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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18. 2021

흰구름(素雲) 데이트

그리움도 흘러가라, 내 마음도 흘러가라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얼마만이지요?”

- 글쎄요, 하루에 한두 번? 아니 서너 번은 쳐다보는 것 같은데요. 거실 창 너머로도 바라보고, 길을 걸으면서도 살짝 올려다보면 보이니까요.


 “아니, 그렇게 보는 하늘 말고요. 하늘색이 참 예쁘네, 흰구름도 흘러가네... 하면서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것 말이에요.”

- 음... 그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걸요.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은 있어요. 몇 년 전, 황정산 자연휴양림에서 캠핑할 때였는데 새벽 3시쯤 화장실이 가고 싶은 거예요. 일어날까 참아볼까 수백 번을 뒤척이다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글쎄 하늘에 별이 빼곡히 박혀 있는 거예요. 크고 밝게 빛나는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죠. 밤하늘을 보자 터져 나온 “와~” 감탄사는 새벽 공기 속에서 춤을 추는데, 하늘 향해 잔뜩 꺾인 고개와 두 다리는 쥐 난 듯 꼼짝할 수 없었지요. 어릴 적 바라보던 그 별들이 오손도손 잘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나의 무관심 속에서 수 백, 수 천의 밤 동안 저 많은 별들은 제 자리에서 지조있게 반짝이고 있었겠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서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슬퍼서 운 게 아니라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얼마만의 일이던지요...

  



  그날 이후, ‘매일 잠시라도 하늘을 우러러보는 습관을 갖자’라고 생각을 했었다. 헤르만 헤세가 23살에 썼던 <작은 기쁨들> 산문에서 ‘매일 아침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을 갖자”라고 썼던 것처럼.

하늘 보는 습관을 갖자는 것은, 하늘 한 번 힐긋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지긋이 바라보며 하루를 되돌아보거나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겠다는 의미였다. 하늘 한 번 바라보고 깊은숨을 내쉬며 여유를 갖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1~2분 남짓의 시간이면 충분할 테지만 그마저도 매일 하기는 힘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밭일하는 농부가 허리 한 번 쭉 펴고 쉬는 찰나의 달콤함을 알면서도 징글징글하게 일에 매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며칠 , 하늘을 욕심껏 눈으로, 마음으로 가득 담아본 날이었다. 딸은 학교 담임선생님과 수시 진학 상담을 하기 위해 학교로 들어갔고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주차한 차 안에서 기다리기에는 상담 시간은 길 것이었고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자니 커피값이 아까웠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도 답답할  같았다. 굳이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음이 답답했고 울컥울컥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에게도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오후 2시의 한낮은 이글거리고 지글거렸다. 쨍~ 하고 톡 쏘는 햇살처럼 맴~웽~ 매미가 짱알거렸다. 학교 옆 근린공원에는 오가는 사람은 없고 매미가 나무마다 붙어 오려는 사람을 막아내는 것 같았다.

평균 5년간의 유충 생활에서 벗어나 땅 위로 올라온 후로, 한 달 여 밖에 살지 못하는 매미의 한(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의 매미 소리는 짜증과 더위를 배가시키는 초월의 데시벨로 귀를 저격하고 있었다.


  매미소리를 뚫고 앞으로 전진!, 공원을 몇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나무 그늘 길로 걸으면 시원은 하리라. 그러나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도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마을버스 회차 정류장 근처 조그마한 공원이라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한 바퀴를 더 돌까 고민하던 순간, 그늘막 아래 벤치 세 개 놓여 있는 쉼터가 보였다.

 ‘저 벤치에 누우면 파란 하늘과 흰구름 흘러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겠는걸.’

갑자기 마음은 급해졌고 신이 났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꽃처럼 피어 있었으므로...

요 며칠 하늘은 흰구름 천지였다. 여름 한낮에 흔히 볼 수 있는 적운(쌘 구름)과 맑은 날씨에 많은 층적운(층쌘구름), 작은 깃털이 흩뿌려진 듯한 권적운(털쌘구름) 등이 하늘에 가득 피어 있었는데, 그날은 적운과 층적운이 바람에 날려 부유하고 있었다.


무궁화꽃 뒤로 살짝 보이는 벤치에 누워 바라본 하늘의 모습. 저 구름 흘러 어디로 갈꼬?


  버얼건 대낮에 공원 벤치에 길게 누울 생각을 하다니, 신문지나 골판지를 옆에 끼거나 깔고 있었다면 영락없는 거지꼴이 아닌가. 그러나 영화감상을 하듯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할 수 있다면 그깟 낯 붉어지는 일쯤이야. 언덕에 누워 흰구름을 세던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의 시간여행을 놓칠 내가 아니다. 벤치 옆 가드 높이가 베고 눕기 아주 적당한 높이인 것도 다행이었다. 끄응~ 묵혔던 한숨을 토해내며 벤치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벤치는 그늘지기 전 충분히 햇살에 달구어진 탓에 따끈따끈 했다. 찜질방 바닥을 방불케 했다. 하늘이 두 팔 벌려 넓은 품을 내어주었다. 넓은 품에는 흰구름도 안겨 있었다.


  처음엔 혹여 오가는 사람이 있을까? 미모의 처자를 누가 희롱하지 않을까?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일만 아니면, 나 좋으면, 나 편하면 되었다, 앉을자리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면 되고... ‘라고 생각하니 평상에 자리 깔고 누운 것처럼 편안했다.


