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May 07. 2021

김순복이

<people to people> 길 위 인연은 바람처럼 모이고 흩어진다

<1>

그가 죽었다.

길 위에 놓인 영정사진에 ‘누가 죽었구나’ 생각하다 정지화면처럼 발이 멈췄다.

사진 속 사내는 분명 아는 이었고 어제까지 술냄새로 존재를 알리고 다녔던 동네 바보 아저씨였다.

죽어서야 이름 전부를 알았다.

김순복. 바오로.

순할 순(順) 자에 복 복(福) 자를 썼을 것이다.

천주교 신자였구나. 세례명이 붙었다.

그가 지냈던 컨테이너 앞 탁자 위 향불이

곡(哭)을 하듯 연기를 날리며 자리를 지켰다.

문상객이 있을 리 있나, 바람이 문상객이지.

이름 자에 붙은 복이 죽어서 받게 되는 복이었나 보다. 죽을 날은 잘 받았구나,

쨍하고 화창한 5월의 어느 날이었으니...


<2>

그는 해병대 전우회 사무실인 컨테이너에 살았다.

1보루에 2,000원 하는, 동네슈퍼에 극빈자를 위해 한 달에 딱 2보루만 들어온다는 솔 담배는 순복이가 누리는 최대의 특혜였고 장수막걸리는 가장 친한 벗이었다.

아침나절엔 그래도 비질을 하는 탓에 동네가 깨끗했었다. 하루 중 유일한 노동이자 운동이었다.

낮에는 컨테이너 옆 낡은 소파에 늘어져 낮잠을 잤고 밤에는 달빛에 목을 늘려 우워어어 우는 늑대처럼 어엉흐어엉 목놓아 울었다.

사연을 들어볼 만한 말은 없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사정이야 단발적 괴성으로 짐작이 충분했다.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버려졌는지 제 발로 도망 나왔는지,

어렸을 때부터인지 커서 혼자가 되었는지,

전에는 어디서 무얼 했고 이곳에선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는지, 말하는 이도, 알고 있는 사람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타인의 삶을 돌아볼 여유 없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속에서, 화살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순복이만 세월 속을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3>

가끔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찍자를 부려 고통을 갈망했다. 때려달라고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때려 보라고, 더 때려 보시지”

흠씬 두들겨 맞고 눈퉁이 밤탱이 된 채 그는 웃고 있었다. 고통 속에 슬픔을 밀어 넣는 웃음이었다.

웃음으로 슬픔은 집행유예를 받고 자유를 찾았다.

그가 찾은 자유는 자유로웠으나 고독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와 아이 앞에서는 눈을 내리 깔고 얌전해졌다. 헤벌쭉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살갑게 보살피던 엄마가, 누이가, 아내가 있었을까.

자신의 눈처럼 지키던 피붙이가 있었을까.

그래서 동네 아줌마들은 순복이를 쉽게 불러

이것저것 시키고는 밥상을 안겼다.

동네 아이들도 순복아 순복아 강아지 부르듯 했지만 놀려먹지는 않았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이유도 없으려니와 세상 때가 묻지 않은 까닭이었다


<4>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는 삶이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혼자 우는 삶이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하루가 다를 리 없는 인생이었다.

성취할 무엇도, 바라는 것도 없는 무념의 삶에도

그리운 이름들은 있었을까. 그래서,

술에 취하면 고독과 광기는 늘어나는 것이어서

짐승처럼 울어대던 천둥치던 어느 밤에는

차라리 평화로운 죽음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러나,

술 달라고 소리치던 어느 날에 나는,

슈퍼 주인에게 막걸리 두 통과 두부 한 모 값을 치러주었는데 삼촌뻘 되는 순복이는,

그 후로 나만 보면 ‘이쁜 누나 간다’ 했다.

이쁜 누나가 마지막 가는 길에 장수막걸리 한 잔 올려드리니 가시는 길 벗이나 삼으시라고...

나도 그날만은 막걸리를 마시며 실컷 울었는데

밤새 곁을 지키는 사람 아무도 없이

달빛만 시체처럼 길게 누워 동행을 했더란다.


<5>

그렇게, 순복이의 하루처럼 삼 일이 지나갔고

날은 밝았다.

탁자는 이미 치워져 없었다. 순복이가 정말 갔구나.

주인 잃은 컨테이너는 입을 열고 오월의 볕에 슬픔을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커다란 드럼통에 순복이의 때 절은 옷가지와 침낭이 태워졌다. 저승으로 가져간들 쓸모 있는 것이 있을까마는 동네 사람들은 동티 난 자리를 서둘러 덮어 기억을 지우려는 모양이었다.

거리의 비질은 누가 하려나?

아이들은 순복이 대신 만만히 부를 이름 찾았을까?

솔 담배는 이제 누구 차지가 되려나?

슈퍼집 막걸리는 들여오는 수를 줄여야 할 것이고,

밤마다 으엉허어엉 목놓아 우는 소리는 이제,

듣지 않아도 될 일이니

동네 개들은 네 다리 쭉 뻗고 곤한 잠을 자겠다.


<6>

이팝나무 꽃이 쌀밥처럼 끓어오르던 다음 날,

술에 절어 있던 아침 공기는 모처럼 말갰다.

늘어졌던 게으른 오후는 정신을 차린 모양이고

늑대가 울던 밤에는 고요마저 내려앉았다.

하루 종일 동네는 조용했고 심심했다.


<7>

김순복이가 정말 죽었나 보다.







  어릴 적 동네에, 국민학교 올라가는 길에는 아침부터 몽롱한 눈을 쉽게 뜨지 못하고 거리를 비척이며 걷는 동네 아저씨가 한 사람은 있었다. 바보 혹은 술주정뱅이, 싸움꾼, 난봉꾼 등으로 불리던 천덕꾸러기. 그들은 대부분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누구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혼자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간혹 그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동네의 허드렛일을 시키고 술이나 밥을 내어주기도 했다.


  이직을 결심하고 서울로 올라와 구한 전셋집 건너편에도 한 사람의 천덕꾸러기가 살았다. 컨테이너가 그의 집이었다. 말은 어눌했고 옷은 허름했으며 항상 술에 절어 있었다.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늑대처럼 오오오 올~ 울기도 했다. 헤벌죽 웃는 모습은 빠져버린 이처럼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냥 동네 바보 형 혹은 아저씨였다. 나이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방치된 모습의 사내, 어느 날, 간밤에 그가 소리도 없이 죽었다고 했다.


  그에게도 필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는 길 위에서 모였다 흩어지는 바람처럼 어느 날 이 세상에 왔다가 어느 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는 한동안 슬펐고 가끔 생각을 한다. 그 역시 분명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