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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y 03. 2021

‘착한 아이’도 다시 보자!

긍정적인 삶을 위해 솔직해지자

아이가 참 착해요.

  이 말을 들으면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마음 한편 안도감이 들며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다정함이 실려있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선생님이거나 이웃 혹은 또래 학부모 거나 식구 등 다양했을 것이나 아무튼 어른이었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아 든 느낌이었다. 더불어 ‘엄친딸(엄마 친구 딸)’ ‘모범생’ 같은 말도 따라붙었으니 엄마로서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른이 말하는 '착하다'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공부를 잘하거나, 예체능에 소질이 있거나, 주장을 또렷하게 얘기하거나, 할 일을 척척 알아서 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거나... 이럴 때 어른들은 착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똑똑하다 다부지다 개성 있다 독창적이다 자기애가 강하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착하다’라고 얘기할 때는,

어른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거나 어른들이 하는 말에 불평하지 않고 따른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보일 때다.


ㅇㅇ는 정말 착해요

  같은 반 친구나 또래 아이들로부터도 이 말을 많이 들었다. 학교에서 주는 ‘바른 어린이상 표창장’ ‘모범상’들이 그것을 증거 한다. 이런 상은 반 친구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데 고 3인 지금까지 해를 거르지 않고 받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들의 글에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고... 등의 말이 쓰여 있다.


  아이들의 ‘착하다’는 평가는 어떤 의미일까?


  리더십이 있거나 성적이 우수하거나 발표를 잘하거나 성격이 활발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친구에게 착하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어떤 친구인지 규정할 때는 믿을 만한 친구, 리더십이 있는 친구, 공부 잘하고 스마트한 친구, 의리 있는 친구의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그런데,

 "얘는 무슨 말을 해도 싫다고 안 해요,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요, 그냥 착해요, 착해" 친구들이 호들갑스럽게 얘기한다.

친구 사이에 ‘착하다고?’... 의문이 인다. 아이들이 착하다고 얘기하는 것에는 뭔지 모를 불편함이 존재한다. 만만한 친구, 뭘 요구해도 거절하지 않는, 호구(虎口)의 느낌이 없지 않다.


  과연 착한 아이는 착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착한 어른은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동화구연대회 때 사용했던 토끼와 호랑이 손인형. 토끼의 재치로 구운 돌을 떡으로 알고 삼킨 호랑이 이야기였다.


  딸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저학년 대상 교내 동화대회가 있었다.

옛이야기를 하나 골라 이야기를 수정하고 인형을 만들어 대회 준비를 했다. 성의껏 준비하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혹은 반에 유일한 참가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회 이틀 전, 담임 선생님께서 준비한 동화를 반 친구들에게 먼저 들려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다 늦은 저녁,  

 "엄마, ㅇㅇ가 토끼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동화대회에 나가기로 했어요.”한다.

 "그런데, 똑똑한 토끼한테 호랑이가 당하는 이야기잖아. 나도 토끼가 하고 싶은데 ㅇㅇ가 토끼를 꼭 하고 싶대... 걔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왜 같이 하자고 하는 걸까? 나는 글도 외우고 엄마하고 인형도 만들었는데... 엄마한테 좀 미안해...”


  아이의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친구와의 대화와 장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원래 너 혼자 대회에 나간다고 신청한 거잖아? 친구한테 같이 하기 싫다고 하지 그랬어? 아님 같이 할 거면 토끼 역할은 네가 한다고 하든지."

 "걔도 신청을 했었는데 준비해줄 사람이 없었나 봐. 그런데 내가 하는 걸 보더니 하고 싶었나 봐. 자꾸 내 자리에 와서 하고 싶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어. 거절하면 너무 속상해할 것 같아서..."


딸은...
1.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면 속상해할까 봐 ‘같이 하기 싫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속마음은 같이 하기 싫었지만)
2. 이야기를 수정하고 인형을 만들고 대본을 외우는데 엄마와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할애되었는데 ‘엄마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결정한 것이 미안했다.
3. 똑똑하고 꽤 많은 토끼는 ‘좋은 아이’, 토끼에게 속아 넘어간 멍청한 호랑이는 ‘나쁜 아이’였고 나쁜 아이로 인식되는 게 싫었다.


  딸의 성격이 그랬다. 심성이 고운 아이다.

‘나’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먼저 읽는 아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아이였다. 이름처럼, 어질고 어진 아이.(이름 따라간다고 했는데...)

모둠 활동 시, 안 하고 못하는 아이들 것을 끌어안고 밤새 PT를 만들어 발표를 맡아하는 아이.

방과 후 청소시간, 부스 꾸미기, 오케스트라, 꿈의 학교 꿈짱 등 각종 활동 시 자신의 몫을 다른 친구에게 떠넘기지 않고 묵묵히 끝까지 수행하는 아이.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친구보다 더 아파하는 왕언니 같은 아이. 친구들과 의견이 나뉠 때 다른 친구의 의사를 존중하고 따라주는 아이.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자신이 더 속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속상해할 것을 염려하고 미안해하며 우는 아이.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바라고,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삶의 지향은 결코 바보스러운 것이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바람직한 삶의 태도 중 하나이다. 진성무염(眞性無染: 참된 성품은 물들지 않는다)이 나의 좌우명이듯 착한 심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따라준 거라면, 상대방에게 싫다거나 안된다고 하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두려운 마음에 요구를 받아주었다면 그 일은 멈추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 억압은 결국 자신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표현에 소극적인 소심한 어른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프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눌렀던 감정이 어느 날 폭발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내가... 아마도... 그랬었나 봐...”

딸이 얼마 전에 뜬금없이 툭 던진 말이다.

딸의 마음이 아픈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는 ‘착한 아이 증후군’. 나 역시 착한 아이가 되라고 암암리에 요구했을 것이다. 동생에게 양보하라, 네가 좀 해줘라, 남을 배려해라, 어른들에게 말대답하지 마라, 네 말만 하지 말고 들어라, 착하게 굴어라, 얌전하게 행동해라...


  그래서 딸과 나는 ‘착한 아이’ 역할을 이제 그만 하자 했다. 때려치우자고 했다. ‘나를 위한 착한 아이’ 여야지 ‘남을 위한 착한 아이’는 필요 없다고 생각을 모았다.

<행동강령>을 만들어 하나씩 실천하고 노력해 보자고 했다.


시선은 항상 나에게 먼저 향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이 함께 하는 것이다

• 싫어요, No! 의사표현 확실히 하기,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기
• 괜찮아요, Yes! 는 정말 괜찮은지 생각해 보기. 정말 괜찮다면, ‘좋아요!’로 표현하기
• 나는 ~하고 싶어요, ~할 거예요. 자기 의사 정확히 말하기


  사실 yes냐 no냐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 솔직해지기로 한 것은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겠다.

능동적인 삶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겠다.


  솔직한 자기표현을 했다고, 의사 표시를 했다고 4가지가 없다(‘싸가지가 없다’의 부드러운 표현)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착하게 굴어야지!” “아이, 착하다”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도록 강요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착한 아이’일수록 속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세심히 살폈어야 했는데, 어른으로서의 혜안이 부족했던 나를 반성하는 오늘이다.


  ‘착한 아이’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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