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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21. 2021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생각하기 싫은 문제다. 인과관계에 관한 딜레마로, 어느 것이 먼저인지 논리적으로 밝혀도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난제다. 답을 낼 논리가 부족하니 결론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의 답이 다른 것은 상대방이 닭이 먼저라고 하면 나는 달걀이 먼저라 하고, 상대방이 달걀이 먼저라고 하면 나는 닭이 먼저라는 논리를 펴기 때문이다.


  일단 우기고 보기, 대들고 보기, 반대하고 보기 등 난폭한 대화자이기도 하지만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옥신각신 얘기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에 버금가는 나만의 대화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가 편해? 말하기가 쉬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글 참 못쓴다, 말 엄청 못한다는 소리는 별로 들은 적은 없는데도 그렇다. 그러나 굳이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글쓰기가 좀 더 편하다 정도의 말은 할 수 있겠다. 억지로 억지로 하는 말이다.

글은 쓰고 난 후에, 오래 들여다 보고 자세히 살펴보면서 틀린 곳과 잘못된 곳을 고치고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상대방 얼굴을 보지 않고 혼자 쓸 수 있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그러나 글은 쓰는 게 전부가 아니다. 누구도 완벽한 글을 쓸 수 없기에 비록 ‘끝’ 냈어도 끝이 아닌 것이다. 글을 쓴 후, 퇴고가 고역인지라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초고를 ‘토고’(토가 나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는 뜻) 라 하지 않았던가?


   글이나 말이나 교정이 답이다.

고칠 시간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따져본다면 말 역시 고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함부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연설과 강의를 위한 연설문과 강의서는 말할 것을  글로 쓰는 것이기에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라 해도 무방하니 생각을 정리하고 쓰고 읽어보면서 다듬는 과정은 글의 퇴고와 같다 하겠다. 오히려 말은,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몸짓, 표정 등의 도움(반응)을 받아 적절하게 수정하며 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말과 글 중에서 무엇이 편한지, 무엇이 쉬운지 결정하기는 힘들다. 결국 말이 글이고 글이 말이라, 말을 잘하려면 혹은 글을 잘 쓰려면 많이 말해 보고 많이 써보고 그리고 고치는 게 답인 것이다.


조정래 작가는 거의 모든 문장을 20번 이상 고친다고 하였고,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설령 ‘이건 완벽하게 잘됐어. 고칠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책상 앞에 앉아 아무튼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됐다’라는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 (157~158쪽)라고 썼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쓰면서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두고 여러 번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 혹은 말하고 글 쓰는 데 많은 시간 심혈을 기울여 고치고 덧붙여 논리를 세우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와의 인터뷰 시간이 잡혔다.

1995년 6월,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시장 후보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시점이라 인터뷰 전, 미리 질문지를 보냈었고 참모진으로부터 보도자료를 받아놓은 상태여서 이런 경우 인터뷰 시간은 30분 정도. 단독 인터뷰 꼭지가 아니라 그랬다. 사진 촬영과 핵심 질문 몇 개를 묻는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연락받은 시간은 1시간이었고 다음 일정 전 시간 여유가 있다는 귀띔도 있었다. 이 정도면 다큐 하나 찍고, 사적인 질문도 가능한 시간이라 인생 드라마도 찍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질문 내용, 김기자 님이 직접 뽑으신 겁니까?”

어라? 첫마디부터 취조가 시작됐다.

취재도 내가 하고 취조도 내가 할 일인데...

정치인과의 인터뷰는 주도권 싸움이라 했는데...

인터뷰이의 말은 최대한 끌어내 많이 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설득당하거나 휘둘리면 안 되는 것이기에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중요하고 예민한 시기인만큼 며칠 고민해 뽑은 질문입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시지요?”

질문에 질문으로 받는 것은, 나 역시 전투태세를 잡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질문이 날카롭고 좋아서 얘기가 좀 되겠다 싶어서...”

그는 허허 정확히 두 음절로 끊어 웃었고,

 “그럼, 해보십시다.”

전투 자세로 돌입했다.


   그의 말에는 절도가 있었다.

정확히 알아듣도록 톤과 속도를 조절했다. 중간중간 말은 음... 하며 끊어지기도 하고 다소 느렸지만 말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는 없었다. 표정은 신중하고 진지했기에 보다 적절하고 명확한 표현과 말을 찾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입가엔 약간의 미소가 머물기도 했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생각과 신념으로 가득 찬 말을 할 때는 말도 빨라졌고 거침이 없었다. 폭풍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의 말 기세에 납작 눌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김기자는 받아 적지 않습니까?"

