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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pr 07. 2021

쑥국을 끓이며

쑥의 역사 | 진짜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 할머니와 쑥


 "쌕뚝아, 할미 쑥캐러 갈란다, 갈터냐?"

할머니는 벌써 한 손에 소쿠리를 들고 뒷짐을 진 채 문 밖을 나서는 중이셨다.

 "할미, 나랑 같이 가야지, 나도 갈텨"

가위로 쌕뚝쌕뚝 종이를 오리고 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쪼르르 할머니 꽁무니를 따라나섰다.

할머니는 가끔 나를 쌕뚝이로 불렀다.

 “희한도 허다, 고놈 가위로 별걸 다 쌕뚝거려 싸. 꽃도 맹글고 새도 맹글고, 허여, 참”


  따뜻한 봄햇살에 노곤해지는 한낮이면 할머니는 슬그머니 일어나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다니셨다. 혼자 다니기 심심하시니 집 식구들에게 동무를 청하였으나 따라나서는 것은 항상 나뿐이었다.

나는 할미가 좋았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게 좋았다.


 "할미, 이게 뭐야? 이건 또 뭐고?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재잘재잘 참새처럼 할머니 옆에 착 붙어 앉아 쫑알쫑알 요것조것 물었었다.

 "요건 냉이여, 접대(저번에) 캐서 맛나게 무쳐 먹었잖어, 벌써 꽃이 피었구먼. 눈에 뵈지도 않는 꽃이 자잘한 것이(작은 것이) 꼭 널 닮았다야. 요건 민들레구, 요건 씀바귀, 요건 달래여, 요건 쑥인데, 오늘은 요눔을 뜯을거여, 알았쟈? 너는 칼이 위험하니께 손으로 요렇게 뜯으며 댕겨. 확 잡아채면 안 되고..."

할머니께 요건 뭐여? 물으면 풀이름 나무 이름을 막힘이 없이 척척 알려주셨다. 만물박사, 똑똑 박사가 따로 없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가 들려서는 저건 또 뭐고, 저건 또 뭐여? 물을라 치면,

 “아이고, 정신 사나운 거, 뜯으라는 쑥은 안 뜯고... 네 입은 참 피곤도 하것다, 주인 잘못 만나 쉴 틈이 없으니께...”하시며 웃으셨다.

할머니가 웃으니까 나도 깔깔 따라 웃었다.


  쑥은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무리 지어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할머니가 쑥을 캐는 동안 나는 꽁지에 불붙은 쥐새끼 마냥 요리조리 뛰어다녔고 발에 밟힌 자리에서는 짙은 쑥 냄새가 아릿했다.

그러나 밟히어도 쑥은 이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쑥을 캐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들꽃을 꺾고 다니는 게 더 재미있었다. 냉이꽃 민들레꽃은 물론 뒷모습이 변발한 오랑캐를 닮았다 해서 오랑캐꽃으로도 불리던  제비꽃, 연보랏빛 종달새가 군무하듯 피어 있는 현호색 등... 을 꺾다 보면 이내 손이 모자랄 정도로 들꽃은 다발로 쥐어졌다.

 "아이고, 어지럽게 돌아 댕기기도 헌다. 그게 다 뭐여?"

 "오늘 저녁 반찬, 언니랑 옥이랑 저녁 맛있게 만들어줄게, 이건 떡을 만들 거고 이건 국을 끓일 거야"

 “온냐 온냐, 할미는 쑥 캔 걸로 맛있는 된장국 끓여주마” 하시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쑥이 얼메나 좋으냐 허믄, 옛날에 말이여...
얼굴색이 생강처럼 노랗고 눈은 십리도 더 되게 들어간 비쩍 마른 사람이 있었구나. 피죽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어 허깨비가 다 된 그 사람은 심한 황달에 걸린 거였는데 이미 의원도 고칠 수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터였니라.
먹고 죽을 것도 없었던 남자는 살 궁리도 않고 그저 논두렁에,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풀들을 뜯어먹으며 초근목피 연명을 했더랬는데, 아 글쎄 한 달을 살고 또 몇 달을 너끈히 살아냈더란다.
어느 날, 그 의원이 남자를 보고 깜짝 놀라 도대체 뭘 먹었길래 황달이 없어진 거냐고 했지.
그게 바로, 요 어린 쑥이었구나!
그 의원은 중국의 화타라는 작자였고...


