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먹는 스타일과 식성은 유전되는가?
얼마나 먹고 싶었던 된장국인지 모른다.
훌훌한 된장국이다.
일필휘지 붓질을 하듯 주방에서 자유자재 칼을 쥐고 음식을 하는 사람이 그 흔한 된장국이 대수냐 하겠지만 대수다, 큰 일이다, 별일에 속한다.
우리 집 식구들 모두(우리 집 3高 씨)는 자글자글 된장찌개를 먹고 나(1 金 씨)만 훌훌한 된장국을 먹기 때문이다. 나 혼자 먹자고 내 입에 맞는 음식만 해지지는 않는다.
하긴 요즘은 ‘눈치 볼 거 뭐 있나? 나는 소중하니까’ 즐겁고 편한 대로 자기 위주의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옛날, 여자, 사람은 그게 잘 안된다.
어려서부터 이런 훌훌한 된장국을 먹었던 것 같다.
엄마는 다시마 멸치 보리새우 파뿌리 양파 무 북어대가리 등을 넣어 한 솥 국물을 우려 된장국을 끓이셨다. 한 솥 다시 국물에 감자 양파 호박 버섯 두부 파 마늘 등을 또 넣어 국을 끓이니 합이 두 솥 분량 되려나?
어마어마한 된장국은 퍼도 퍼도 줄지 않을 듯해도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으레 동이 났다.
먹성 좋은 4남매의 식성을 따라가자니 양 많은 된장국이었을 것이다.
훌훌한 된장국을 그렇게 먹다 보니 내 입에 맞는 인생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친정에 가면,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국 먹고 싶어” 한다.
그런데 결혼해서 먹게 된 시어머님이 끓여주신 음식은 된장국이 아닌 된장찌개였다.
소고기만을 넣고 이제껏 끓여 오셨다고. 귀하고 비싼 채끝등심을 깍둑 썰어 고기 반, 다른 재료 반인 바글바글 된장찌개를 내어 놓으셨다. 내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주객이 전도된 음식은 당기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짜파구리의 양상인데, 1200원짜리 짜파게티에 2만 원의 소고기라니. 구색이 맞지 않은 음식이다.
된장국은 된장국답게 소박하고 단정해야지.
다른 맛의 침범 없이 본연의 맛이어야지.
팍팍한 세상에, 모처럼 촉촉한 위안이라도 받을까 해서 스타일대로 된장찌개를 끓여 질펀한 캠핑용 스텐 대접에 훌훌한 된장국을 담아 먹었다.
모름지기 된장국은 이래야 한다. 이 맛이다.
밍밍하고 맹숭맹숭하고 어리숙하고 만만해야 한다. 다른 입맛은 변해도 이 입맛만은 변함이 없다.
마시듯 두 대접을 먹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배도 불러 무위무사(無爲無事)하니 여러 생각이 오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많은 것이 3고 1 김이다. 특히 음식에 관한 취향과 식성 차이가 크다. 식탁 위는 남북회담 테이블처럼 양쪽 온도차가 심하다. 좌 청룡 우 백호의 모습처럼 확연히 갈린다.
1 김 : 3 고 =
훌훌한 된장국 : 자글자글 소고기 된장찌개
감자 듬뿍 참치김치찌개 : 고기 잔뜩 김치찌개
해물 모듬 : 생선회 모듬
그냥 라면 : 치즈 라면
라면 먹을 때 김치는 필수 : 김치는 선택
나물 야채 비빔밥 : 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야채 과일 등등 : only 고기
3 고가 모의 작당하듯 식성까지 너무도 똑같으니 어떨 때는 식성도 유전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식성(食性), 음식에 대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성미이다. 과연 식성도 유전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보았다.
유전일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자료가 넘친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들을 조사해 보니 오이에 들어 있는 PTC라는 물질에 반응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연구진이 ‘맛 선호도와 유전자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수용체의 유전 성분이 맛의 선호도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랬구나.
1 김 3고의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구나.
3고의 높은 산맥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이구나.
왜 안 먹느냐, 못 먹느냐 타박했었고, 이거 한 입만 먹으면 고기 줄게 딜 deal을 했었는데 다른 식성 다른 입맛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았어야 했구나.
이제 좀 실마리가 풀린 느낌이다.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고기에 관한 한 접점은 있기는 한 걸까?
‘고기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분위기인데, 과연 저들의 고기 부심과 고기를 향한 무한 질주 본능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이번 추석 준비를 하면서도 육전에 갈비에 수육에 얼마나 많은 육고기를 만져야 하고 만들고 먹어야 할꼬? 벌써부터 니글거린다.
조금 바지런을 떨어 이번 추석에는 나만의 음식도 만들어 먹어야겠다.
훌훌한 된장국을 먹으며 마음을 추스른다.
훌훌한 된장국 먹으며 헐렁하게 살자. 저들을 미워하지 말자. 이해하자, 주먹까지 불끈 쥐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