인터뷰이의 질문이 날아왔다.

 ‘또 주도권을 뺏기는 건가? 아, 이 양반 엄청 물어보는 거 좋아하시네, 대화가 체질인걸...’

생각하며 겉으로는 여유 있는 웃음을 장착한 후, 이렇게 얘기했다.

 "아... 후보님 저는 생각보다 머리가 아주 좋은 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적고 있고요. 그리고 저에게는 녹음기가 있습니다만(‘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는 느낌으로)... 질문에 대한 답도 간단히 받아놓은 상태이고요."

 "허, 참... 허허허”

그는 이번에는 3음절로 끊어 웃으며 난데없이 국민 MC, 허참 씨를 소환했다.


   그는 매우 까다로운 인터뷰이였다. 특이하게도 '말로 글을 쓴다'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구술의 달인 정도쯤 되었을 것이다. 생각하여 얼개를 만들고 논리로 무장하여 말을 하고 글을 쓰되 다시 고치고 쓰기를 반복하고 종내는 가슴으로 쓰고 마음으로 이해가 되어야 자신 있게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논리는 항상 '가지치기 기법'에 의해 정리가 되었다.

1, 1-1, 1-1-1... 의 방식. 사고의 흐름이 옆으로 셀 염려가 없는 탄탄한 구조에 근거해 말을 하고 글을 썼다. 또한 말은 둘러가는 법이 없는 직설화법을 사용하였다. 처음부터 한 방의 훅을 날리고 시작하는 저돌적인 공격수였다.

밑도 끝도 없이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2006년 4월 25일, 한일 특별담화)로 시작하는 향후 연설이 그것을 뒷밤침한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는 대통령감이 되느냐? 는 비난에,

“나는 문재인이를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라고 말해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설문구로, 두 분을 모두 만나 찐한 우정을 나누게 된 여담을 들어 익히 알고 있기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하여,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빗나가게 말을 할 때면 “~ 이렇게 생각해 보입시다."로 고쳐 부연 설명을 했다.


   그때도 그는 지방선거의 최대 과제를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고 동서 통합과 화해를 이루려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었다. 그것을 나중 대통령이 되어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국정 의제, 즉 아젠더 Agenda로 삼았고 “정의가 승리하고 기회주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만들겠다"(2002년 3.1절 연설)는 다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하나의 생각이 단초가 된 신념은 세월의 부침 속에서 논리를 더하고 사회의 변화를 읽으며 수많은 수정과 교정을 통해 커다란 역사적 사명이 담긴 말과 글로 탄생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십몇 년 전 인터뷰를 했던 그는 바로 우리나라 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인터뷰 생각을 하거나 연설 장면을 되짚어 보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서곤 한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한 선망이 아니다.

말을 하고 연설을 하기 전, 연설문을 작성하고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수정하고 끈질기게 고민을 거듭하는 진지함과 일관성을 경외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계의 무법자로, 연설문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칠 때가 많았는데, 그것은 평소에 생각과 글과 말을 좀 갖고 놀았기(?) 때문이라 여겼다.

웬만한 내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글을 쓰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에 비해 나는 어떠한가? 글과 말은 하나도 쉬운 것이 없는데 뱉어지고 배설된 말과 글들은 신중하게 쓰인 것인가? 토할 때까지 고치고 또 숙고하였는가?

글과 말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도 20번, 30번 들여다 보고 자세히 보며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작업을 철저히 하고 있는가?


   글쓰기와 말하기를 흔히 ‘집짓기’에 비교하기도 한다. 설계도를 토대로 균형을 잡으며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집 짓기와 닮아서이다. 집은 견고히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한 번 짓고 마는 철옹성이 아니라 다 지은 순간부터 이 곳 저곳을 점검하고 살피고 손보아야 한다.


   나는 글을 발행한 후에도 꾸준히 고친다.

다음 글을 발행하기 전까지 현재 발행된 글은 ‘희생양’이 된다. 가만 놔두지 않고 읽고 또 고친다. 오래전 발행한 글에 ‘라이킷’이 뜨기라도 할라치면 그때는 그 글을 손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좋아라 한다. 그 글을 다시 읽고 어색한 부분을 고치는가 하면 생각을 덧붙이기도 한다. 말을 하듯 읽어보면 어색한 곳은 항상 보인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사는 집을 찬찬히 둘러보면 계속 손봐야 할 곳이 눈에 띄는 것과 같다.


   내 글에 대한 애정과 책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나는, 글과 말을 너무 쉽게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일이다. 퇴고 없이 글과 말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말과 글을 바로잡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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