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Jun 06. 2020

기-승-전-감자 밥상

할머니표 감자전이 주는 위로와 안도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감자 감자 뽕!

어쩜 묵찌빠 놀이에도 감자가 들어갈까요?

 

 학교 다녀왔습니다~

소쿠리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가득하네요. 오며 가며 하나씩 먹으라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셨군요. 멸치 맛국물 진하게 낸 국물에 무심히 툭툭 친 감자 계란국을 먹고 학교를 갔는데, 찐 감자가 간식이라니요.


 후드득~ 빗소리가 들려요.

할머니는 아마 강판에 거칠게 간 감자로 감자전을 부치실 테죠. 감자 살 깎여 나가는 게 아까워 숟가락으로 긁어 깐 감자로 말이에요. 손은 물에 불어 퉁퉁 부으셨을 텐데 말이죠.


 저녁 반찬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 감자볶음과 감자조림이죠. 이젠 별스럽지도 놀랍지도 않아요. 그나마 매콤한 걸 좋아하는 식구를 위해 감자조림에 고춧가루를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해 주신 것으로 만족이에요. 이건 엄연히 눈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다른 반찬임이 분명해요. 그렇지만 감자밥에 감자 반찬은 좀 과한 것 같아요.


 주말 아침이라고 양식을 준비하셨네요.

우아하게도 모닝빵이잖아요. 야호~... 근데 베이컨도 소시지도 버터나 계란 프라이도 없는, ‘아메리칸 식’이 아니었어요. 너무 기대가 컸나 봐요. 양푼 가득 감자 샐러드에 밥숟가락이라니...

빵에 감자 샐러드 넣어 밥으로 생각하고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냥 우리 집 밥상은 ‘기-승-전-감자 밥상’이었던 거예요.


 

 우리 집 밥상이 이처럼 기승전 감자 밥상이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어머니의 고향이 강원도라는 것과 ‘선택적 가난’ * 때문이었다.

아홉 살쯤이었을 거다. 호미 하나 쥐고 어머니를 따라 감자를 캐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져 땡볕에 힘든 줄도 몰랐다.

정말 조약돌처럼 생기다 만 감자들로는 공기놀이를 할 정도였으니, 참새가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으며 연실 짹짹 예쁜 짓을 했다는 태몽처럼 나는 함구한 어머니 옆에서 속도 모르고 깔깔댔던 것이다.

그 밭은 남의 밭이었고, 수확을 끝낸 밭의 감자라도 캐 갈 수 있는지 주인의 허락을 받고 간 ‘감자 이삭 줍기’ 현장이었던 것인데, 나는 씨알이 작은 감자들을 주워 모으며 “아이, 귀여워”를 연발하며 좋아했고, 어머니는 씨알 굵은 감자를 찾으며 “이건 좀 먹을만하네” 안도의 숨을 내쉬었던, 아이러니컬한 일이었다.


 “엄마 속도 모르고, 그 헛헛하고 참담한 마음도 모르고 어찌나 쫑알대던지... 하기야 그 소리라도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서 어머니는 웃으신다.


 우리 가족에게 감자는 그야말로 ‘구황(救荒)의 의미’였다.



 고기도 많이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어렸을 때부터 감자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우리 가족은 군소리 없이 감자를 많이 먹었고 심지어 맛있게 먹었다.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먹어 지금은 먹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우리 가족은 지금도 감자 반찬이라면 언제나 대환영이다.  참 다행이다, 잘 먹을 수 있어서.


 감자음식 일색인 우리 집 밥상에서도 최고의 인기 메뉴가 있었으니, 그것은 소박한 ‘할머니표 감자전’이었다. 요즘은 요리하는 사람마다 감자전 하는 방법이 틀리고 때론 감자전 같지 않은 감자전에 ‘퓨전’이라는 글자를 접두사처럼 사용해 특별하게 포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엄연히 ‘이단(異端)’이다.

