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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20. 2020

아버지의 이름으로, 시험을 본다고?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 이름을 걸고... 음
내가
시험을 보겠다,
이 말이지... 음
아.버.지...이.름...걸...


 힘겹게 옷을 벗어던지며 이불 위로 털썩 주저앉은 남자는 잠꼬대를 하듯 뜻 모를 얘기를 주절주절하다 이내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푸흡...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응징하겠다! 뭐 이런 얘긴 들어봤어도 이거, 뭐, 이런 해괴망측 한 말이... 아버지 이름은 뜬금없이 왜 들먹이냐고? 다소 비장함까지 느껴진다만 위아래 단추 잘못 뀐 것처럼 시험을 보다니... 앞 뒤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 뭐지?’

하, 수상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아’ 字만 들어도 울컥하는 남자가 있다.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리던 12월의 어느 새벽,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는 남자.

춥고 어두운  밤을 나란히 누워 아비가 해줄  있는 마지막 말인 , 네가 계획했던 대로 미국 유학을 가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보라 말씀하셨는데, 원망이 너무 깊어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차마 하지 못해 버리고 잊고 살아왔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마지막 말씀도 지키지 못했고 가시는  가지 마시라 잡지도 않은 것에 가끔 술이라도   거나하게 하는 날이면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남자.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곤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렇게 후회가 가슴까지 차오를지 몰랐다고 했다.

그날 내리던 눈송이 하나하나가
그리움이 되어 얼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아비의 마음을 알겠노라.

아이가 달리다 넘어지면,

‘조심해야지,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면 이렇게 한 번 달려보렴. 아빠도 그랬단다.’

흙을 후~후~털어주듯이

“아버지, 사실은, 저 진짜 힘들거든요”

얘기하면

“아들아, 나도 그랬단다. 힘들 때가 왜 없겠니. 그럴 때 아빠는 이렇게 마음을 달래곤 했었단다. 힘내렴”

그렇게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해줄 아버지란 존재가 없다는 것.

남자는 마음이 항상 공허하다 했다.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 없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새벽, 미명의 찬 공기 한가운데로 초연히 걸어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옆에 있던 여자도 남자의 아픔을 알기에 함께 울어주었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緣)이 끊어지는 데는
구체적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랍니다.

 

 더구나 몇 겁의 시간 동안 맺어지고 엮이었을 아버지와 아들인데 고작 몇 가지 이유로 설명되는 건 아닐 겁니다.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인연의 가닥을 풀고 엮는 결정의 순간에 더 큰 뜻이 작용했을 뿐이랍니다.

그건 누구도 어찌할 수 없고 피해 갈 수 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운명입니다.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건 회복의 순간은 올터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재회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답니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는 마세요.

마음과 마음이 서로 닿고,

마음이 마음을 위로하고

마음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그러니 오늘은 웃어요.



 

... 1998년, 아버지와 헤어지던 그 겨울을 지나고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20여 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가끔 남자는 <국제시장>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또 보며 울고 또 울 뿐이었죠.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더군요. 시간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준엄한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남자는 아버지의 실종신고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가게 팔아라. 못 오시겠지, 이제 나이가 많으셔서…”

국제시장 덕수의 멘트처럼,

그나마도 간간히 꿈에 보이시더니
요즘은 영 보이지가 않아...
내가 매듭을 지어야 하나 봐.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최종 실종자로 처리되었고 모든 권리와 모든 재산은 포기했습니다.


 이제, 남자는 자신을 옭아맸던 굴레를 내려놓은 듯 가벼워 보입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저만치 밝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지가 바로 저기임’을 인지하는 것만큼 희망적입니다.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 같아.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이제는 뭔가 하고 싶어


  남자는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 딸을 응원하듯 혹은 자식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말이지요.

남자의 아버지도 함께 앉아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셨답니다. 새로 시행된 공인중개사 1회 시험도 합격하셨고 직업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도 하시고 책도 출간하셨답니다. 항상 회사 일과 관련해 연구하고 자기 계발을 쉬지 않으셨던 분이었답니다.

자신도 이제 그리 살고 싶다고, 그리 할 거라고 다짐합니다.



 삶은 매일매일 우리에게 좌절과 선택을 안겨 줍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을 때가 많지요.

그러나 좌절은 이겨내고 선택은 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더 가야 할지 여기서 멈출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가더라도 어떻게 가야 할지도 중요합니다.

헤치고 나아가기로,

나아가더라도 용맹스럽게 맞서기로

나아가더라고 꾸준하기로

다짐했다는 이 남자, 참 멋있습니다.

제 남편입니다.




* ) 배경사진 : 방파제에서. 김경완.

**) 6월 20일, 오늘 남편이 보는 시험은 가맹거래사시험으로 1차 합격률이 30% 전후인 까다로운 시험입니다. 한숨도 못자고 나갔습니다^^ 합격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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