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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y 25. 2021

색맹의 섬에 사는 남자

<people to people> 색맹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노라

1.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은 당신에게 시를 읽어줄 작정이었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겠노라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좋아한다기에.


그래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의 아침이에요

오늘,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답니다.


내가 바라보는 꽃의 세계는 무채색이라

당신의 눈동자에는 가끔 눈부처가 섰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당신의 눈동자에는 유채색 꽃도 피었다 사라질까?

하여,

붉은 장미와 분홍 리시안 하얀 스톡과 초록의 유칼립투스로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내 눈에는 같은 꽃일 뿐이지만요,

나에게는 꽃이 중요하지 않지만요,

단지 꽃을 바라보는 당신의 동그란 눈의 떨림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꽃을 보며 ‘어머머~’ 하고 오므린 입에 한 손을 갖다 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랄까요?


2.

당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고 있어요.

바람결에 지나가는 샴푸 냄새도 운율이 되는군요.

가끔은 배고 누운 당신의 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껴요. 내가 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요.

읽다 만 시집을 결국 얼굴 위로 내려놓았어요. 하늘이 잿빛이에요.


그래요, 이제 고백할 시간이 됐다는 신호예요.

이렇게 화창한 날에, 사랑 고백에 앞서 나의 ‘색맹의 섬’에 대해 고백하는 것을 부디 용서해주세요.


빨간 하늘 아래 파란 털을 한 늑대가 ‘오 우울~’ 목을 빼고 울던 그림을 그린 날, 난 독창적인 아이라고 칭찬을 받았어요.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넜다며 등굣길 경찰 아저씨에게 야단을 듣던 날이었지요.

담벼락에 잔뜩 붙어 핀 빨간 장미가 예쁘다며 여자 아이들이 시시덕 유난을 떨며 걸어가더군요.

파란 잎사귀 천지인 담벼락일 뿐인데도 말이죠.

오후에는 신체검사 시간, 색맹검사란 것을 했어요.

선생님이 숫자판을 펼치면 아이들은 74! 8! 13! 하고 쉽게 대답하는데 내게는 보이지 않았어요.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친구 뒤로 한 칸씩 물러났죠.

 ‘점수가 성적표에 올라가는 건가? 안 보인다고 하면 야단을 맞겠지? 바보라고 아이들이 놀려대겠지? 병신 머저리 등신...’

그래서 순서를 외웠어요. 선생님은 귀찮은지 똑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펼치더군요.

74! 8! 13!


3.

그래요, 맞아요, 당신이 짐작한 대로예요.

나는 색맹의 눈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돌잔치에 입었던 색동저고리에서 잿빛의 농담(濃淡)을 구별했어요.

빛깔의 이름, 빛깔을 표현하는 사물-이를테면 무지개-, 빛깔에 대한 은유와 형용사 같은 언어는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어요.

색으로 표현하는 미술, 색의 언어가 녹아있는 시, 색의 정원이 펼쳐진 건축,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드는 산과 바다, 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달리 흐르는 하늘과 강의 변화, 노을과 여명의 미묘한 아름다움도 알아챌 수가 없었지요.

나는 색맹의 섬에 혼자 살게 되었던 것이랍니다.

섬도 홀로였고 섬에서는 나도 혼자였죠.


4.

내 슬프고도 아픈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무채색의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경험이라고 위로하는 이도 있었어요.

낙천주의자는 모든 장소에서 청신호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비관 주의자는 붉은 정지 신호 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란 색맹을 말한다고 앨버트 슈바이처가 말하기도 했다지요?

나를 위한 동조이며 공감이고 공존을 위한 사랑의 메시지임을 압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을까요?


5.

그래요, 많이 놀라셨을 줄 압니다.

 “내가 어떻게 보여요?” 당신은 물었고,

 “내 모습도 장미꽃처럼 파랗게 보이려나?” 깔깔 웃었고 “그럼 미술전시회는 같이 못 가겠네.” 아쉬워했지요. 그렇게 애처롭게 바라보지는 말아주세요.

나는 그저 보이는대로 볼 뿐이랍니다.

나는 당신만 있으면 되는데, 내 눈에는 당신만 보이는데, 당신은 내가 보는 세상이 의아하고 궁금한 것이었군요.


6.

그래서일까요?

그것 때문에 당신이 나를 떠난 것은 아니겠지만요,

저는 아직도 색맹이라는 홀로 섬에 혼자 살고 있어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요.

외로우냐 물으시면 좀 그런 것도 같은데,

그냥 괜찮다고 답을 할래요.


나는 색맹이라는 섬에 사는 남자니까.

섬사람처럼 씩씩하게 살아가야 하니까.

아무도 색맹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 제목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영국 신경학과 교수. 1933~2015)의 <색맹의 섬 The Island of the Colorblind>에서 따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편두통> 등의 저서.

핀지랩의 색맹 환자들의 기록, 올리버 색스의 책 <색맹의 섬> 표지 (좌), 남태평양에 위치한 산호섬, 핀지랩. 섬 인구의 3분의 1이 전색맹이어서 ‘색맹의 섬’으로 불린다(우)

그러나 ‘색맹섬에 사는 남자라는 자작시는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며

색맹인 친구의 이야기를 시로 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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