  때마침 바람도 한 줄기 지나갔다. 흐르던 땀이 마를 정도의 바람, 황소바람이다. 가을의 시작, 입추(立秋)가 지나더니 시간의 흐름은 속일 수가 없는가 보다. 아~ 시원타, 눈을 지그시 감으니 목련꽃그늘 아래는 아니지만 베르테르의 편지든 윤동주의 편지든 누군가로부터 온 연서(戀書)든 그런 절절한 편지를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아련해졌다. 학창 시절 가졌던 막연한 연정과 맞닿아 있었다. 실체 없는 어떤 대상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은 가도,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던 맹세를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흘러가 버린 그리움 중에 어느 한 자락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파란 하늘에 그리움이 흰구름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움의 언어들이란 말인가! 코 끝이 시큰, 눈가는 촉촉, 입가엔 얇은 미소가 싱긋, 이내 순수하고도 맑은 소녀의 마음이 되어 흰구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동글동글 사과가 굴러가는가 하면 토끼가 깡총 뛰고 하얀 말이 튀어나와 따그닥 따그닥 달리기를 한다. 밀가루 반죽은 설탕 듬뿍 묻힌 도넛이 되었다가 길게 늘어져 꽈배기가 되어 날아다녔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릴 것만 같았다. 어릴 적, 구름은 멋진 장난감이었다. 하늘은 장난감을 풀어놓은 상상놀이터인 셈이었고. 언덕을 베고 누워 저 하늘을 맘껏 휘젓고 다니는 상상을 참 많이도 하였었다.


  한참을 소꿉장난 하는 아이처럼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놀았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구름의 모양이 흘러가며 변해가듯 내 마음도 따라 변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무겁고 정처가 없으니 뭣 하나 진득하게 봐주지 못하고 마음이 뒤죽박죽 서로 엉키고 만다.


  대학 시험과 진학을 앞둔 딸에게 어느 날 찾아온 변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데, 지나가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하는데, 지나온 세월 동안 쌓아온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게 분명 끝은 아니다, 실패한 것은 아니다. 미래는 열려 있다. 더 멋있고 빛나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원하고 바라는 일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만은 명백하고 또렷한데 안타깝고 아깝고 아쉬울 따름이다. 명료한 사실 앞에도, 투명한 의식 안에서도 나는 휘청거렸다. 흰구름이 바람에 휘청거리듯 그렇게 휘청거리고 만다. 휘청거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구나. 구름도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구나.


구름이 예뻤던 남한강가, 제주도의 여름, 서울의 밤, 저 붉은 노을...


  흰구름을 보면, 흰구름만 보면 모든 게 괜찮아지고 위로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흰구름처럼 하얀 것, 정처 없는 것을 사랑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흰구름은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내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약 글을 쓰게 된다면 필명은 흴 소(素), 구름 운(雲), 소운(素雲)이라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학창 시절에는 구름에 관한 시 꽤나 읊조리고 다녔었다. 대학시절에는 독일어로 된 헤르만 헤세의 흰구름 시를 외우고 다녔다. 흰구름을 우러르며 다닐 때였다. 흰구름은 내 기쁨과 슬픔을 알아주는 친구이자 동지였다.




  예전의 흰구름은 유유히 흘러가며 마냥 아름답고 마냥 자유로워 보였는데, 다시금 바라본 흰구름은 왜 바람에 휘청이며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일까? 흘러가는 세월에 나이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던 것일까? 흰구름에 얹힌 내 마음이 시나위 가락에 명주 수건 휘날리며 살풀이하듯 풀어지고, 맺히고, 다른 가치에 치환하여 승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름처럼 쉬임 없이 흘러가며

쉬임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꼭 말하고 싶어요>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어를 떠올리며 다시 생각하는 것은, 바람에 흔들려 휘청거리더라도 흘러가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쉬임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면서도 쉬임 없이 매일 깨어날 때는 내가 어디로 향해 흘러가야 할지 명확히 알고 흘러가야겠다는 선언이었다.


  다짐과 선언은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것이어서, 1시간여 벤치에 누워 있던 내 얼굴빛처럼 선명하게 붉어지고 익어가고 있었다.


  추억 속에서만 머물렀던 아름다운 흰구름과의 데이트, 오랜만에 다시 만나 바라보니 이 보다 좋을 수 없었다. 옛사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 <흰 구름>이라는 시는 <들판을 넘어...>와 같은 해인 1902년경에 쓴 헤르만 헤세의 초기 시이다.


흰 구름(WEISSE WOLKEN)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오 보아라, 흰 구름은 다시금/잊힌 아름다운 노래의/조용한 멜로디와 같이/푸른 하늘 저쪽으로 흘러간다.(O schau, sie schweben wieder/Wie leise Melodien/Vergessener schöner Lieder/Am blauen Himmel hin!)


기나긴 여로에서/유랑의 슬픔과 기쁨을/모두 맛보지 못한 사람은/저 구름의 마음을 알 수 없다.(Kein Herz kannsie verstehen,/Dem nicht auf langer Fahrt/Ein Wissen von allen Wehen/Und Freuden des Wanderns ward,)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처럼/하얀 것, 정처 없는 것을 사랑하노니,/구름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자매이며 천사들이기 때문이다.(Ich liebe die Weiβen, Losen/Wie Sonne, Meer und Wind,/Weil sie der Heimatlosen/Schwestern und Engel s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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