  쑥은 어린것을 식용하고 성숙하면 약용한다는 것과 크게 자란 쑥은 뜯어말려 뜸으로 혹은 입욕제로 사용하고 여름내 불을 피워 모기와 파리를 쫓는데도 두루 쓰이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듣고 알았다.

한 여름밤, 매캐하게 사방천지에 난무하며 밤공기를 잡아먹던 연기는 쑥으로 만든 모깃불이었던 것이다.


  쑥을 생각하면, 그 끝에는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와 들판의 풍경이 놓이어 있다.


캠핑을 가도 쑥사랑은 한결 같아서 아이들과 주변을 돌며 쑥 캐기에 진심을 다했다. 노동 착취였을까?^^


# 나와 쑥 : 쑥떡 잔치를 벌여보자~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온 다음 날부터 나는 신이 나 있었다. 계절은 3월 말에서 4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베란다 창을 열면 봄의 공기가 달큼했고 시선이 머무는 넓은 들판에는 쑥과 냉이와 들꽃이 지천이었다. 등산길에는 진달래가, 길가에는 벚꽃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망울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무슨 용기가 그리도 불쑥 솟았는지 의기충천, 비닐과 장갑 과도를 챙겨 쑥을 뜯으러 나섰다.

솜털도 채 벗겨지지 않은 애기 쑥들이 길가에, 나대지에, 들판에, 산 초입에 쑥대밭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식재료 보물창고로다.’

나는 절로 감탄하며 정신없이 쑥과 냉이를 잔뜩 뜯어와 냉이무침과 쑥국을 끓였다. 할머니가 인이 박히도록 얘기하셨던 살이 되고 약이 되는 쑥이 아니던가.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쑥 뜯는 일은 계속되었다. 머리에 꽃만 안 꽂았지 이건 뭐,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었다.


  뜯어 온 쑥들은 데쳐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어느 날, 떡집으로 가지고 가 1말 쑥절편을 만들어 왔다. 동네 떡잔치가 펼쳐졌다. 앞집 아랫집 윗집 새로 알게 된 이웃, 유치원 엄마들에게 떡을 돌렸다. 쑥절편은 꽤나 인기가 있었고 도시에서만 살았던 젊은 엄마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듬해부터는 동네 ‘쑥 캐는 부대’가 결성되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모자와 면장갑으로 완전무장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쑥을 캐고 놀이터에서 다듬고 우리 집에서 데쳐 놓았다 떡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1말이 2말이 되었고 나눠 먹는 사람들도 늘었다. 어르신들께는 예쁘게 포장을 해 나눠 드렸다.


  몇 해를 계속했었던 쑥떡 잔치였다.

쑥을 생각하면 또한, 함께 뜯고 나누어 먹던 쑥떡의 향이 가붓이 스며들어 있다.


쑥절편을 만들어 동네잔치를 벌였다. 어르신들께는 예쁘게 포장해 나눠 드렸다. 쑥을 많이 넣어 절편 색깔이 진하고 곱다.


#  쑥국을 끓이며...

 

  '쑥국 세 번 끓여 먹다 보면 봄이 간다'는 말을 한다.

거창하게 전해 내려오는 말도 아닌, 우리 집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쑥국을 세 번도 끓여 먹을 새 없이 봄이 금방 지나간다는 뜻이 우선이겠지만 이제는 쑥이 구황의 의미나 몸을 보하는 약용으로 사용되는 일이 없으니 애써 찾아 끓여 먹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한 때는 아무 데나 자라고 퍼지며 밟아도 다시 꿋꿋이 일어나는 질긴 생명력으로 농투성이 무지렁이의 생활 모습에 빗대어졌었다. 민중 봉기의 상징처럼 여겨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불굴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은 구제되었고 살 길은 병원에서 찾았으며 봉기의 횃불은 휘몰아치다 꺼지었으니 들풀의 생명력은 오히려 난감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산책길에 희뿌연 황사를 뒤집어쓴 쑥 무리를 보면 황성 옛터에 온 것 같은 황망함을 느낀다.  

