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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Oct 16. 2020

밟아야 제맛인 ‘족타 수제비’

오늘의 주문은 “칼 하나, 제비 셋!”

 아버지의 월급날은 25일이었다.

내가 일을  때도 월급날은 25일이었고 남편 월급날도 25일이다. 누가,   날을 월급 받는 날로 정한 것인지 모르지만 보편적으로 25일은 기분 좋은 월급날. 달력에 빨간색으로 인쇄돼  박힌 국경일과 진배없는 경사스러운 날이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빠져나가는 돈에 실망하고 한숨이 나와도 어쨌든 노력을 보상받는 날이니, 삼겹살부터 구워 먹고 봐야 한다.


 아버지의 누런색 거친 월급봉투는 무늬만 월급봉투였다. 외양과 조건은 갖추어져 있으나 얇고도 가벼웠다. 월급봉투를 받아  엄마의 시름은 깊었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부터 근면 성실히 출근하셨고, 토요일 일요일 구분 없이 집을 나서셨지만  일만 열심히 한다   없었고 지조 있게 술집을 드나드셨다. 취미마저 고상하고 다양해 언젠가는 사냥 갔다 왔노라 토끼며 꿩을 들고 오셨고  (창고)에는 낚시도구가, 앞마당과 거실에는 수석과 분재 화분이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외제 카메라와 전축이 배달돼 왔고 누가 읽을까 싶은 금색 양장본 전집류가 박스채 쌓이기도 했다.


 길고  설명을 첨가하기는 식은  먹기이나 그만 줄이는 것은, 오늘 안에 장황한 이야기를 마치기 힘들  같아서다. () () 떼고 주어진 월급으로 어렵사리  달을 살아내야 하는 엄마의 고충을 어린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아버지 월급 받은 다음 날이 신났기 때문이었다.

 날만은 먹을 것과 생필품이 넘쳐났으니까. 물론  달치의 식량이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셨지만 든든하고 뿌듯했다.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고 먹을  생각하면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연탄,  한가마, 라면  박스, 밀가루 20kg  포대, 국수, 감자, 고구마, 보리쌀, 계란...

“그나마 이거라도 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엄마는 그제야 휴~ 안도하셨다.


 그중 밀가루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괴이한 것이, 20kg 포대에 가득 담겨 있는 밀가루가 금세 자취를 감춘다는 사실이었다. 간식을  먹거나  끼를 배달음식으로 대체할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달에 20kg 먹어치운다는 것은 지금도 가늠키 힘든 일이다. 우리  점심은 그래서 칼국수 수제비 혹은 국수 등이었고 간식으로는 꽈배기와 삶은 고구마와 감자, 부침개 등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번갈아 가며 감자 껍질을 벗기거나 밀가루 반죽을 해댔는데 특히 밀가루 반죽은 힘을 많이 쓰는 작업이었다. 너무 질면 달라붙어 반죽 밀기도 힘들거니와 면발이 쫄깃하지 못했고 너무 빡빡해도 치대기 힘들었기에 적절한  농도에 맞춰 반죽 하기엔 고급 기술이 필요했다. 도와준답시고 반죽을 해봐서 알았고 결혼 후에도 손수 집에서 음식을  먹자 주의였기에 아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말씀하시곤 했다.

"세월이 어느 땐데 청승맞게 그걸 반죽하고 있니? 사 먹어라, 고생하지 말고. 나중에 아파."


 자식 커가는 것을 보고  입에 들어가는 양을 보며 힘든  모르고 하신 일들이었지만 결국 엄마는 아프셨던 것이다. 힘들었던 것이다.


지금 내  나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어깨며 팔, 손목이 아파 병원을 자주 다니셨다. 팔을 못 들어 올릴 때도 있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이 많았다. 파스도 붙이다붙이다 차도가 없으면 끝내 어깨 좀 주물러 달라고 하셨는데,

"아프다 하지 말고 빨리빨리 병원 가셔요"

그땐 그렇게 쏘아붙였다. 나도 바빠 죽겠는데, 내 살길이 바쁜데... 시선과 관심이 온통 나에게 쏠려 있을 때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개똥철학을 씹어먹던 때였으니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잊고, 잃고 사는 것이 너무 많았는데 하물며 모르고 살았으니 철이 들 든 셈이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못된 말이 얼마나 가슴에 박히셨을까?


