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 시간과 가을을 둔 이유
눈을 감으면 내게 있어 세상은 어둠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두 눈을 감는 것 외엔 달리 무얼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어둠을 무연(憮然)히 응시한다. 버스 좌석에 앉아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나가는 건물과 나무를 표정 없이 바라보듯, 그렇게.
넋 넣고 바라보는 어둠일지라도 때론 오로라처럼 발광(發光)하고 어둠의 한가운데 미세한 먼지 입자가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희뿌연 점이나 어둠보다 더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눈을 감기 직전에 보았던 빛의 잔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작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며 원통을 돌리면 다양한 무늬와 모양을 볼 수 있는 만화경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어둠에 맺히는 상(像)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생각을 하면 모양은 춤을 추듯 현란해진다. 이러려고 눈을 감은 것은 아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텅 비어 있어야 한다. 손 끝, 발 끝, 미세혈관이 다다르는 그 끝까지 힘을 빼고 내려놓기 위해 눈을 감은 것이었다. 심지어 침대에 큰 대자로 눕기까지 해 놓고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서서히 휴~우~우우~~ 내뱉는다. 눈에 상이 맺히지 않게 온 몸에 힘을 뺀다. 5분 여의 시간 동안 거친 숨을 잠재우고 나면 두 손바닥을 양쪽 눈에 각각 하나씩 올려놓고 지그시 누른다. 따뜻한 손바닥의 기운과 약간의 압력으로 차가운 눈 주변이 서서히 데워지면 눈 안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다. 저릿한 전율이 느껴지며 눈물이 핑 맺힌다. 눈물을 흘리고서야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조언을 새긴다. 눈물이 눈 안에 가득 고인다. 되었다, 뻣뻣하게 긴장돼 있던 눈에 평화가 찾아왔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시위가 느슨해졌달까.
이제부터, 본격적인 ‘눈 요가’ 시간이다.
눈동자 굴리기를 시작한다. 왼쪽 째려보기, 오른쪽 째려보기, 위로 희번덕, 아래로 포복, 데굴데굴 굴리기,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눈 꼭 안아 조이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세트 실시! 물론 눈 요가는 눈을 감고 해야 한다. 자칫 눈을 뜬 채 하게 된다면 ‘어디서 가자미 눈을 뜨는 거야?’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이렇게 한참을 하고도 눈의 피로가 남아 있다면, 온열 안대나 따뜻한 물수건을 꼭 짜서 눈 위에 얹어 놓으면 팽팽하던 눈의 줄다리기를 멈출 수 있다. 잠깐의 낮잠을 즐겨도 무방하리라.
어느 날부터 찾아온 노안과 시력 저하, 안구 건조증, 안압의 상승으로 인한 눈의 피로와 두통이 잦아지면서 하루에 한두 번 눈을 쉬어줘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루에 서너 차례 인공눈물을 넣어주는 일도 습관 아닌 습관으로 굳어졌다. 높은 혈압, 자극성 있는 음식 섭취, 꾸준한 음주도 한몫한 결과이다. 요즘 같이 건조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산책길은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된다. ‘바람이 시리다’는 표현이면 적합하겠다. 바람이 눈을 자극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이다. 눈물 없이 차마 볼 수 없는, 영락없이 ‘가을 여자’가 되고 만다.
가끔은 뜨거운 음식을 조리하거나 커피물을 끓인 후 뚜껑을 열고 뛰쳐나오는 수증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얼굴을 들이민다. ‘스팀 마사지’라고 한다. 얼굴에 모공이 열리며 수분이 촉촉이 스며든다. 눈에도 더운 기운이 닿아 뜨거운 국밥 한수저 입에 넣으며 ‘아, 시원타!’ 감탄사를 내뱉듯 ‘아, 시원하다~’ 느낀다. 공짜로 마사지받는 기쁨은 덤이다.
귀찮은 ‘눈 요가’를 해야 하고 수시로 인공눈물을 보충해줘야 하는 일이 생기다 보니 뒤늦게 알아지는 것이 있더라. 나에게 노안이 찾아오게 된 이유와 뜨거운 여름과 시린 겨울 사이, 가을을 둔 의미 같은 것 말이다.
제목 : 가을을 둔 의미
이제 알았네, 멀리 보라고
나무와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신 이유를
이제 알았네, 쉬어 가라고
곡식과 잎을 떨구어 거두어 가신 까닭을
이제 알았네, 단단해지라고
뭇 짐승들 땅 속으로 들어가라 이른 뜻을
이제 알았네, 시간을 돌아보라고
여름과 겨울 사이, 가을을 둔 의미를
가족들이 모여 북적이는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도 잠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난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생각의 바퀴를 굴리고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 가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게 한다. 눈의 피로가 안겨준 의외의 선물이다. 내가 눈을 감는 시간을 한편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 눈을 쓰고 살았으니 가끔은 쉬도록 하라는 신호라고 얘기해 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눈앞의 일에 몰두하며 살았으니 가까운 것보다는 시선을 멀리하여 넓게 살라는 뜻이라 말한다. 곡식과 잎을 떨구어 거둔 것은 땅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라 함이고, 뭇 짐승들 겨울나도록 땅 속으로 들어가라 이른 것은 성장을 위한 준비를 당부한 것이니, 축적의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라. 그래서 뜨거운 여름과 시린 겨울 사이, 가을을 둔 것이라고 소곤거린다. 눈을 감고 생각하며 살라 말한다.