내가 언제 쑥을 뜯어 국을 끓이고 떡을 해서 나눠 먹었나 싶다. 쑥사랑이 지극했던 나에게 조차 애물단지로 전락한 쑥은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옆으로 퍼지고 위로 솟으며 쑥쑥 자란다. 쑥의 기세는 여전하다.

오죽하면 밭에서 일하다가도 쑥을 만나면 여지없이 삽으로, 호미로 퍼 갈아엎을까.

언제 어디서든 바람만 불면 수정할 수 있고 뿌리는 뿌리대로 옆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인데, 지하 지상군 연합작전을 펼치고 나오는데 당할 자가 있을까.


  들풀은 들풀이고, 요즘은 쑥국이 먹고 싶으면 마트에서 섬 쑥을 사 먹는다. 해풍 맞고 자라 깨끗하다고는 하나 어쨌든 길러진 것이다. 들풀이 작물이 되었다. 심지어 하우스에서 재배된 것들도 많아 봄이 아닌 계절에도 사 먹을 수 있다.


   안심하고 끓여 먹기는 하나 들판의 풍경이 사라지고 그 속에 스며있는 이야기와 사람 소리가 나지 않는 쑥국은 끓여도 맹숭맹숭 신이 나지 않는다. 향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

할머니가 다시 살아오시지 않는 한,

깨끗한 들판의 쑥을 되돌려오지 않는 한,

진짜배기 쑥국은 끓여먹을 수 있을지, 쑥떡은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가짜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쑥국을 끓이며 옛날로의 회귀를 꿈꾼다.


잘 씻은 쑥에 찹쌀가루를 입혀 걸쭉하게 끓여내는 것이 포인트.




쑥의 역사


<1>

눈이 십리는 들어간, 얼굴색이 생강처럼 누런 사내를 살렸다지.

허깨비 같은 아이들이 배고파 엄마를 부를 때마다, 너는 주저 없이 몸을 녹여 주린 배를 푸근히 채워주었고.

감사와 위로도 없이... 가난을 건너가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2>

동네 아이들이 마당에서 조물조물 쑥개떡을 하고 반찬을 짓는 동안,

눈빛 형형한 삼촌은 주머니에 손아귀에 짓이긴 쑥 뭉치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더라.

거기가 사람 살리는 곳도 아닌데,  밥을 주는 곳도 아닌데, 나라를 구한다 다짐만 바람에 실려왔더란다.


<3>

사람들은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을 모질다고 했다. 목숨 바친 투쟁은 절멸했고 한결같은 사랑은 팽개쳐졌고... 버리는 데 시간은 순간이면 충분했다.

쑥이 있던 자리에는 약이, 주사가, 스테이크가, 병원에, 모기약이 놓였고 가난은 구제된 지 오래.

문명의 이기 앞에 동심(童心) 결국 가출을 해버렸지.


<4>

밭이, 들판이 사라진 자리에 아파트와 공장과 리조트가 들어섰다지. 밭을 일구던 아낙은 공장으로 출근을 하고 섬을 지키던 노인은 쑥밭에서 호미질을 한다고. 단정히 길러진 쑥은 도시로 실려나가고 할 것 없는 동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빨며 오락실 앞에 앉았다.


<5>

바람이 퍼뜨린 쑥의 가계(家系)에 이제는 족보만 남았는데, 곱게 길러지고 키워지는 것들은 터를 잡았다네.

온몸에 희뿌연 황사를 뒤집어쓴  기세를 늘리며 기회를 엿본다 한들 옛날은 오지 않는 것.

할머니도, 동심도, 들판도, 밭두렁도... 너를 위한 진혼곡은 바람만이 알고 전하여 들었다.


<6>

진짜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나는, 옛날로의 회귀를 꿈꾼다.





• 쑥의 쓰임새: 국·나물 등 음식으로, 차·즙 등 음료로, 쑥탕·쑥 찜질방용으로 쓰인다. 쑥차를 마시면 알레르기성 질환이나 위궤양에 좋고, 쑥으로 목욕을 하면 혈액순환과 피부 미용에 좋고, 쑥 연기는 치질이나 무좀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 쑥은 비·산·간 등에서 기혈을 순환시키며 하복부가 차고 습한 것을 몰아내는 효능이 있으며 특히 부인병에 좋다고 나와 있다. ‘애쑥국에 산촌 처자 속살 찐다’는 속담이 전해 내려올 만큼 여자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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