채 썬 감자로 만든 감자전은 씹는 맛은 있으나 부드럽지 않을 것이고, 믹서로 간 것은 식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며, 양파나 당근 부추 등을 섞는 것은 본연의 맛을 잃게 하는 것이며, 간 감자를 꼭 짜서 사용하거나 거기에 밀가루나 부침가루 등을 섞어 만드는 감자전은 쫄깃은 하나 다소 팍팍할 거였다. 심지어 ‘감자전 믹스’도 팔지만 안 먹어봤다.

나는 쉽게 변절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집 감자전은 강판에 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도 구멍 큰 강판이다. 오직 감자만 간다. 감자 물이 고이면 살짝 눌러 물을 버린다. 꽉 짜면 안 된다. 재료가 뭉쳐지도록 계란 하나와 소금 한 꼬집이면 I’m ready!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 바퀴 휘휘 둘러 재료를 올리면 쏴~아 빗소리를 내며 감자전이 구워진다.

타닥타닥, 낙숫물 바닥에 튀는 빗방울 소리가 나는 곳이 물기 많은 가장자리인데, 간 감자의 입자가 튀는 소리다. 이 부분이 감자전의 핵심, 바삭함의 끝판왕이 될 터였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 쑥갓으로 잎을 삼고 어슷 썬 빨간 고추로 꽃을 만들면

‘감자전에 예쁜 꽃이 피었어요’가 된다.

감자전에 꽃을 피우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들꽃 찧어 반찬 만들며 노는 우리들 소꿉놀이 같아 내가 하겠다고 매번 조르곤 했었다. 이쯤 되면 이미 눈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있는 감자전이 자동 입력되고, 침샘이 무조건 반사된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감자전을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콩기름 냄새가 바삭한 소리와 함께 입안 가득 퍼진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혀끝의 느낌과는 달리 거칠게 간 감자 입자의 살캉거림과 쫀득쫀득한 식감이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간장을 찍어 먹어도 좋으나 굳이 무언가를 보태고 싶지 않다. 감자 본연의 겸손하고 은근한 맛이 좋다.

한 송이 꽃으로 돋을새김 된 빨간 고추와 쑥갓은 잠시 출연하나 묵직한 한 방을 날리는 카메오로, 다소 심심할 수 있는 감자전을 흥미롭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감자전은 조금씩 떼어먹는 것보다 볼 빵빵하게 크게 한 입 베어 우물거리며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래야 후폭풍의 위력으로 뒤따라오는 행복감도 배가되고 커다란 위로가 된다.

‘맛있는 음식을 이제야 좀 든든히 먹었구나’ 하는 안도.


  평범한 것이,

 때론 특별한 것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감자전은 널리 이웃에게도 이롭게 전파했는데, 시댁 식구들에게도, 동네 이웃들에게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음식이 주는 행복과, 나누어 먹는 행복한 순간을 선물해 준 셈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얼떨결에 한 입 얻어먹고 간 아이들까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꽤나 유능한 ‘감자전 전도사’이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기승전 감자 밥상’을 받아온 저력과,

강원도 ‘감자바우’ **로서의 DNA적 운명과,

감자가 주는 행복함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소명으로 오늘도 나는 감자 한 박스를 배달시켰다.

싹이 금세 나는 즈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도 할머니가, 어머니가 정성껏 해주시던 감자전을 부쳐 먹었다.

아이들이,

“ 또 감자?”

놀라는 척 의문문을 제시해도

“ 역시 감자!”

인정의 감탄문임을 나는 안다.

슬픈 구황의 의미가 아니라 더 맛있고

아이들도 항상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고 행복하다.


 기승전 감자 밥상 사대(四代)다.



* 선택적 가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구조는 아니었으나 아버지의 선택적 행동으로 집에 쓸 돈이 없어 부족하게 살았다는 뜻.

**감자바우: 표준말 감자바위의 사투리.

 


싹 난 감자를 잘라 빈 화분에 심었더니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재미로 시작한 일에 감자캐게 생겼다.



이전 03화 쑥국을 끓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