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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Oct 06. 2020

닭발 유지비

닭발, 너는 이제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가계부 적을 맛이 나질 않았다.

당최 신이 나지 않았다. 한 달을 요령껏 돈을 돌려봐도 남는 돈이 있어야 요량을 할 텐데 한 달을 힘들게 살아서 가계부상 0원의 잔고가 있는 통장 아닌 '텅장'을 확인해야 하는 일은 재미없는 일이다. 뒷돈을 꿰차기는커녕 쌈짓돈도 꺼내 보태야 할 터였다.

여윳돈도 없으니 모으는 재미도 없고, 500원짜리 어묵을 사 먹고 싶은데 300원짜리 어묵을 고르는 것도 은근 부아가 났다.


  결혼 후, 3년 만에 경제권을 하나도 남김없이, 미련 없이 남편에게 넘겼다.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숙해지고 경제권이 없는 사람은 경제관념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숫자와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다. 수학을 못하지는 않았지만 숫자에는 취약하다.  '숫자 알레르기' 같은 것이다.

지금도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 정확한 액수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약간의 현금과 카드 하나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사고 쓰면 되는 것이다. 헐렁하게 살고 싶은 ‘베짱이과’인 나로서는 더없이 편한 생활방식이다. 메이커와 유행에 극도로 무딘 성격은 돈이 있어도 딱히 쓸 자리를 찾지 못한다. 게다가 내가 번 돈은 내 것이다.

매달 받는 약간의 현금도 남으면 아이들 앞으로, 내 이름으로 은행에 조금씩 넣어두었다. 그 부스러기 돈들이 몇 해를 지나 모이니 솔찮다.**

아이들과 캐나다, 미국, 스페인 여행 때 빼서 반씩은 보태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모아진 돈은 앞으로도 여행자금으로 쓸 셈이다.


  반면 남편은 돈을 부리는 데 있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월급이 들어오면 보험과 적금, 세금(자동차세, 재산세, 주민세 등), 통신비, 아파트 관리비, 양가 부모님 용돈 등 고정 지출비를 챙기고 납부기한, 할인 방법을 체크해야 한다. 학원비, 식비, 교통비, 용돈, 생활비 등 탄력적 운용이 필요한 지출에 대해서는 들고 나는 비용을 조정해야 한다.

노년을 위한 자산 운용도 장, 단기적으로 넣었다 뺏다를 해야 한다.

알고는 있으나 꼼꼼히 챙길 자신이 없으니 관심 있고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챙기는 게 맞다.

남편은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이런 방면으로는 고수다.

‘주요 경제 주체인 국가, 가계, 기업 등의 부채가 지난해를 기준으로 5000조 원에 육박한 것’에 비해 우리 집은 대출 하나 없으니 꽤 우수한 자산운영가의 손이 닿았다는 증거다.


  어느 날,

“닭발 유지비가 꽤 많이 드네.” 한다.


차량 유지비도 아니고, 체면 유지비도 아니고 닭발 유지비라니? 엥겔지수도 아니고 슈바베 지수도* 아니고 닭발 유지비라고? 생뚱맞다.


“사 먹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해 먹어야겠어” 한다. 육식 공룡의 고기 부심이 한도 초과에 과부하 상태인데 이를 어이 할까 싶다.


  그동안 닭발을 많이 사 먹기는 했다.

우리 동네 닭발을 파는 음식점은 6~7집 정도 되는데 가격은 1인분에 7,800원부터 12,000원까지 다양하다. 공교롭게도 가장 맛있어하는 닭발이 최고값을 받는 집 닭발이다. 닭발을 먹기 위해 그 숯불닭갈비집을 갈 정도다. 가끔은 닭발만 사 와서 먹기도 한다. 한 번 살 때 최소 3인분은 시켜야 ‘좀 먹었네’ 정도니 외식비의 비중이 높았다.


“나는 하기 싫어, 정말. 그냥 사 먹고 맙시다”

“하지 마요. 안 시켜, 내가 하면 되는데 뭐”

기어이 닭발볶음을 하시겠다며 추석 연휴에 동네 마트 5곳을 돌아 닭발 2kg짜리와 닭똥집 2kg짜리를 구해왔다. 짜자잔~ 의지의 한국인 되시겠다.


<만드는 방법>

1. 닭발과 똥집을 찬물에 담가 그 위로 밀가루를 뿌리고 30분 정도 놔둔다.

2. 깨끗이 씻은 후, 월계수 잎과 생강, 파를 넣고 끓인 물에 데친다.

3. 건져 내 다시 깨끗이 씻는다.

4.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굴소스, 마늘, 설탕, 후추를 섞은 양념장을 재료에 넣어 버무린 후 볶는다.

5. 깨소금과 참기름을 차례로 넣어 마무리.

6. 뜨끈한 곰국은 서비스!


  닭발볶음의 원조는 사실 ‘나’다.

닭발과 더불어 돼지껍데기 등 호불호가 분명한 음식들은 남편과 연애할 때 처음 먹었다. ‘징그럽다’는 선입견만 버리니 제법 입맛에 맞는 음식이 되어 가끔씩 즐겼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걸 파는 음식점 출입이 용이치 못했다. 숯불에 먹어야 제격이고 대부분 술집이라 그랬다.

먹고는 싶은데 음식점 가기는 그렇고... 돈도 절약할 겸 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 먹자는 호구지책이었다.

옆에서 아이들도 하나씩 먹다 보니 인생 음식이 되었고, 최애 음식이 되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 Top 3에 들게 된 것이다.


  집에서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해 먹던 것을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사 먹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크면서 먹는 양도 많아지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닭발 유지비’ 운운하게 된 사연인즉 이랬다.


  그런데 이제 그놈의 닭발 유지비인지 뭔지 때문에 다시, 직접 요리까지 하실 의지를 불태우시니,

앞으로 닭발, 너는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너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음...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닭발과 똥집과의 콜라보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닭똥집을 한 입 베어 문다. 서걱대고 설컹이는 소리를 내며 잘리고 쫄깃쫄깃하게 씹힌다. 갈바람에 억새 비벼대는 소리가 난다. 적당히 매운맛이 다음 차례를 재촉한다.

닭발도 집는다. 뼈 없는 닭발이 푸르르 젓가락 사이에서 몸을 떨며 하얗게 질렸다. 말캉말캉 잘도 씹힌다. 사이사이 밴 양념이 부드러운 살과 함께 입 안 가득 퍼져 폭죽처럼 작렬한다.

‘하나 더’를 부르는 맛이다.

무심히 넣은 통마늘도 잘 익어서 풍미를 더한다.

젓가락들이 난무했다.

좀 전에 저 접시에는 무엇이 담겨있었을까? 접시의 쓰임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인다.


  따로 비법을 전수한 것도 아닌데, 역시 많이 먹어 본 사람이 그 맛을 낼 수 있는가 한다.

‘여보, 하산(下山) 하이소’


  나는 똥집 하나, 닭발 하나 먹었을 뿐이지만 충분히 눈으로, 마음으로 배불리 먹었다.

지난날, 부족하고 어려웠던 생활 속에서 수고롭게 해 먹던 그 맛이 생각이 나서였을 것이다.

소소한 행복의 맛이다.



*) 슈바베 지수(Schwabe index) 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 솔찮다: 꽤 많다.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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