가, 자네?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한 환자들은 서서 먹는다. 이유는 아파보면 안다.


서서 기다린다

맛집 앞에서... 이 기다림 뒤에는 배고픔은 해결되지만 반드시 낙이 오지는 않는다.

그녀의 집 앞에서... 요즘 그런 눔 없다. 그런 눔이 있다면 스토커이거나 나쁜 짓을 하기 위해 항시 대기 중인 눔이다.

그 눔의 집 앞에서... 그런 뇬은 더더욱 없다. 만에 하나 그런 뇬이 있다면 뇬 실은 자동차가 서 있을까?


서서 본다

서점에서... 눈치는 살짝 보이지만 초지일관 의연함으로 승부한다면 머릿속은 빵빵하게 채울 수 있다. 눈치를 감당할 수 없다면 교보문고로 가라. 설립자 신용호 회장이 서서 책 봐도 된다고 이미 말해놨다더라.

욕실 거울 앞에서... 누구세요?

집에서... 엄마 왔다, 아빠 왔다, 누가 오셨다! 제발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인사하고 얼굴 좀 봐라!  그게 싫으면 센스 있게 자는 척이라도 해라.


그리고... 벌 책상에서 서서 공부하기...




 요즘 우리 집에서는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시기가 시기인 만큼 ‘벌 책상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루 중 언제 사용할지 시간을 얘기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인기가 많아 거실에 내놓고 쓴다.

마땅히 둘 데가 없어 현관 중문 바로 앞에 놓았더니 사용 안 할 때는 Info desk가 되기도 한다. 열쇠나 책가방 택배 상자 올려놓기 아주 좋다.

그러나 아무리 용처가 많다기로 옷만 올려놓지 말자 속으로 생각한다.


  아이들 기말시험이 다 끝났으니 벌 책상은 당분간 내 차지가 될 것 같다.

벌서는 기분으로, 벌 책상에 서서

살벌 짜릿한 연애소설이나 써•볼•까?



* 표지 사진)

빌헬름 하메르스회 (덴마크 화가. 1864년~1916년)

<Ida standing at a desk> 캔버스에 유채. 41 by 35 cm.  출처: Sotheby’s.


*) 절벽 대화법 : 다음 이어갈 대화를 완전 차단해버리는 고난도 스킬의 대화법. 명명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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