   전부터  역시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니 그제야  고통을 알게 되었다. 석회화건염, 오십견...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울게 만드는 증상이었다. 옷도  갈아입을 만큼의 통증.  손으로 겨우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가던 길에 엄마를 생각하며 엉엉 울었다. ‘이렇게 아픈 거였어... 팔을 고물상에라도 가서 바꿔오고 싶은 심정...'

아파서 울었고,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고, 그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아파서 울었다.


   일찍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픈  때문에 힘을 제대로   없으니 모든 일이 어설퍼서 대충대충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밀가루 반죽이었다. 손으로 대충 치대고 적당 시간 숙성을 시킨다 해도 오랜 시간 치대는 방법 말고  좋은 방법은 없었는데, 놀이  해서 반죽을 아들에게 밟으라고 시킨 것이다. 어쩌다  TV 프로그램에서 '달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수타가 아닌 '족타 짜장면' 시연하고 있는 것을  것이었는데, 아들은 신기해하며 신나 했다.

"이렇게? 이렇게 밟으면 돼요? 와~재밌다, 뛰어도 되나?"

발바닥으로 밟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을 잔뜩 세워 발가락 신공까지 펼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충 뭉친 반죽을 발로 밟으면 공기도 잘 빠지고 반죽도 쫄깃쫄깃! 별도의 숙성이 필요 없어 아주 좋다.

 이후, 우리 집에서는 밀가루 반죽이 필요한 모든 음식에는 '족타' 자가 붙었다. 족타 수제비, 족타 칼국수, 족타 만두피, 족타 피자, 족타 ... 심하게 치댈 필요가 없는 것도 반죽은 밟혀야 했고 '밟아야 제맛'이라는 신념 같은 믿음이 생겼다.


'엄마, 내가 좀 빨리 이 방법을 알았다면 밀가루 반죽쯤 척척 밟았을 테고 엄마의 어깨와 팔과 손목은 좀 들 아프셨으려나?'


국물 끓이면서 미리 수제비를 떼어 놓으면 퐁당퐁당 한꺼번에 넣을 수 있어 골고루 익게 된다. 요리는 시스템이다.

 세월이 지나 바뀌게  것은 '발가락 신공' 펼치던 아들이 커버렸다는 것이고 반죽을 밟고 있는 사람은 남편이라는 사실이다. 발가락 신공 같은 것은 물론 없다. 재미없다. 이왕이면 보다 창의적으로(?) 밟으면 좋으련만.


김치 3종세트와 족타 수제비로 주말 점심 한끼 뚝딱!

오늘의 ‘족타 수제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특이점이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육수가 고기 국물이다. 양지  우려낸 국물. 이번 추석에 좋은 고깃거리가 선물로 들어와서 그중 양지 덩어리만 곰국에 얹어 먹도록  고왔는데, 냄새가 구수하다며 수제비를 만들어 먹게  것이다. 아무리 봐도 수제비 같지 않다는  함정이다. 맛도 마찬가지다. 곰국인지 수제비인지 국적 불명의 음식이  것이다.


청양고추까지 썰어넣은 것이 남편 수제비(좌), 아이들 먹을 수제비(우)

이것은 곰국인가? 수제비인가?

멸치 육수로 끓인 멸치수제비,  김치를 넣은 얼큰 수제비가 아니어서인지 아이들도 먹으며 어색하기는 했나 보다. 딸이 한마디 한다.

“씹히는 건 수제비인데 맛은 곰국인 줄!”


 나는 나대로 멸치육수를 우려내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어느 인기 식당은 수제비인지, 칼국수인지 주문을 하면 홀에서 주방에 알리는 신호가 ‘ ‘제비던데, 따라  보았다. 우리 집도 오늘의 주문은,

“칼 하나, 제비 셋”


멸치 육수의 족타 칼국수

족타 칼국수를 혼자 먹으며 생각는다.

먹는 음식을 감히 발로 밟는다 생각도 못하셨을 것이다, 엄마는. 귀한 아이들 입으로 들어갈 음식인데, 발을 사용하다니 부정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화가 나고 고달플  밀가루 반죽이라도 팍팍 밟고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딸에게 하지 말고  먹으라 하신 것처럼  들이지 않고  척척 내가며 얼마나 사주고 싶으셨을까, 엄마는.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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