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Nov 27. 2020

‘묵은 김치’가 담 넘어올 때

돼지고기 김치찜 & 홍합탕... 무릉도원이 옌가 하노라!

  “묵은 김치가 담을 넘어올 때가 됐는데...”

이 소리는... 김치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소리로, 부산 어느 지역 김여사 집에서 들려오는 ‘묵은 김치 기다리는 간절한 소리’였습니다... 고향의 소리...

  김장을 하기 전, 11월의 언저리가 되면 친정 엄마는 이웃집에서 가져다 줄 묵은 김치를 기다리셨다.

물론 김치 줄 사람이 모년 모월 모일에 주겠노라 정한 것은 아니지만 으레 이 맘 때면 묵은 김치가 우리 집으로 모이게 되는 ‘관습법’ 같은 불문율이 존재했다.


<묵은 김치, 담 넘는 시간적 배경>

; 김장하기 전, 즉 11월 즈음이면 김칫독은 필히 씻어 물기를 말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새 김치를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묵은 김치는 지져 먹거나 볶아 먹어야 하는데 남은 양이 많아 다 해 먹어질 것 같지 않으면 이웃에게 나눠주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

<묵은 김치, 담 넘는 인간적 배경>

; 먹성 좋은 식구들이 사는 우리 집은 김장 100포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김치가 떨어졌음을 우리도 알고 이웃도 알고 있다.

이런 불쌍한 처지를 눈치껏 인지하여 자발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이웃이 많아 정(情)이 통하는 사회였다.

<묵은 김치, 담 넘는 취향적 배경>

; 의외로 신김치 못 먹는 집이 많다.  따뜻한 날씨 탓에 김치가 시어지기 시작하면 신김치 좋아하는 집으로 하나 둘 신김치가 모아지는데, 그런 집의 대표주자가 우리 집이었다.

<묵은 김치, 담 넘는 경제적 배경>

; 시장 가격과의 관계성을 뺀 ‘수요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김치를 필요로 하는 자(수요자), 김치를 소유한 자(공급자) 간 무상 거래다.

묵은 김치를 긴급 공급받은 자는 ‘김치전’으로 보답함으로써 무상 공급자의 신의를 얻어 다음 해 묵은 김치를 선점한다.


  이런 이유로 동네 묵은 김치는 우리 집으로 모였고 전국 팔도의 김치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묵은 김치가 담을 넘는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김치가 발이 달려 월담을 업으로 하는 밤손님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예전에는 이웃집 간의 담이 낮았다. 시골이라면 집과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담은 더 낮다.

심지어 어릴 적 살던 회사 관사에는 담 중간에 쪽문이 있어서 대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드나들고 왕래를 했다.

그러니, “얘, 아무게야~”라고 불러 심부름시킬 꼬맹이가 없다면 엄마들도 굳이 돌아서 대문을 통해 옆집으로 물건을 전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셨다. 대신 담을 사이에 두고 안부를 물었고 먹을거리를 전했다. 부침개가, 김치가 담을 넘어 건네지는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겨운 장면에 ‘담을 넘는다’는 표현은 되내어 말해봐도 참 아름답다.

‘범 내려온다’*가 아니라 ‘김치가 담을 넘어온다’가 말이 되고도 남는 것이다.

멸치 넣고 볶아드시라 가져온 무김치(좌)와 배추김치 4쪽(우). 그리고 시골 감나무에서 따 온 대봉감 5개(2개는 먹음^^)

  나는 친정엄마처럼 ‘묵은 김치가 담을 넘어올 때가 되었는데...’라며 기다리지 않았는데 이웃집 동생이 묵은 김치를 가지고 왔다.

지난주에 시댁 가서 김장을 해 왔다고 한다. 요즘은  내 나이 또래도 집에서 김장을 하지 않으니 ‘가져온 김치를 넣을 때 묵은 김치를 정리하나 보다’ 생각한다.


  김장김치가 추석 무렵부터 떨어져 깍두기 열무김치 파김치 오이김치 등을 담가 대충 연명하고 있던 터라 묵은 김치가 담을 넘어온 일은 반가움을 넘어 차라리 감동이었다.

‘배추김치야, 너 본지 오래다! 반가워 어이할꼬!’


<묵은 김치, 담 넘어 온다>

묵은 김치 온다. 담 넘어온다.
옆 집에서 이 집으로
대한 김치 넘어온다.
삼단 같은 머리 풀어헤치고
주홍 깃발 휘날리며
촤르르르 바람에 나부끼며
배추김치 넘어온다.

알알한 매운 냄새 진동하고
콤콤한 젓갈 냄새 풍기면서
보무(步武)도 당당쿠나
호위 속 북소리도 요란쿠나
둥둥 두구두구 두두두두두...

깍두기 열무 오이김치 파김치
근근이 연명하며 납작 엎디었던 입맛이
화라라락 화라라락 열리며
어깨가 으쓱~ 두 팔이 들썩~
흥이 난다. 신명이 난다.

묵은 김치 넘어온다. 담을 넘어온다.

  묵은 김치로 해 먹을 것이 한두 가지더냐.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 돼지김치찜, 김칫국, 김치말이 국수, 김치 만두......

무엇을 해먹을지 내적 갈등이 심해지나 ‘묵은 김치 하면 돼지고기지’, 돼지고기 삼겹살 김치찜을 하기로 정했다. 돼지고기의 찬 성질과 매운 김치의 더운 성질이 만나 천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겨울철 대표음식이다.

찜을 먹고 나서는 김가루를 넣어 볶음밥을 해 먹으리라.


<돼지 삼겹살 김치찜>

•설탕, 간 마늘, 파, 물 1컵(종이컵), 들기름, 고춧가루, 후추 넣고 국물이 바특하게 졸여질 때까지 바글바글 끓이면 된다.

•김치가 열 일하기 때문에 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다.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사용하면 좋다.

  

  빛깔도 좋구나. 김치찜이여!

두부 하나에 삼겹살 한 조각 얹고 김치로 돌돌 말아 한 입 넣으면 비로소 삼합(三合)이다.

청양고추 넣은 칼칼한 홍합탕으로 마무리하면 완전 저 세상 텐션이 된다.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남명 조식 선생의 ‘두류산 양단수’)

  오랜만에 해먹은 김치찜이라 고기와 김치를 남김없이 먹어 치운 관계로 볶음밥은 다음 날, 새 마음으로 다시!

어쩜 이리도 잘 드시는지...

 “뱃속에 거지가 깡통을 차고 들어앉았냐?”

할머니가 옆에서 말씀하시는 양 생생한 기억에 웃음이 나왔다.


  묵은 김치가 담을 넘어온 보람을 톡톡히 느끼게 되는 두 끼 밥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다시금 집에 감금된 두 청춘들에게는 개인 쟁반에 담아 온라인 수업하는 방으로 각각 배달 완료!

많이들 드시게~.

이렇게 개인 쟁반에 담아 수업하는 방으로 각각 배달 완료!




*)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 수궁가의 한 장면을 묘사. 뭍으로 나온 자라가 ‘토’선생을 잘못 발음하여 ‘호’선생이라고 말하자 신이 난 호랑이가 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표현한 노래 제목.


이전 02화 파~안대소, 파김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