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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r 22. 2021

파~안대소, 파김치

파김치가 된 이들끼리 전하는 위로

<파김치의 위로>


사흘 전,

봄기운 가득 담은 파 두 단 들여

봉두난발 파 머리 뚜욱 자르고

폐포파립 마른 잎 벗겨내고

고춧가루에 젓국 비비고 물들여

봄 입맛 깨울 파김치를 담갔다.


사흘 전,

얼결에 뽑힌 것 탓할 새 없이

짜디 짠 젓국물에 담겨 버렸네.

모아진 땅과 하늘 기운 부둥켜안고

햇살 바람 눈 비 몽롱히 떠올렸으나

울컥울컥 눈물 쏟고 파김치가 되었네.


어느 늦은 밤,

아비와 아들 파김치 되어 돌아와

파김치 사이에 두고

라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아비가 파~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너도 나처럼 축 늘어졌구나!

아들도 파~하고 따라 웃었다

- 아빠도 파김치가 다 되었네요!


그 말 가만 듣던 파김치,

야식 먹는 아들과 아비에게

아낌없이 제 몸 내어주며 허허 웃는다.

- 파김치 되니 알겠다,

파김치 되어도 집으로 향하는 마음을.


파김치 된 아비와 아들과 파김치,

서로 위로하며 파안대소하던 밤.




  사흘 전, 상자에 실려온 쪽파가 마트 매대에 풀어헤쳐졌다.

쪽파 살 생각은 전혀 않고 장을 보던 중이었는데 쏟아내어져 진열되고 있는 파단이 유난히 시퍼렇고 싱싱해 보였다. 매콤하고 알싸한 파향까지 코를 자극해 대니 순간 회가 동했지 뭔가.

가격마저 많이 내렸다. 1단에 2500원.

구정 명절 전후의 파값을 생각하면 거의 반값이다. 머릿속으로 젓갈 내음 큼큼한 파김치가 지나갔고 자글자글 파전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콩깍지가 연애할 때만 씌는 건 아니구나' 생각하며 쪽파에 콩깍지가 씌어 파 2단을 사들고 들어왔다.


파릇한 쪽파는 혈압안전을 돕는 삼총사-알라신,칼슘,비타민c-가 풍부하다. 봄이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쪽파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땅에 박혀 그 기운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파뿌리에 그대로 박혀있는 흙에서는 단내가 훅 끼쳐왔고 길게 뻗은 파대는 자라면서 한 번도 꺾이어 보지 못한 듯 꼿꼿이 쭉쭉 뻗어 있었다.

봄 햇볕에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팔을 뻗어 하늘을 향해 연신 팔을 흔들어댔을 것이다. 팔을 흔들어대는 어깨가 힘들어 축축 늘어질 무렵이면 봄바람이 조물조물 팔과 어깨를 주무르다 사라졌을 것이다.

 

  하늘과 봄볕과 바람과 땅의 기운을 골고루 받아 싱그럽다 못해 시퍼렇게 자라난 쪽파는 마침내 뽑혀 박스에 담겨 시장으로, 마트로, 우리 집 주방 위로... 노곤한 일상을 깨울 봄 선물이 되어 놓이었다.

3월, 요즘 수확되는 쪽파는 눈과 비를 맞고 꿀처럼 따스한 봄햇살을 머금고 자랐으므로 봄이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는데 알라신, 칼슘, 비타민C가 풍부해 혈압에도 좋다. 약이다.


찹쌀풀에 새우젓, 멸치액젓, 고추가루를 섞고 양파와 홍고추를 갈아 넣었다. 설탕과 마늘을 넣어 골고루 치대주면 쪽파김치 완성!


  넘실대던 쪽파 밭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다듬기 조차 아까울 정도로 싱싱한 쪽파를 한참이나 내려보다가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깔끔하게 손질해 놓고 보니 뽀얀 속살이 유난히 희다.

쪽파, 너도 야들야들 연한 피부를 가졌던 빛나던 유년시절이 있었겠구나. 고운 순백의 얼굴 위로 긴긴 세월이 덧입혀지며 여물어지고 성숙 해졌겠구나.

겨우내 언 땅 견디고 모진 눈바람 이겨냈건만 모진 풍상 견딘 보람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겠구나. 애틋하기도 하여라.

바람에 흔들리고 세파에 휘둘려도 하늘로 향하는 꿈을 꾸었을까? 꺾이고 뽑힐지언정 영원히 사는 법을 배웠을까? 번뇌는 별빛이었을까?

 

   

  쪽파김치는 담근 지 사흘이 지나 꺼내어졌다.

금방 버무린 생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우리 집은 파김치가 녹초가 될 때까지 익혀 먹는다. 맵고 아린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새콤하게 익은 파김치는 진정 제대로의 파김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탱탱했던 파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홀쭉해지고 축축 늘어졌다. 축축 늘어진 파김치를 갓 지은 밥 위에 혹은 라면에 척척 얹어 먹는 맛이란!!! 그야말로 둘이 먹다 둘 다 없어져도 모를 맛이다.


  피곤함이 몰리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업무 후, 자신의 공부와 직원의 공부를 도와주고 회사를 나온 남편이 학원 수업을 마친 아들을 태우고 늦은 시각,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이나 아비나 모두 눈이 휑하니 들어간 것이 영락없는 파김치라,

그 와중에도 의기투합하여 라면을 끓이고 파김치를 내어 식탁에 마주 앉았더랬다.


  “아비와 아들과 파김치가 모두 파김치가 되었네”

한마디에 모두가 “파~” 파안대소하였다.

서로를 쳐다보며 파안대소하였다.

같은 처지로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있기에 파김치가 되어도 집으로, 집으로 향하는 것이겠다.


  파김치를 가운데 두고 몸은 비록 녹초가 된 ‘파김치’ 일망정 마음은 ‘파안대소’ 할 수 있겠다.





*) 파안대소 破顔大笑 :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음.

*) 봉두난발 蓬頭亂髮 : 머리털이 쑥 대강이같이 헙수룩하게 마구 흐트러짐.

*) 폐포파립 敝袍破笠 : 해어진 옷과 부서진 갓이란 뜻으로, 초라한 차림새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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